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혼담이 여성영웅소설의 성격을 규정짓는 기초 서사이자 근본 서사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여성영웅소설은 남성영웅소설과 달리 군담뿐만 아니라 혼담이 주요 서사로 부각되면서 남성영웅소설과는 다른 서사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 서사는 혼담의 순차구조에 따라 선혼담 서사와 후혼담 서사로 나타났다. 선혼담 서사는 혼담이 먼저 제시되고 이후 군담이 나타나는 구조로 모든 서사가 혼담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한편 후혼담 서사는 군담이 먼저 제시되고 이후 혼담이 나타나는 구조로, 서사 초반에는 군담과 관련된 서사만 진행되다가 작품 중반부터 혼담이 개입되는 방식이다. 여성영웅소설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선혼담 서사는 '혼담→군담→혼담' 순으로 서사가 진행되면서 혼담이 근본서사로 작용하고 있으며, 후혼담 서사도 '군담→혼담→군담'으로 서사가 진행되지만 혼담 비중이 군담에 비해 작지 않다. 특히 확장된 서사를 통해 혼담과 관련된 갈등이 길게 묘사되면서 군담보다 비중 있게 다뤄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여성영웅소설은 혼담을 근본적 서사로 삼으면서 남성영웅소설과는 확연하게 대별되는 서사 구조를 확보하고 있었다.
한편 여성영웅소설은 공간의 이동에 따라 서사가 진행되면서 공간별로 여성의 지위가 변화하게 된다. 선혼담 서사는 부모의 공간에서 영웅의 공간으로, 다시 부부의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성별적 제약을 받던 여성이 영웅으로 그 지위가 변화하고 다시 여성 영웅이 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이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반면 후혼담 서사는 부모의 공간에서 영웅의 공간으로, 다시 부부의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영웅이었던 주인공이 여성으로 회귀하였다가 다시 영웅의 지위를 되찾아 여성 영웅이 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선혼담 서사와 달리 여성의 주체성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를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 제도의 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혼담 서사와 후혼담 서사는 같은 공간이더라도 혼담의 위치에 따라 여성의 지위가 다르게 형상화되고 있으며 여성영웅소설의 주제의식도 다른 방향성을 가지게 된다.
한편 여성영웅소설의 또 다른 특징인 조력은 초월계 조력과 현실계 조력으로 나뉘어 나타난다. 초월계 조력은 영웅성 및 배우자를 암시, 여성과 협력 관계를 형성하여 여성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 여성의 정신적 안정감을 형성, 여성의 역량을 계발·지원해 주는 역할로 나눌 수 있다. 현실계는 여성의 위기를 감지하여 고지, 보호와 양육을 지원, 정서적 연대를 형성, 동지적 연대를 형성하는 역할로 나타난다.
이러한 조력 관계는 서사 유형에 따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조력 관계망을 형성하게 된다. 선혼담 서사는 여성의 성장을 돕는 조력망이 형성되어 여성과 연대, 소통하며 여성을 영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사회적 공동망을 형성한다. 여성영웅소설은 보통 영웅 서사와 혼담 서사로 분리될 수 있으며 선혼담 서사에서는 두 서사가 각기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된다. 이때 영웅 서사에서는 천상계가 주요 조력으로 나타나 성별적 제약 대상인 여성을 영웅으로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조력이 이루어지고, 혼담 서사에서는 현실계가 주요 조력으로 나타나 혼담(결연과 늑혼)을 이용하여 여성을 사회로 진출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 연대관계를 형성하며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조력하게 된다.
반면 후혼담 서사는 영웅 서사와 혼담 서사가 분리되어 각기 시차를 두고 진행되는데 영웅 서사에서는 천상계가 주요 조력으로 나타나지만 그 조력이 약화되어 나타난다. 이후 발생하는 혼담 서사에서는 주로 현실계가 주요 조력으로 나타나지만 조력 대상의 역전이 발생하게 된다. 즉, 영웅 서사에서는 여성과 연대 관계에 있던 부친, 유모, 천자 등의 주변인들이 혼담 서사로 진입하는 순간 여성에게는 反조력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때 여성과 반조력 관계를 형성하는 주변인들은 배우자 남성을 조력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조력 대상의 역전이 이루어진다. 이로 인해 후혼담 서사는 여성에게 反조력망이 형성되면서 영웅 서사가 여성 억압 서사로 전환되는 특성을 보인다. 특히 군담을 통해 여성의 영웅성을 최고조로 이끌어 낸 직후 혼담을 개입시켜 영웅을 여성으로 회귀시키는 방식은 여성에 대한 사회의 억압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후혼담 서사는 혼담이 여성에게 얼마나 부당하게 작용하는지, 여성의 능력과 상관없이 여성을 차별적 대상으로 규정하고 남성의 가부장적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 대상으로 묘사함으로써 당대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성영웅소설은 혼담과 조력 서사가 관계망을 형성하며 전체 서사의 방향성을 이끌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며 여성영웅소설이 영웅 서사와 더불어 조력 서사, 혼담 서사가 밀접한 관계망을 형성하며 서사를 구성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여성영웅소설의 주제의식도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증명하면서 여성영웅소설의 가치를 부각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연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