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중국 고대의 군례(軍禮)를 고찰함으로써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전쟁을 이끌어 나가기를 지향하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지향한 전쟁의 방식에 담겨 있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인식은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주례(周禮)』와 『예기(禮記)』를 비롯한 중국 고대의 문헌 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전쟁 상황에서 신성한 힘에 접근하는 의례들을 분석하였다. 본고에서는 본론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첫 부분에서는 전쟁 수행의 주체를 '성화(聖化)'하는 의례들을 다루었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불제(祓除)'와 관련된 군례의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우선, 전쟁 행위 주체를 성화하는 군례의 요소들로는 출정 전의 각종 제사, 조묘에서의 장수 임명 의례, 신주를 군대로 들여와 출정하는 것, 그리고 전쟁 후의 제사 등이 있다.
출정 전의 제사로는 토지신 사(社)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의제사(宜祭祀)'가 있다. 의제사의 핵심은 제사에 사용한 희생제물의 고기인 '신(脤)'을 장수가 받아 가는 절차이다. 이 절차를 통해 장수는 토지신의 명령을 체현하고 그 운명을 책임지는 토지신의 대리인이자 분신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출정 전에 행해지는 제사로 조묘(祖廟)에서 지내는 '조제사(造祭祀)'도 있다. 이것은 군대를 동원해 국외로 나가라는 전시(戰時)의 새로운 명(命)을 조상신들로부터 받는 절차이다. 이와 더불어 조상신의 사당에서는 전쟁 계책과 날짜에 대한 점복(占卜) 결과를 받는 일과 군사 계책을 세우는 묘산(廟算) 등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러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 결정은 군대의 움직임을 성화한다. 천자가 직접 출정할 때에는 전쟁에 앞서 하늘에 대한 제사인 '유제사(類祭祀)'를 거행하여 하늘로부터 전쟁의 명을 받았다. 하늘은 땅과 함께 종종 만물의 생명의 원천으로 그려지지만, 이 경우에서 보듯, 전쟁의 출처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군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천자나 제후가 직접 출정하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조묘에서 장수를 위임하고 '주살'이라는 형벌의 의미를 담은 부월(斧鉞)을 수여하여 적에 대한 장수의 주살 행위를 신성한 뜻에 입각한 것으로 성화한다. 한편, 토지신과 조상신에 대한 제사를 마친 후에는 각각의 신주를 꺼내와 군대 내부로 가져옴으로써 신주들이 출정 절차에 동행하도록 하는 절차가 있었다. 이들 신주는 출행 집단의 일부를 구성함으로써 군대를 성화할 뿐만 아니라, 전투가 종료된 후 군대 내에서 상벌이 이루어질 때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전쟁 후에도 하늘과 토지신, 조상신에 대한 제사가 요청되었는데, 이로써 출정의 시작과 끝이 제사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군례의 대칭적 구조를 볼 수 있다. 신들은 전쟁을 명하고, 명을 수행한 결과를 거두어 가는 전쟁의 주체로서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처럼 신성한 존재들이 인간 군대와 더불어 전쟁에 깊숙이 관여한다는 관념이 군례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음으로, 본고에서는 군례 속 '불제' 의례 요소들을 다루었다. 먼저, 출정 전에 깃발과 북, 무기 등의 군사 기물에 피를 칠하는 의례가 있다. 사물에 피를 칠하는 의례, 즉, '흔례(釁禮)'가 지향하는 바는 피라는 물질을 사용하여 대상 사물의 부정(不淨)한 기운을 제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군사 기물에 대한 출정 전의 흔례는 사악한 기운의 방해 없이 온전히 신성한 영역과 통한 상태의 기물들로 군사 행위를 하게끔 하는 의례라 할 수 있다. 단, 흔례는 희생제물을 죽여 그 피를 바침으로써 대상 사물을 신성한 사물로 만드는 성화 의례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피'라는 물질과의 접촉을 활용하여 기물을 통해 신성한 힘을 발휘하여 전쟁을 수행하고자 하는 지향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흔례의 주요 대상이었던 군사용 깃발과 북, 그리고 무기는 모두 부정한 기운과 재앙을 퇴치할 수 있는 성물(聖物)로 종종 활용되는 것들이었다. 색깔별·방향별로 부합하는 깃발을 사용하거나, 깃발에 그려진 무늬를 활용한다면 주변의 삿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북 역시 사악한 기운을 공격해 쫓아내는 위력을 지닌 의례 도구로 사용되었다. 무기류도 재앙을 퇴치하는 위력을 갖는 성물로 여겨져 상례(喪禮)에도 활용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기물들에 대한 흔례는 이들이 성물로서 주변을 '불제'하는 신성한 힘을 전쟁 중에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출정 과정에서 군대가 밟고 지나는 모든 공간들에 잠재된 위협을 물리치기 위한 불제 의례들도 있었다. 먼저, 도로의 신에게 제물을 진설하여 경계 밖에 도사리는 위험을 물리치려는 행위로서 '도제(道祭)'가 있다. 또, 군대가 경과하는 지역에서 지내는 산천제(山川祭)는 산천으로부터 입을 수 있는 재앙을 면하기 위한 의례였다. 마지막으로 군대가 정벌하는 땅에서 행하는 의례인 '마제(禡祭)'가 있다. 마제는 군사 행위가 이루어지는 지역의 신령에게서 오는 위험을 불제하기 위한 의례로 이해될 수 있다. 군대가 자신의 본거지가 아닌 지역의 땅을 밟는 것은 신령들의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출정 공간 곳곳에서 행하는 의례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위의 불제 의례들을 통과함으로써 전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불제 의례가 되게 된다고 보았다. 전쟁은 부정을 퇴치하는 갖가지 불제 의례들을 내포하면서 불제의 위력을 갖는 성물들을 활용하여 적을 멸하고자 하는 행위라는 점에 있어서 크게 보았을 때 일종의 불제 의례가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전쟁을 '①신성한 주체가 수행하는 ② 불제 의례'로 만들고자 하는 지향이 중국 고대의 군례에 담겨 있다.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한 신성한 힘에 접근하여 전쟁을 이끌어 나가기를 지향하는 모습을 군례를 통해 볼 수 있다. 또한 집단의 생명력을 되찾기 위해, 생명을 주관하는 성스러운 존재들과 결합하여 부정(不淨)한 요소들을 물리친다는 관념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지향과 관념들이 담긴 군례의 기본 틀은 후대 동아시아 여러 왕조의 군례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