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은 문명화되고 자본화된 시대를 고정적 제도와 체계에 의하여 〈관리된 사회〉라고 파악하며, 그에 따라 '언어' 또한 획일화되고 타락했음을 인식한다. 나아가 그는 굳어버린 언어가 세계의 진실을 그려낼 수 없음을 깨닫고, '시적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천착하여 문학 활동을 개진한다. 시인은 모든 언어가 이미 기존의 관념에 물들어 있다는 반성적 사유를 바탕으로, 언어와 세계에 덧씌워진 관념을 벗겨내는 응전의 태도를 취한다.
본고는 1980년대 소비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와 물신주의 풍조에 대한 오규원의 시적 인식을 고찰하기 위하여 서양 문화의 제국주의적 침투라는 지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는 현대로 이행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바탕으로 해명된다. 급격한 근대화·세계화의 흐름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기존 전통적 제국주의가 원래의 강압적 방식으로 지배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없게 하였다. 대신 서양 제국의 이데올로기는 '문화'라는 다른 형태로 지배력을 지속해서 행사하는 전략을 택한다. 이때, 서양 제국이 상위 문화라는 이데올로기를 상품과 광고에 은폐해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배문화의 상징 조작'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배문화의 상징 조작 과정은 레닌의 제국주의 담론에서부터 에드워드 사이드까지 이어져 온 문화 제국주의 담론 및 소비 사회에 관한 보드리야르와 기 드보르의 통찰을 통하여 설명될 수 있다.
2장에서는 오규원의 1980년대 상품·광고시편에 관한 분석을 토대로, 오규원이 상품과 광고 속 지배문화의 이데올로기를 읽어내고 있음을 밝힌다. 그는 상품으로 표상되는 지배문화의 이데올로기가 상징 조작되어 은폐된 채 대중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포착한다. 특히 그는 환상적인 이미지가 소비자를 미혹하여 허위 욕망을 유발하는 과정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이러한 지배문화적 이데올로기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순응하는 대중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3장에서는 앞서 상징 조작된 지배문화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는 오규원의 시도를 고찰한다. 타락한 언어에 배반당하지만, 언어와 관념에 대한 시인의 고민은 결국 '시인은 시를, 언어를 버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그는 시인이기에 언어의 배반을 알면서도 이를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언어가 가질 최대치의 잠재력을 탐구한다. 상품·광고시는 이러한 시도의 구체적인 결과물이다. 나아가 오규원은 자본주의 사회 기저의 작동원리인 '교환의 원리'를 시 세계에 재현하여 대중의 각성을 유도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시인의 자본주의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존 세계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데까지 이어진다. 오규원은 인간을 지배하는 이념과 가치가 모두 기존 언어의 기호와 의미 체계에 의해 고정되고 굳어버렸음을 인지하며, 이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기호 간 무의미한 교환을 통해 언어의 의미를 제거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렇게 그의 시는 시의 언어를 통해 기존 세계를 재해석하여 부정성을 드러내고, 대중이 이에 거부해야 함을 간접적으로 호소한다. 세계는 고정되고 타락하였으며, 그 세계를 드러내는 언어조차 굳어버렸지만, 결국 언어만이 세계에 응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러한 모든 시도는 진정한 자유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 그가 삶과 시의 대결에서 통감했던 패배 의식을 '승리로 굳게 읽는 방법'으로 전환하게 한다.
문학의 위치를 문화적 맥락과의 역동적 교접 속에서 재정립하는 시도는 매우 중요하다. 오규원은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 언어가 관념을 드러내는 방법 등에 대해 고민하며 문학 활동을 지속해왔으며, 그의 작품 세계는 '시적 언어'에 대한 치열한 모색의 과정에서, '언어'로 시대에 응전하는 치열한 투쟁의 결과물로서 구축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오규원의 문학적·문화적 탐구를 역사 및 사회와의 연결 작업으로서 재해석하는 과정은 한국 현대 시를 탐구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지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