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시인의 사랑 Op.48》(Dichterliebe, Op.48)을 중심으로 낭만주의적 모티브에 대한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음악적 적용을 밝힘으로써 슈만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낭만주의 정신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다.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주도했던 슈만은 음악을 통해 낭만주의가 추구했던 이상을 '시적원리'로 구현하고자 했다. '시적인 것'은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한 이상향으로 문학적인 의미가 아닌 예술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장르 중 하나인 예술가곡(Kunstlied)은 슈만에 의해 '시적' 예술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슈만은 《시인의 사랑》을 통해 낭만주의 시인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의 『서정적 간주곡』(Lyrisches Intermezzo)에 드러나는 다양한 낭만주의적 모티브를 음악적으로 제시한다. 음악을 통해 낭만주의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한 슈만의 '시적' 음악관이 《시인의 사랑》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 주목한 것은 낭만주의적 모티브의 철학적 본질이 현실세계와 무한세계의 이원성에 있으며, 두 세계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작품 속 자아의 모습이 일련의 서사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사에 따라 낭만주의적 모티브를 의미 단위가 비슷한 동경, 고통, 초월, 현실귀속의 키워드로 범주화 할 수 있다. 이것을 중심으로 《시인의 사랑》을 분석하면 '선율모티브 기법'과 '조성관계'를 통한 슈만의 음악적 적용을 발견할 수 있다. 슈만이 낭만주의적 모티브를 음형으로 형상화하여 유사한 심상에 반복 적용하였으며, 명확한 서사구조 내에서 의도적으로 조성을 배치한 것이다.
동경은 현실을 고통으로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19세기 무렵 활동한 지식인들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원초적 합일상태로 존재했다고 여겨지는 태고의 '황금기'(Goldenes Zeitalter)를 동경했다. 어떠한 경계도 존재하지 않았던 보편적이고 조화로운 단일체는 인간의 원죄적 타락으로 인해 분리를 경험하게 되었고, 분리된 자아는 소외된 상태에 놓여 존재론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분리는 주체와 대상의 분리를 통해 자아를 완전하게 확립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으로 인해 야기된 것으로, 외부의 대상과 주체의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외면과 내면의 괴리는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였고, 이러한 단절로 인해 자아가 느끼는 고립감이 곧 현실의 고통이었던 것이다. 슈만은 이러한 내용을 선율모티브 기법을 통해 음악적으로 제시한다. 자아의 고립감을 묘사하는 선율모티브는 3도 순차 상·하행 형태로 나타나며, 이를 확장한 4도 순차 상·하행 형태와 3도, 4도 아치형의 형태가 동일한 의미로 연가곡 전체에 맥락적으로 사용된다. 동경을 드러내는 시어에서 나타난 3도 상행, 2도 하행 모티브는 전체 연가곡에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이를 확장한 형태는 이미지를 강화한다. 그리움을 의미하는 6도 도약 진행은 6도 순차 진행으로 확장되어 동경의 정서를 강조하기도 한다. 고통을 표현하는 모티브는 3도 하행, 2도 상행 형태로 연가곡 전체에 사용된다. 또한 레치타티보적인 동음 반복 음형은 내적 고통을 암시하는 의미로 활용된다.
시적 화자는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월을 통해 합일을 갈망하는데, 이는 황금기보다 한 차원 높은 유토피아로 상징화된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설명에 따르면 잃어버린 낙원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무의식적 동경은 타자와의 상상적 동일시가 유지되는 환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슈만은 화자의 충족되지 못한 갈망과 환상을 5도 순차 진행 형태인 클라라 모티브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는 5도 도약 진행으로 축약되기도 하며 가사의 허구성을 암시하는 의미로도 중첩 사용된다. 또한 슬픔과 죽음의 모티브인 반음계적 4도 하행 진행이 초월의 의미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Ger.6화음과 감7화음으로 유토피아적 이미지를 강화하기도 한다. 낭만주의 시대 많은 작품들은 작가 자신이 창조한 환상을 스스로 파괴하는 아이러니를 통해 현실로 귀속된다. 《시인의 사랑》역시 시적 화자의 초월에의 갈망이 결국 현실로 귀속된다. 슈만은 이러한 현실귀속을 의미하는 선율모티브로 2도 상행, 3도 하행 진행을 제시한다.
슈만은 전체 서사의 내용적 구분을 음악에 구현하기 위해 의도된 조성관계를 사용한다. 시가 내용적으로 연결될 때는 5도권 내의 가까운 조성을 배치하고, 내용상 단절이 필요한 곳에는 5도권에서 먼 조성을 배치하여 음악적으로도 내용의 단절을 환기시킨다. 또한 단조로 시작하여 장조로 끝나는 진행도 나타나는데, 이러한 단조-장조의 진행은 유토피아적 관념을 나타내는 슈만의 음악적 장치이다. 모호한 화성과 반음계, 차용화음 등은 부정적인 결말을 암시하거나 시적 화자의 불안과 혼돈을 나타낸다. 성악의 열린 종지는 시의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 후주에서는 음향이 지속되며 사라지는 듯한 종지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외면과 내면의 괴리감을 지닌 낭만주의적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시인의 사랑》에 나타난 슈만의 '선율모티브 기법'과 '조성관계'는 전형적인 낭만주의 정신의 음악적 제시로써, 본질적으로 그의 '시적' 미학관을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유용한 통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