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인류의 문화와 예술적 성취가 담긴 영속적 문화제도인 뮤지엄을 탈(脫)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뮤지엄 연구의 새로운 인식론과 방법론에 관한 함의(含意) 및 잠재력을 국내 대표적 뮤지엄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입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어권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발전해 온 개념인 '문화매개(médiation culturelle)'는 문화적 대상물과 향유자가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행해지는 다방면의 개입 활동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잠재적인 향유자를 확대하고 이들의 만족도를 증진하여 결국 모든 대중이 스스로 문화예술을 찾고 즐기도록 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최근 뮤지엄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변화에 발맞춰, 기존의 물리적, 공간적 개념이었던 뮤지엄을 다기능성(multifunctional), 횡단성(transversal), 트랜스미디어(transmedia)의 특성을 가진 문화매개의 '행위', '실천', '과정'으로 인식하는 시각으로 전환한다. 이어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문화적 대상물, 관람객, 기관이라는 삼자(三者) 간의 활동으로 파악되던 문화매개를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가 공동으로 작용하는 활동으로 확장하였다. 이를 통해, 뮤지엄의 문화매개 과정에서 그 역할이 커진 디지털기술을 비롯하여 이에 관여하는 무수한 요소들에 대한 시각을 갱신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본 연구는 이 과정에서 도출한 새로운 문화매개 모델을 한국의 국립 뮤지엄 세 곳의 실제 현장에 적용(praxis)함으로써 개념적 층위에 머물지 않고 연구의 구체성을 강화하였다.
본 연구는 뮤지엄의 문화매개가 수행하는 영속적인 역할을 재확인하고, 현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뮤지엄 인식의 이정표를 제시하고자 했다. 본 연구는 뮤지엄을 유동적인 '관계 효과'로 재개념화함과 동시에, 기존의 '위계적 존재론(hierarchical ontology)'을 모든 뮤지엄 행위자의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으로 전환하고, 뮤지엄이 일방적이고 경직된 소통에서 벗어나 자발성과 창발성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함으로써, 첨단 기술시대에 요청되는 새로운 뮤지엄 인식론(epistemology)을 제시한 의미 있는 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