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최근 반복되고 있는 대통령의 '탈의회적인' 행정입법 활용('시행령 통치') 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시도이다. 한국 대통령의 권력과 국정운영에 관한 기존 논의에서 대통령의 행정입법 활용에 관한 연구는 충분하지 않다. 한국 대통령의 행정입법은 수권 법률에 종속적이라는 법적 위치로 인해 대통령에게 의미 있는 의제 설정 능력을 부여하지 못한다고 간주되어왔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대통령의 행정입법 권한을 비교정치적 관점에서 재분류하고, 한국의 대통령-국회 관계가 대통령의 행정입법 활용에 영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우선 대통령이 행정입법을 활용하여 국회 위임의 범위를 벗어나 실질적인 정책 변경을 꾀하는 경우, 한국 대통령의 행정입법은 본래의 반응적인(reactive) 기능에서 벗어나 미국의 행정명령과 같은 위임명령권한(delegated decree authority)과 유사한 전향적인(proactive) 기능을 하게 된다. 이 경우 행정입법은 대통령의 일방적 권력(unilateral power)을 강화하도록 쓰일 수 있다. 이때 다른 국가의 명령권한에 비해 행정입법은 입안 과정이 폐쇄적이고 그 수는 광범위하기 때문에 외부의 감시가 어려워 더 강력한 권한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
본 연구는 이렇게 대통령이 행정입법을 유효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대통령에게 선택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기회구조로서의 헌정체제적·역사적 요인이 무엇인지 논의하였다.
신제도주의 경제학의 불완전계약 이론에 따라 대통령의 행정입법 권한을 이해할 때, 헌법의 위임입법 규정은 불완전한 요소를 가지고 있어 헌법이 규정하지 않은 부분에서 잔여권한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헌법의 위임입법 조항은 위임과 재량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고, 위임 범위를 일탈했을 때의 견제 수단도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에 따라 위임 주체로서의 국회와 재량 주체로서의 대통령이 잔여권한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지가 중요하게 되었다.
이때 잔여권한에 대한 해석에서 대통령이 위임입법 규정을 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활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때문이었다. 한국의 헌법은 대통령에게 행정부 수반과 국가 원수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 국가원수의 지위는 상징적 지위를 넘어 입법부와 사법부를 초월하는 실질적 역할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대통령의 권한에 입법이 명시적으로 포함되다 보니 대통령이 그러한 권한을 효율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절차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
그에 더해, 행정부처의 재량을 활용한 일방적인 정책 추진의 경로가 한국 정치에서 관행적으로 허용되어 왔다. 발전국가 시기 형성된 행정부 우위의 정책결정체계는 대통령의 지시와 행정부처의 일사불란한 추진으로 요약되는데, 이때 유용한 정책 수단이 행정입법이었다. 민주화 이후 국회의 정책 입안 역량과 대(對)행정부 견제 역량이 강화되면서 정책결정체계의 균형이 맞춰지고 있지만, 이미 형성된 정책 경로가 여전히 유용하게 활용되면서 행정부 우위가 유지되고 있다. 대통령실과 같은 대통령 부서의 집권화가 이러한 경향을 유지·심화시키고 있으며, 관료제 권력 강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한 배경을 전제하면서, 본 연구는 대통령-국회 관계의 변수인 단점정부와 분점정부가 대통령의 행정입법 활용과 그에 대한 국회의 통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사례 분석을 시행하였다.
사례 분석 결과에 따르면, 분점정부와 단점정부 모두의 경우에 대통령이 행정입법을 활용할 유인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었다. 우선 단점정부에서 대통령의 의제가 국회를 통과하기에 유리한 상황이더라 하더라도, 집권당 내 반대 의견이 강하거나 쟁점 법안에 대한 정파 간 갈등 정도가 커서 국회에서 입법교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면 대통령이 국회를 우회할 유인을 가질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정비 사업, 박근혜 대통령의 누리과정은 단점정부에서 행정입법을 활용한 사례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대운하 사업을 의욕 있게 추진하였지만, 단점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여당 내 주요 분파의 리더인 박근혜가 대운하 사업에 반대하였기 때문에 부정적인 여론을 극복하면서까지 국회에서 필요한 법안을 통과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 진행을 포기하고 대신 4대강 정비 사업을 하면서 국회의 입법과정을 거치지 않고 행정부 내에서 개정이 가능한 행정입법을 활용하였다.
누리과정의 경우, 행정입법 개정으로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정 충당의 방식이 변경되게 되었다. 2013년 정부는 지방교육청에 배분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누리과정 추진에 투입하고자 행정입법을 개정하였는데, 이는 상위 법률과 배치되었다. 야당은 이러한 재정 조달 방식을 비판하였고, 복지 확대가 경쟁적으로 추진되어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정책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었다. 교부금을 활용하여 보육을 지원하는 정책을 국회 법률로써 추진한다면 장기간 입법교착이 예상되었고, 그에 따라 대통령은 행정입법을 통해 누리과정을 추진하였다.
