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정전 협정이 맺어진 후 7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북한과의 관계는 경제적·문화적 교류 협력이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으로 대화가 단절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남북한 법 중 어느 것을 적용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북한과 북한 주민의 법적 지위에 관한 논의에서 많이 다루어졌고, 나름의 기준이 정립된 듯하다. 우리 법원은 북한은 반국가단체성과 통일의 동반자로서의 성격을 모두 갖추었다고 보고 북한의 이중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기존에 우리 법원에서 판단한 남북한 관계에서 발생한 법적 문제 해결사례를 살펴보면, 대부분 남북한간 교류협력 관계에서 발생하여 남북한 합의서에 따라 판단하거나,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하는 사례였다.
그러나 남북한 교류 협력이나 국가보안법 적용 상황이 아닌 경우의 남북한간 발생한 형사문제에 대해 우리 법원이 판단한 사례는 없다. 예를 들면 북한 지역에서 북한 주민이 살인 등 범죄를 저지른 후 남한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면 이는 남북 교류 상황도 아니고 국가보안법 적용 대상도 아닌 경우인데 남북한 법률 중 어느 법을 적용해야 하고 남북한 법원 중 어느 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일까.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역이고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우리 형법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분단 직후 북한 형법을 제정하여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고, 남북한의 형사법 체제가 매우 상이하다는 점, 북한 주민은 우리 형법의 존재도 내용도 알 수 없음에도 우리 형법을 무조건 적용하는 것이 형법의 주요 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남북한의 차이를 최소화하고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최대한 준수하면서도, 남북한 주민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형사법 적용 기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분단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단국 구성국간의 재판관할권과 준거법 결정 문제에 대해 독일의 판례와 학설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졌으며, 남북한간 법률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통일 전 독일, 특히 서독에서 제시되었던 '기능적 국내 개념(der funktionelle Inlandsbegriff)''의 등장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이 개념을 현재의 남북한 분단상황에서의 형사문제 해결의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통일 전 독일, 동독과 서독은 분단 기간동안 발생한 동서독간의 법률 분쟁 해결에 있어서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동독은 서독을 국가로 인정하여 서독과의 법률 분쟁을 국가간의 문제로 해결하였다. 그러나 서독은 독일 제국의 전통을 서독이 계승하는 것으로 보아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독일 제국의 구성원으로 보았다. 그러다 서독의 통일정책의 변화에 따라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며 동독을 국제적 승인을 받은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동서독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국가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서독의 학설과 법원의 입장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기능적 국내 개념(der funktionelle Inlandsbegriff)'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국가의 법률이 적용 가능하고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지역만을 법의 적용 영역으로 본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서독은 동독의 법적 지위에 대한 판단에서 서독 법이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미치는가를 주시하였고, 동독이 독일 제국 시절과 달리 분단 이후 서독과의 정치경제적 체제는 물론 법적 개념에 있어서도 서독과 상이해지는 점을 주목하면서 서독에서의 동독 법의 적용을 제한하고 서독 형법의 적용 범위에서 동독의 영역을 제외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개념은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되고 동서독 기본조약에 대한 서독 연방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통해 서독 법원은 동독을 서독 형법의 적용 범위에서 제외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동독인의 법적 지위에 대해, 동독의 국가성을 인정하면서도 독일 제국 계승 정신과 서독 기본법의 정신에 따라 동독인도 '독일인'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에도 서독의 동독인의 보호 의무를 변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형법의 적용에 있어서 동독 지역을 제외하면서도, 동독인의 보호 의무를 유지하였고 이는 동독인이 서독의 보호영역에 진입하고, 독일인으로의 보호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 이상 그들을 서독인과 같이 보호한다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북한에 대한 우리 형법의 적용 범위에 관한 기존 논의와 남북한간 발생한 형법 문제 해결 원칙도 독일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형법의 적용 범위, 즉 대한민국 영역에 북한 지역이 포함된다는 의견과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뉘고 있다. 그러나 동서독의 경우와 같이 남북한도 분단 이후 70년의 세월이 지나 법체계나 그 내용에 있어서 동일성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상황으로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기능적 국내 개념'과 같이 실질적으로 우리 법이 적용되고 기능할 수 있는 지역만을 형법의 적용 범위인 '대한민국 영역'이라고 한다면, 북한 지역은 우리 형법의 적용 범위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우리 헌법 제3조 영토조항과 합치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법규정이 실제로 실현되어 규정된 효력을 현실적으로 발휘하는 것이 실효적이라는 점, 북한 지역을 실질적으로 우리 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는 형법상 현실적 영토개념으로 헌법의 규범적 영토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미 북한을 남북한 내부적 관계에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보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현재의 남북한 관계에서도 이러한 영토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라면 북한 주민도 외국인과 같은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으나, 대한민국 국적은 헌법과 국적법에 의해 부여되고 있는 것으로 혈통주의에 기반한 우리 국적법에 따라 북한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나, 다만 북한의 실질적 통제를 벗어나 우리 지역에서 거주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향유하고자 하는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북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주민의 범죄 행위는 우리 형법이 실질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상태로, 우리 법원이 북한 주민의 범죄 행위를 모두 판단해야 한다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상황과 북한 주민들은 우리 형법의 형성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우리 형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형법의 실질적 적용 범위에서 북한 지역을 제외하되, 특히 남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내국인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 형법 규정상 해석만으로는 제한되며 독일의 '대리형사 사법'과 같은 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남북한 교류협력 상황, 통일정책 추진 여하에 상관없이 북한 주민들은 열악하고 비인도적인 북한의 현실을 피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 주민이 북한 지역에서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북한 주민이었던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 처벌 감정을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믿고 찾아온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망감과 적대감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도 북한 주민들과의 원활한 융합을 저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북한 주민들의 범죄 행위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이므로, 본 연구에서는 남북한 형사 분쟁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독일의 '기능적 국내 개념'의 적용을 통해 남북한 분단 상황에서 발생한 형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안책을 세워보고자 부족하나마 노력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