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복지국가가 각 국가의 고유한 사회정치적 선택과 제도 설계의 산물이라면, 동일한 제도적 환경을 공유하고 있는 교육 또한 그에 따른 고유한 모델을 형성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지국가 논의에서 교육은 다른 사회정책과의 근본적인 성격 차이로 인해 특수한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이에 복지국가별 교육정책 및 제도의 특징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에 따른 교육 평등의 수준이 어떠한지 등은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복지국가에서 활성화 정책(activation policy) 또는 예방적 사회정책(preventive social policy)이 핵심 전략이 되면서 개인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이 핵심 사회정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환경에서는 국가가 교육기회 배분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체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에 따라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개선 혹은 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복지국가별 교육기회 보장 정책에 대한 학술적·정책적 관심이 요구된다.
이에 본 연구는 복지국가의 관점에서 국가별 교육기회 보장 정책의 특징을 분석하여 유형화하고, 사회복지와 교육의 연결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그리고 대표적 교육기회 보장 정책인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이 학교교육 단계에서 국민의 교육 연한에 미치는 영향과 학교교육 이후 단계에서 임금소득에 미치는 영향이 복지국가 유형별로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때 본 연구는 복지국가 유형에 따라 교육기회 보장 정책의 지원 범위와 수준이 다르므로, 정책의 효과도 다를 것이라 가정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복지국가 교육기회 보장 정책의 유형론적 특징을 파악하고, 향후 한국이 복지국가로서 교육기회의 균등한 배분을 제고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이를 위해 첫째, 복지국가 관점에서 국가별 교육기회 보장 정책의 유형과 특징은 어떠한가를 살펴보았다. 둘째, 대표적 교육기회 보장 정책으로서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이 국민의 교육 연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하며, 복지국가 유형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았다. 셋째,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의 연한 확대로 인한 국민의 교육 연한 변화가 노동시장 임금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하며, 복지국가 유형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 연구문제의 해결을 위해 서구 복지 선진국과 동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총 17개 국가를 분석대상으로 하여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교육기회 보장 정책의 법제도, 지원 범위, 재정 지출 차원과 관련한 현황자료를 수집하고, 군집분석(cluster analysis)을 실시하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연구문제의 해결을 위해 앞서 군집분석의 결과를 활용하여 '복지국가 유형'의 범주 변수를 생성하였다. 그리고 이를 국제성인역량조사(Program for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의 14개 국가 자료와 결합하여 1960년대 전후(1950년생)부터 2000년대(1985년생) 전후까지 복지국가 유형별 교육기회 보장 정책의 효과를 비교 분석하였다. 학교교육 단계에서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이 국민의 교육 연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데에는 이원고정효과모형(two-way fixed effect model)을,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으로 인한 교육 연한의 변화가 학교교육 단계 이후 노동시장에서의 임금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데에는 Two Stage Least Squares 도구변수 추정법을 적용하였다.
분석 결과를 토대로 도출한 본 연구의 주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각국에서 교육개혁뿐만 아니라 사회개혁의 핵심 아젠다로서 교육기회 보장 정책이 강조되고 있으며, 특히 상당수의 국가가 분석 기간 내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을 확대하는 정책의 수렴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많은 복지국가 연구자들이 밝혀낸 서구 복지국가 유형(자유주의, 보수주의, 사민주의)은 여전히 유효했으며, 동아시아 국가를 별도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이는 각 복지국가가 고유한 역사적 경로에 따라 발전시켜온 사회모델이 교육정책의 역사적 발전 경로와도 연결성을 가짐을 시사한다. 이에 본 연구는 일시적인 정책의 개혁이나 변화가 있더라도 복지국가 체제는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복지국가 유형을 각각 '자유주의형 복지국가', '보수주의형 복지국가', '사민주의형 복지국가', 그리고 '발전주의형 복지국가'로 명명하였다.