분점정부는 대통령의 입법효율성을 낮추거나 대통령의 선호와 배치되는 정책이 채택되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간주된다. 우선 대통령의 정책 선호와 배치되는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대통령은 행정입법을 선제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정책 선호에 가깝게 정책을 조정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최저임금법 시행령은 그러한 과정을 보여준다. 2018년 국회에서 대통령의 선호와 배치되는 방향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 통과되자, 정부는 그 법안의 시행령을 개정하여 최저임금 계산식에 주휴시간을 포함하면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효과를 거두고자 하였다.
또한 여소야대 구도에서 대통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컸고 그에 따라 대통령이 행정입법을 활용할 유인이 커지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찰국 설립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행정안전부 차원에서 경찰 통제를 강화하고자 하였지만, 그에 반대하는 '거대 야당'을 마주하여 법률이 아닌 행정입법 개정을 통해 경찰국을 설립하였다.
또한 본 연구는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한 이후에 국회의 통제 시도가 어떠한 조건에서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국회의 반대자들은 행정입법을 무력화시키는 대응 법률뿐 아니라 예산 조정 등으로 대통령의 일방적 행동을 견제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재량은 단점정부에서는 확대되고 분점정부에서는 축소될 가능성이 컸다. 단점정부에서 다수 여당은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에 대해, 절차적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원할 가능성이 컸다. 분점정부에서는 대통령과 대립할 가능성이 큰 야당이 대통령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견제하고자 여러 수단을 동원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통령의 재량이 제한될 수 있었다.
4대강 사업의 경우 국회에서 국정조사와 예비타당성조사 요구안이 제출되었고 관련 예산을 삭감하기 위해 야당이 예결위를 점거하여 예산안 통과가 지연되었다. 그러나 다수제적인 입법제도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단독으로 상임위와 본회의에 출석하여 예산안을 통과시켰고,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예산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누리과정의 사례에서도 대통령의 재량에 대한 통제가 어려웠다. 야당은 누리과정의 예산을 중앙정부 예산에서 충당하는 비중을 높이고자 하였으나 여당은 그에 반대하였다. 국회선진화법의 예산안부의제도에 의해 예산 협상의 장이 마련되자 예산이 조정되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두 가지 사례는 단점정부에서 일단 대통령의 재량이 확대되어 정책이 추진된 경우, 이후 그에 대해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반면 분점정부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통제가 성공할 가능성이 컸다. 누리과정의 경우, 2016년 총선 이후 국회 구도가 분점정부로 바뀌었을 때 대응 법률이 제정되어 대통령의 시행령이 무력화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찰국 설치의 사례에서 과반수 국회 의석의 야당은 경찰국 설치의 절차적 정당성에 의문을 표하면서 관련 예산을 대대적으로 삭감하고자 하였고, 최종적으로 절반을 삭감하였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 사례에서는 야당의 대응 법률안이 잇달아 제출되었으나 상임위 단계를 통과되지 못했다. 이는 분점정부였지만 제1당이 여전히 여당이었고 야당 간 협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분점정부에서 대통령 재량이 제약될 가능성이 크지만, 분점정부의 유형에 따라 그 영향이 약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리하면, 한국의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행정입법을 재량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기회구조에 놓여있으며, 국회와의 대립구조에서 부여받는 정치적 유인에 따라 국회의 입법과정을 우회하여 일방적 행동을 시도한다. 행정입법을 재량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 권한이 헌법에 명시된 대로 활용되었을 경우보다 대통령은 더 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행정입법이 그 자체로 무소불위의 권한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대통령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집권당의 지원 또는 묵인이 필요했고, 이러한 지원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단점정부의 구도가 형성되어야 하였다. 이는 대통령의 일방적 행동이 전적으로 '일방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지점이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입법과정에서 대통령 의제에 대한 국회의 견제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대통령의 일방적 조치로 이어짐으로써, 국회가 오히려 정책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의제를 주도하지 못하고 후속적으로 대통령을 지원하게 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행정입법의 활용은 대통령의 약해진 대(對)국회 입법 권한을 대체하면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하게 되지만, 이러한 권력 강화는 단기적이고 불완전할 수 있다. 대통령의 '탈의회적' 국정운영으로 효율성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정치적 갈등이 해소되지 못한 채로 심화되는 소모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이후 국정운영이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국회와 대화하지 않으려는 대통령의 일방적 조치나 국회의 비판자들이 취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타협적 태도가 결코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