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 Michael Ende(1929-1995)의 텍스트는 국내외에서 흔히 환상문학이나 청소년문학의 범주에서 이해되어 왔다. 오늘날의 사회를 인간 특유의 정신이 처한 위기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그는 환상적인 요소를 통해 비환상적인, 즉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그의 문학은 현실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참여문학과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함으로써 1970년대 독일의 사회비판적인 문학의 경향과도 차이를 보인다. 특히 청소년 중심의 텍스트에서 그는 일그러진 현실 사회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하기보다, 독자들에게 유년기의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을 다시 열어주고 새로운 현실 체험과 함께 조금 더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렇게 보면, 미하엘 엔데는 환상문학의 부흥에 크게 기여한 작가로서, 현실적인 요소가 지배적이었던 지난 세기 중반 이후의 독일 문학계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고 인정받을 만하다. 도구적 주지주의와 물질 중심의 사고에서 탈피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발단이었다는 점에서 보면, 미하엘 엔데의 작품은 여전히 규범적인 사회 질서와 점점 더 다양해지는 개인적 삶의 방식이 맞부딪히는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환상적인 자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인간 치유의 대안적인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자는 미하엘 엔데의 대표적인 청소년문학이자 환상문학 텍스트 『모모 Momo』(1973)와 『끝없는 이야기 Die unendliche Geschichte』(1979)의 서사가 특히 한국 청소년의 심리적 치유를 위해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한국 청소년들은 학업 성과에 대한 압박과 가족 문제 그리고 또래들 사이에서의 갈등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정서적 안녕을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청소년들의 심리적 건강과 자아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며, 장기적으로는 삶의 질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함으로써 결국 '사회문제'가 되곤 한다. 이에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심과 노력이 시급하고, 이에 대한 다각도의 체계적인 논의도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문학 고유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건대, 그동안 청소년문학 및 환상문학의 치유적 기능과 효력에 대한 논의는 크게 주목받지 못해왔다.
이에 본 연구는 최근 독일의 대표적인 청소년문학 및 환상문학 작가인 미하엘 엔데의 텍스트에 내재된 치유력과 한국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청소년기는 자아 성장과 주체적 삶을 탐색하는 과정을 매우 집중적으로 겪는 독특한 시기로, 이러한 과정에서 문학은 청소년들의 정서적 성장과 인지 발달을 지원하는 중요한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자아에 대한 관심이 뚜렷하게 늘어가는 시기에 특히 여러 사회적 규범으로 인해 자율적인 자기 성찰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한국 청소년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기성세대의 '지도'에 의지하기보다 문학 체험과 같은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한 스스로의 안목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그 성과 또한 적지 않게 기대할 수 있다.
전체적인 연구의 배경을 서술한 I 장의 서론에 이어 II장에서는 우선 청소년문학과 환상문학의 개념을 정의한다. 여기서 특히 문학의 치유적인 요소에 대한 이론들을 살펴보며, 본 논문의 주제에 접근하는 연구자의 기본 관점을 제시한다. III장에서는 20세기 후반에 환상문학에 몰입하면서도 사회적인 현실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낸 독일의 청소년문학 작가 미하엘 엔데의 대표작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를 분석하여, 이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환상성과 그에 따른 치유적인 맥락 내지 잠재력을 규명한다. 이어지는 IV장에서는 한국 청소년들의 심리적 치유를 위해 해당 텍스트들에 내재된 서사적 가능성을 살펴본다.
『모모』는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 및 물질 중심주의로 인해 각박해진 현대 사회에서의 시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시간은 삶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자 가치의 상징이다. 그것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파괴적이거나 생산적일 수 있다. 청소년 주인공 모모가 시간 도둑인 회색 신사들에게 대항하며 시간을 되찾아서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 독자들은 기성세대의 규범으로 인해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인지하고, 스스로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를 얻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자기 치유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끝없는 이야기』는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를 배경으로 '개인과 사회' 내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복잡한 관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바스티안은 주변의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된 청소년으로서 내적으로 매우 위축되어 있다. 환상적인 문학 독자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현실 세계로부터 환상적인 세계로 빠져드는 과정에서 여러 모험적인 사건을 체험한 끝에 결국 긍정적인 의미의 자아정체성을 찾는다. 이러한 서사 및 주제를 통해 유사한 환경 속에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많은 청소년 독자들은 스스로의 현실을 돌아보며 새로운, 즉 건강한 자아를 만들어 가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위의 각 작품에 내재된 치유적인 요소들이 한국 청소년들의 심리적 문제 해결에 대한 대안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일반적으로 내면세계를 다루는 독일 문학은 삶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를 촉진할 뿐만 아니라 심리 치유적 측면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청소년문학은 가치관이나 정서가 불안정한 시기에 있는 어린 주인공의 자아 성장 및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겪는 문제를 자유롭고 환상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청소년 독자의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경직된 교육 제도나 입시제도로 인해 특유의 심리적 불안정과 가치관의 혼돈을 겪는 한국 청소년들이 독일의 환상적인 청소년문학의 치유적 요소를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주체 의식을 키울 수 있다면, 철저히 제한적이던 사고의 폭을 넓히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독서 체험 및 자기 치유 과정은 특유의 사회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비춰질 때 실질적인 치유력을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