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의 신화 이론을 기초로 해 발전해 온, 혹은 그 이전부터 존재해 왔으나 본격적인 이론 정립의 부재로 뒤늦게 해석된 예술작품들은 그 형태와 양상을 바꾸어 가며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플라톤(Plato, BC427)의 동굴의 비유(Allegory of the Cave)에 기반한 일부 실재론자들에게서 제기된 허구성, 즉 예술만이 아닌 문학이나 언어 등의 수단, 심지어 신화까지도 단지 원본의 암시에 그쳤다는 일부 주장이 제기된 바 있으나 현대미술은 더 이상 재현의 굴레에 갇혀있지 않게 되었다. 자신만의 의미를 재생산하는 이데아의 모방, 즉 미메시스(Mimesis)의 시대가 지나고 예술가들은 대상의 순수한 형상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으로 양상을 발전시켜 나가며 복제와 편집 등도 서슴지 않는다. 과거 하나님이 내린 재앙으로 여겨진 애굽에 출몰한 수많은 메뚜기 떼가 기후 변화와 연관이 있었을 거라는 과학적 규명이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로고스(Logos)나 과학의 발전으로 과거에 규명되지 못해 신화적 관점으로 해석되던 현상들이 점점 힘을 잃어가자 신화의 존재 자체의 정당성은 흐릿해져 갔다. 그렇기에 신화는 자신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하는 위기에 당면한 적도 있었으나 롤랑 바르트는 신화의 종속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실패함을 지적하며 이를 가리켜 오이디푸스 신화의 재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많은 신화는 다양한 분야로 해석되어 지금까지도 그 힘을 잃지 않고 각자의 알레고리를 끊임없이 변주하며 문학과 연극, 그리고 미술 등의 예술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신화가 현대미술 속에서 가지는 위치는 어떠한 것이고, 예술가들이 신화에서 벗어나기를 그만두고 오히려 신화를 적극적으로 작품 안에 끌어들여 그 매개체를 설명으로 이용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수불가결해질 것이다. 본 연구는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1874)와 롤랑 바르트가 주장한 신화론의 예술 및 언어, 기호학적 측면에 대해 제시한 이론을 정리하고, 신화가 현대미술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예시가 되는 작가와 작품들을 제시하며 찾을 수 있는 신화적 메시지를 살펴본 후 현대미술의 구조 속에서 아직까지도 불가결한 신화의 방향성을 알아보는 데에 목적을 두고 시작되었다.
I장에서는 신화가 지금까지 어떤 방향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학문과 공존했는지 살펴보고 신화의 필요성과 함께 분석할 작가에 대해 알아본다. II 장에서는 신화의 뿌리, 즉 신화철학이론이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 신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한 관점을 톺아보고 신화의 기원에 대한 학설들을 소개한 후, 현대미술의 그리스 로마 신화적 분석이 왜 필요한지, 신화와 관람자의 접촉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경험에 입각하여 해석한 후 순수히 직관이나 감성에 의존해 신화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을 예시로 설명한다.
이후 에른스트 카시러가 주장한 신화의 상징 재탄생과 경험이 가지는 의의에 기반한 신화학, 그리고 롤랑 바르트의 자본주의적 신화 해석과 현대미술의 변주에 대해 서술한다. 이후 III장에서 위의 이론과 신화에 입각에 작품을 제작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1957), 재닌 안토니(Janine Antoni, 1964), 카라 워커(Kara Elizabeth Walker, 1969), 키키 스미스(Kiki Smith, 1954)에 대해 분석한다. 그들은 삶에 끼친 다양한 영향들-즉 개인적인 경험이나 사회 현상, 페미니즘 담론, 환경 문제-을 신화적 알레고리를 사용해서 능숙히 드러내고 있다.
본 논문은 위와 같이 신화가 과거에 다루어진 방식에서 어떻게 변주하여 현대의 예술이나 철학학문과 결합하여 지금의 형태를 띄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신화를 사용하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며 신화가 현대미술 속에서 가지는 의의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에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