둘째, 교육기회 보장 정책은 복지국가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고유한 특징이 있었다. 2010년대를 기준으로, 자유주의형 복지국가는 〈높은 수준의 법제도 보장-낮은 수준의 지원 범위-중간 수준의 재정 지출〉, 보수주의형 복지국가는 〈낮은 수준의 법제도 보장-높은 수준의 지원 범위-중간 수준의 재정 지출〉, 사민주의형 복지국가는 〈높은 수준의 법제도 보장-높은 수준의 지원 범위-높은 수준의 재정 지출〉, 마지막으로 발전주의형 복지국가는 〈중간 수준의 법제도 보장-낮은 수준의 지원 범위-낮은 수준의 재정 지출〉의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동아시아 국가는 복지국가를 향해 약진하고 있는 가운데 2000년대부터 교육기회 보장 정책이 자유주의형 복지국가와 유사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 1990년대 한국은 복지국가로서 매우 미숙 혹은 불완전한 형태였으나, 점차 서구 복지국가를 추적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미국과 가장 유사한 특징을 보였다. 군집분석 결과에서도 싱가포르를 제외한 일본, 한국, 홍콩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유주의형 복지국가와 같은 군집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이는 동아시아 국가가 자유주의형 복지국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발전주의형 복지국가로서 동아시아 국가가 변화·발전하는 궤적에서 가장 가까운 자유주의형에 근접하면서 나타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대표적인 교육기회 보장 정책으로서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의 확대 모두 국민의 교육 연한에 유의한 정적 효과가 있으나, 제도적 강제성이 더 높은 의무교육의 효과가 무상교육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복지국가 유형별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의 확대 효과를 비교 분석한 결과, 자유주의형 복지국가는 의무교육이나 무상교육을 확대하더라도 국민의 교육 연한에 유의한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약한 부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유주의형 복지국가에서 교육기회 보장 정책의 지원 범위 및 수준이 한정적이고 선별적이므로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어려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례적으로 발전주의형 복지국가는 가장 낮은 지원 범위 및 수준에도 불구하고 의무교육과 무상교육 확대의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동아시아 국가의 높은 교육열과 사적 교육 투자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다섯째,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의 확대로 교육 연한이 1년 증가했을 때 평균 교육투자수익률은 유의하게 증가하였으며, 사회적으로 더 유리한 집단(부모의 학력이 고졸 이상인 집단)보다 더 불리한 집단(부모의 학력이 중졸 이하인 집단)의 교육투자수익률이 더 컸다. 다음으로 복지국가 유형별 교육투자수익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자유주의형 복지국가는 교육투자수익률이 가장 높지만 사회적으로 더 불리한 집단보다 더 유리한 집단의 교육투자수익률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민주의형 복지국가는 교육투자수익률이 가장 낮으며, 사회적으로 더 유리한 집단보다 더 불리한 집단의 교육투자수익률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자유주의형 복지국가는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을 통해 국민의 교육 연한을 제고하는 효과는 가장 낮지만, 교육 연한이 1년 증가하였을 경우 얻을 수 있는 투자수익률이 가장 높으며 특히 사회적으로 더 유리한 집단이 더 큰 수익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는 구조였다. 반면 사민주의형 복지국가는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을 통해 국민의 교육 연한을 제고하는 효과가 높지만, 교육 연한이 1년 증가하였을 경우 얻을 수 있는 투자수익률이 가장 낮으며 특히 사회적으로 더 불리한 집단이 더 큰 수익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나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는 구조였다. 본 연구는 이상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한국을 비롯한 발전주의형 복지국가가 현재와 같이 자유주의형 복지국가의 형태에 안주한다면 그리 낙관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정책적 제언을 도출하였다.
첫째, 균등한 교육기회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사회권에 기반한 교육의 보편적 보장을 지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원 대상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하는 교육내용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교육과 사회복지는 아동·청소년이라는 공동의 정책 대상에 대한 복지를 분담하고 있는 상호보완적인 정책으로, 적극적으로 연계·협력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속 가능한 교육정책을 위해서는 발전주의형 복지국가로서 우리나라 고유의 발전과정과 맥락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