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보건의료정책 핵심주체인 의사 집단을 통해서 해방 이후 1961년까지의 보건의료체제 재편을 파악하였다. 의사 집단의 보건의료문제에 대한 인식, 보건의료체제 구상, 다른 종별 의료직에 대한 대응, 기층단위 의사 배치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의사 집단의 활동과 보건의료체제 재편에 대해 규명했다.
1945년 8월 해방 직후 귀환민 수용에 따른 사회 혼란 속에서 국가는 질병 관리 체계를 정상화해야 했다. 이승만 정부는 일차적으로 전염병을 관리하여 국민의 일상을 안정시키고, 사회 혼란을 가라앉혀야 했다. 나아가 보건의료문제 해결은 이승만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과제였다. 1950년 6·25전쟁에 따른 국가 존립의 위기, 1956년 대선의 실질적 실패에 따른 정권 위기, 그리고 기층 농촌의 경제난, 실업률 상승과 부패에 따른 경제적 위기가 중첩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국가·정권·경제 위기 속에서 보건의료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정권 보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본문에서 다룬 내용을 장별로 간략히 정리하면, 제1장은 보건의료의 주체로서 의사 집단의 등장과 이들의 미군정기 행정 참여에 대해 살폈다. 제2장은 이승만 정부시기 보건의료정책의 지향이 수렴되는 과정과 보건의료체제 재편, 아울러 의사 집단의 다른 의료직제에 대한 구분을 살폈다. 제3장은 전후부터 1961년까지 보건의료체제 재편과 의사 집단의 보건의료 역할 수행을 인력 배치 문제를 중심으로 살폈다.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해방 이후 의사 집단은 공적 역할로 등장했고, 보건의료체제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 의사 집단은 미군정기 보건의료행정에 참여하여 공적 책임을 부여받았다. 보건의료정책 시행과 의사 집단의 개입방식과 관련하여 식민지기 식민권력의 행정 참여 배제로 인해 개업의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의사 집단은 정부 수립 이후 핵심적인 정책집단으로 계속해서 역할 했다.
의사 집단은 국가 수립 이후 본격적으로 보건의료정책을 펼칠 기회를 맞았다. 의사 집단은 지역 보건의료문제 해결과 의료 편중 문제 해결을 위한 지향과 정책을 제시했다. 의사의 무의면 파견, 의료이용조합 설치였다.
전쟁 이후 의사 집단의 구상과 계획이 외원의 협조 속에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의사 집단이 서양의학 중심으로 보건의료체제를 재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전시 의사 집단의 전염병 방역 활동의 성과와 서양의약품에 대한 대중의 의존 속에서 서양의학에 대한 국민의 신뢰 확보와 맞물렸다. 해방 이후 보건의료행정에서 의사 집단의 역할은 한국 보건의료체제가 서양의학 중심으로 자리 잡게 하는 핵심적 계기가 되었다.
둘째, 보건의료체제 재편을 통해 지역조직을 확대해가면서 의사 집단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의사 집단의 공적 역할 수행 사이에서의 갈등과 방안 모색이 나타났다. 전쟁 이후 의사 집단은 구호·무료 치료를 위한 전시 기층조직을 보건진료소로 전환하고, 이후 보건소로 개편하며, 국민에게 보건의료 혜택이 주어질 수 있도록 보건의료체제를 재편해나갔다. 아울러 이를 확대 가동할 수 있도록 의료이용조합을 활용하였다.
1950년대 중반 의사 집단은 의사의 양적 증가를 통해서 당장의 보건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며, 의사를 무의면에 배치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하였다. 하지만 개업의의 경우, 무의면과 도시지역 개업 간 수입 격차로 인해 무의면 진료 유도는 어려웠다. 다수의 의사가 군의관으로 동원되는 한편 '선진의학' 지향 속에서 신규자격의사는 해외로 유출되었고, 보건의료활동의 가용인력은 부족했다.
지역 보건의료문제가 부각된 상황에서 의사 집단은 보건의료 주체로서 그간 의학 수준이 낮다고 간주한 한지의사(限地醫師)의 역할 제고를 검토하였다. 한지의사 활용이 주요하게 논의되었으나, 의사 집단 일각은 한지의사를 공인하는 결과와 다르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후 당국은 보건의료조직 확충·재배치를 시도하는 동시에 공의(公醫)제도를 활용하였다.
한편, 보건의료정책 및 체제 수립과 관련한 의사 집단 활동의 귀결과 영향으로서 국가의 개입인 의료보험제도 도입이 모색되었다. 의사 집단은 의료보험제도를 통한 의사 생활 안정을 기하며 의사의 지역 보건의료 배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 형성을 기대하였다.
셋째, 의사 집단은 과학성·전문성을 추구하며 보건의료체제에서 한의학을 비롯한 다른 직역을 배제하고 이를 독점했다. 의사 집단의 보건의료문제 해결방안은 의학의 전문화와 '비전문적' 의료에 대한 차별이었다. 의사집단은 과학성·전문성을 추구하며, 수준 높은 의사를 통해서 '국민보건'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의사 집단의 보건의료정책은 다른 종별 의료직제에 대해 배타적인 정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의사 집단이 취했던 다른 종별 의료직제에 대한 배타적인 정책은 전쟁으로 변화를 요구받았다. 의사 집단은 전쟁과 전후 재건과정으로 인한 의료 수요의 확대 속에서 다른 종별의 의학과 전문성이 떨어졌다고 평가했던 의료직역의 활용 여부를 검토하고 결정해야 했다.
국민의료법으로 한의학이 공인되었으나, 의사 집단은 한의학이 가진 '비과학성'을 비판했다. 의사 집단은 국가 보건의료 주체에서 이들을 배제했다. 다만, 한지의사 활용과 관련해서 의사 집단 일부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러나 국가가 한지의사도 국가의 공식적 보건의료 주체로 설정하지 않는 가운데, 의사 집단은 이들과 직역 갈등을 빚었다.
이상의 연구 결과는 기존의 1945~1961년 보건의료에 대한 평가를 달리할 지점을 제공한다. 의사 집단이 냉전분단체제 하 재정과 인력의 제약속에서도 과학성을 추구하며 국민보건에 기여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주체를 배제하는 과정은 보건의료 확대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판단과 선택이었다. 의사 집단이 보건의료 확대를 모색하고 정책으로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의료 편중 문제 해결의 지난함은 의사 집단이 보건의료의 양적인 확대를 위해 다른 의료직제를 활용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측면에서 노정되었다. 즉, 의사 집단은 의료 수준의 질적 향상을 통해 보건의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지향을 추구했고, 이는 이후 한국 보건의료체제 발전의 방향성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