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어 자유 발화에서 억양구 경계 실현이 발화의 통사·의미·정보 구조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갖는지 밝히고, 그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유 발화에서의 억양구 경계 실현이 발화의 구조를 정교하게 반영할 뿐 아니라, 구어 상황에서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도모하려는 화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임을 보이고자 하였다.
분석에 활용한 자료는 20대 남녀 50명(각각 25명)의 독백 자유 발화 자료로, 이는 음성 코퍼스 '2차 말글 비교 실험 DB'의 일부였다. 이 자료에는 억양구 단위에 대한 운율 주석이 갖추어져 있으며, 본 연구에서는 여기에 통사·의미·정보 구조에 관한 주석을 추가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본 연구는 억양구 경계가 발화의 어느 위치에서 나타나는지를 문장 성분, 절의 통사 유형, 연결 어미의 의미 기능, 정보 구조 구성 성분에 따라 나누어 살폈다. 또한 그 위치에 따라 억양구의 운율적 특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하였다.
억양구 경계는 후속 부분과의 통사·의미적 독립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위치일수록 더 자주 실현되는 경향을 보였다. 접속절 경계와 발화 초의 정보 구조 경계에서 억양구 경계가 가장 전형적으로 실현되는 위치로, 이들 경계에서의 억양구 경계 실현율은 대개 80~90% 정도였다. 또한 억양구의 길이는 억양구 경계가 어느 위치인지에 따라 다양한 길이로 나타났는데, 평균적으로 접속절 경계 억양구는 9.3음절, 비절 경계 억양구는 5.9음절의 길이를 보였다.
억양구의 운율 특성은 억양구 경계 실현 위치에 따라 달라졌다. L%는 전반적으로 가장 빈번히 쓰인 경계 성조였으나, 이는 비전형적 억양구, 즉 후속 부분과의 통사·의미적 독립성이 약한 위치에서 경계가 실현된 억양구에서의 주된 경계 성조였다. 이와 달리 H%, HL%는 전형적 억양구, 즉 후속 부분과의 통사·의미적 독립성이 강한 위치에서 경계가 실현된 억양구에서 L%보다 자주 쓰였다. 전형적 억양구에서는 비전형적 억양구에서에 비해 끝음절 지속 시간은 짧아지며, 후행 휴지 실현율은 높아지고, 후행 휴지 지속 시간은 길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억양구 끝음절과 후행 휴지 지속 시간의 상대적인 비인 '후행 휴지/끝음절'이 전형적 억양구일수록 높게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억양구 경계 실현의 전형성은 연결 어미 의미 기능의 통사·의미적 독립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이에 따라 독립-배경 > 독립-대조 > 독립-나열 > 독립-담화 > 독립-선택 > 의존-원인 ≧ 의존-선행>의존-양보 ≧ 의존-동시 > 의존-조건 > 의존-목적 > 의존-방식의 위계가 음성·통사·의미적 차원에서 정도성을 띠며 위계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자료에서 사용된 연결 어미의 대부분은 '-고, -어서, -는데, -으면, -으면서, -으니까'였으며, 전형적 억양구 또한 대부분 이들이 쓰인 절 경계 억양구였다.
발화 계획과 산출이 실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유 발화의 특성상, 이와 같은 억양구 경계 실현은 단지 통사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도모하려는 화자의 의도가 반영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자는 발화 내의 주요 경계에서 긴 정보 단위를 적절한 덩어리로 끊어서 전달할 수 있고, 억양구 경계 실현의 전형성을 운율적 특성을 통해 신호화함으로써 발화의 통사·의미 구조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또한 발화 초의 정보 구조 경계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억양구 경계 실현은, 발화 내의 두드러지는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발화 계획을 위한 주요한 지점으로 기능한다. 한편 자유 발화에서만 나타나는, 단지 생각을 나열하면서 연결되는 절들의 경계에서 특징적인 억양구 경계 실현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는 발화의 점진적 산출과 그에 따른 화자의 발화 전략과 관련된다.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자유 발화 억양구 경계 실현에서 두드러지는 몇 가지 패턴들을 파악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발화 초의 정보 구조 경계, 그리고 발화 중간의 접속절 경계는 억양구 경계가 거의 필수적으로 실현되는 위치인데, 접속절이 다소 길어지는 경우는 절 경계로부터 앞쪽으로 9음절 및 3어절 내외의 억양구가 형성되고 그 앞쪽에 나머지 부분에 대한 억양구가 형성된다. 또한 접속절 경계가 발화 구조상 최상위 경계인 경우, 그 경계 억양구는 후행 휴지가 끝음절에 비해 2~3배 정도의 길이로 실현된다. 경계 성조와 관련하여서는, 전형적 억양구 중 배경 절 경계 억양구에서는 HL%, 나열 절 경계 억양구에서는 H%, 화제 경계 억양구에서는 L%가 주로 쓰이며, 비전형적 억양구에서는 L%가 자주 쓰이는 경향이 있다.
본 연구는 기존의 한국어 연구들과 달리 대규모 자유 발화 자료를 이용해 억양구 경계 실현과 통사·의미적 요인의 상관관계를 전반적으로 검토한 연구라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다. 또한 운율과 언어 처리 및 발화 산출 사이의 관련성 연구, 나아가 운율의 유형론 연구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