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리쾨르(Paul Ricoeur)의 '언어적 환대'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바탕으로 뉴마크(Peter Newmark)의 번역 방법론과의 결합을 통해 중국의 역사추리소설 〈长安十二時辰〉의 한역본을 대상으로 문화소의 '언어적 환대로서의 번역전략'을 모색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둔다.
번역은 일종의 해석이라는 관점에서 번역학과 해석학은 공유하는 철학적 기반을 가진다. 해석학은 슐라이어마허의 '저자 중심의 해석학'과 가다머의 '독자 중심의 해석학'을 거쳐 리쾨르의 '텍스트 해석학'에 이르러 저자와 독자 간의 대립적 관계를 극복하고 상호 간 보완을 통해 궁극적인 자기 이해로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독자는 텍스트 읽기를 통해 주체성이 확립된다는 리쾨르의 관점에서 번역자에게는 출발 텍스트의 이상적인 독자임과 동시에 출발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재창출하는 작가라는 이중적 역할이 부여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번역에 관한 문제는 독자 주체성에서 번역자의 주체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 번역의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의미생산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리쾨르에게 있어 번역 활동은 언어의 다양성으로 초래된 이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 인간의 행위이다. 따라서 실천적인 활동으로서의 번역의 목적은 완전한 등가의 실현이 아닌, 윤리 측면에서 '타자(異)'와의 대화를 통해 '타자'로부터 온 시련을 직면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리쾨르는 번역에서의 '언어적 환대'를 논하였는데, 번역자는 도착어의 주인으로서 이국적인 출발어의 언어와 문화를 환영하는 태도로 원문이 전달하고자 하는 타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소개함으로써 도착어 문화권의 지평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타자 앞에서 자신을 개방하고 타자로부터의 시련을 겪어야 하는데, 이를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리쾨르가 제시한 '언어적 환대로서의 번역'이 갖는 현대적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언어적 환대로서의 번역'은 아직까지 형이상학적 차원의 담론일 뿐 번역에서의 구체적 방법이 제안된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배경하에서 본고에서는 리쾨르의 '언어적 환대'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기반으로 방법론적으로 뉴마크의 8가지 번역방식과 결합하여 번역양상에 대한 평가 기준과 언어적 환대의 번역전략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뉴마크가 제시한 8가지 번역방식에 관한 이해를 통해 이를 '출발어(SL)'와 '도착어(TL)' 지향으로 분류한 뒤, 〈长安十二時辰〉에서 추출한 805개 문화소의 번역에 방법적으로 적용하여 다시 12가지 방식으로 세분화하였다. 그리고 이를 출발어와 도착어에 대한 리쾨르의 환대성 개념에 따라 그 정도 차이를 기준으로 '출발어 지향(SL-oriented)'과 '도착어 지향(TL-oriented)', 그리고 'SL/TL 동시 지향' 세 가지로 유형화하여 그 양상을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언어적 환대로서의 번역'을 'SL/TL 동시 지향'이라고 규정하고 문화소의 '언어적 환대로서의 번역전략'을 제시하였다.
본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I장 서론에서는 연구의 목적과 배경, 연구 방법, 그리고 연구대상인 마보융의 장편소설 〈长安十二時辰〉과 한역본 〈장안 24시〉를 소개하고, 리쾨르의 언어적 환대와 문화소의 번역전략에 관련된 선행연구를 살펴보고 그 한계를 밝히면서 본 연구의 필요성을 논하였다.
II장 이론적 배경에서는 언어적 환대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리쾨르의 사상적 발자취를 고찰하였다. 이는 텍스트의 개념과 발전, 해석학사 고찰, 그리고 텍스트와 해석학을 결합한 리쾨르의 텍스트 해석학에 관한 이해와 그가 제안한 언어적 환대이다. 아울러 번역방법론적 측면에서 뉴마크를 고찰하였다. III장은 〈长安十二時辰〉 문화소의 번역양상에 관한 고찰이다. 문화소의 정의와 분류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이론적으로 고찰하고 〈长安十二時辰〉에서 추출한 805개 문화소를 본고의 연구 방법에 따라 12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후, 이를 다시 크게 '출발어(SL) 지향', '도착어(TL) 지향', 'SL/TL 동시 지향'의 번역으로 범주화하여 각각의 양상과 특징을 고찰·평가하였다. Ⅳ장에서는 '언어적 환대로서의 번역'의 필요성과 의의를 논하기 위해 〈长安十二時辰〉의 한역본 〈장안 24시〉의 한국에서의 수용 현황 고찰을 기반으로 SL/TL 동시 지향의 번역을 '언어적 환대'로서의 번역으로 규정하고 이를 다시 SL지향과 TL지향 번역의 두 가지로 유형화하여 번역전략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언어적 환대로서의 번역'을 실현하기 위한 번역자의 개입을 성찰하였다. 마지막 V장 결론에서는 본 연구를 총괄적으로 정리하고 연구 결과와 한계, 그리고 향후 연구 방향을 서술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번역자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언어적 환대'는 번역자의 주체성이 드러나는 개입의 공간을 위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타문화의 낯섦에서 오는 시련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자문화와 독자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독서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두 문화 간의 매개자로서 번역자가 수행해야 할 역할인 것이다. 출발어와 도착어 두 문화권의 만남과 교류를 촉진함으로써 출발어의 문화를 도착어 문화권으로 전달함과 동시에 도착어 문화권에 새로운 요소를 부여하여 그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언어적 환대로서의 번역'을 수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