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한국시사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로서 활발한 시 창작과 시론 집필을 이어나간 김춘수와 이승훈은 공통적으로 시대에 대한 부정정신을 표방하고 있었으며, 작법이나 시적 태도 면에서 적지 않은 유사점을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김춘수와 이승훈의 전 시기 시론의 연속성과 분절점을 조망하는 한편, 시기별 시적 인식의 변모가 형식적 지향을 추동해나간 양상을 추적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두 시론가의 독자적인 시론이 어떠한 필연성 아래서 변화의 운동을 지속해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본고에서는 이들의 대표 시론이 보이는 반(反)-재현 지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재현 체제란 주제 및 장르의 표상 배치와 감성적 수용 형태 간 인과적·안정적으로 전제된 질서를 말한다. 이러한 모방 위계로부터 단절하고 인식의 새로운 상응 양태를 산출하기 위해 '불일치'의 실효성을 도입하는 것이 미적 체제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시기에 재현 체제의 미적 보수성을 문제시한 김춘수와 이승훈은 이를 탈피하기 위한 시도에서 무의미시론과 비대상시론을 전개해나갔으며, 이 과정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변증법이 시작(詩作)의 핵심 전략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자신의 시 의식을 해명하기 위해 시론을 성립하고 보완해 나갔으며 중기의 양상들을 창조적으로 통합하여 초기의 시적 지향으로 다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두 시론 모두 창작 주체의 실존 해방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정신분석에 천착하여 시적 동기의 무의식과 내적 필연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김춘수의 경우 전기에서부터 시적 태도를 두 유형으로 대별하고 고전주의적 태도에 입각하여 모범적인 시 형태를 정립해나간다. 이러한 시 의식의 기저에는 유한자의 한계 인식과 무한에의 추구라는 상이한 지향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는 각각에 해당하는 모순된 시 양식을 발달시키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초기에 논리적 형태시에 대한 지향이 두드러졌다면 중기 김춘수는 이전 시기에 규정한 모범적 시 양태의 일탈이자 '반동'으로서 무의미시론 실험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나 무의미시 창작은 실상 이중의 검열 작용을 요청하면서 오히려 주체의 주관을 강화하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그가 이상(李箱)의 한계로 지적했던 '방심상태'에 그 또한 도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고전주의적 태도의 당위성을 여전히 확보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다. 예수와 유다로 양극화된 의식의 지속적인 변증법적 지양을 거친 뒤 후기에 김춘수는 대심문관이라는 이상적인 시인으로서의 주체 정립에 이르는 한편, 주객 분리와 창작 주체의 위상을 다시금 강조한다. 지적 가공 추구와 직서적 진술의 거부는 김춘수 시론의 연속성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이승훈은 자아 인식과 언어관의 변모에 따라 시기별 시적 지향의 급진적인 전향을 보여준다. 이승훈은 난해시 논쟁의 연장선에서 현대시 동인의 시적 경향을 변호하고 시대적 의의를 해명하고자 독자적인 시론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기에 그의 시론은 자동기술의 극한을 추구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작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만을 매 시기 변경해 나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적 관행 비판으로서 시도된 중기의 다양한 형식 실험 또한 언어의 내적 논리 조직과 무관한 것이었으며, 본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재현 체제의 강화에 일조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초기 시론의 핵심 개념이었던 '비대상'이 완결되지 않고 수시로 재정립되는 모습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데, 이를 통해 그의 전 시기 시론이 단일한 기획의 연장으로서 추동되어간 것임을 알 수 있다. 전 시기에 걸쳐 이어진 '비대상'의 사후 구성 작업은 후기에 실재론적 언어관으로 회귀한 이후에도 이어지는데, 궁극적으로 '비대상'은 선(禪)의 개념으로까지 확장되며 선시 창작의 동기를 사후적으로 확증한다.
또한 김춘수와 이승훈에게 시론 집필과 더불어 모더니즘 시사의 계보를 추적하고 적절한 위상을 부여하는 작업이 강조되었음은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이들이 표방한 계보적 원류가 전 시기에 걸쳐 어떻게 재맥락화되는지를 살피는 일은 각 시론의 궁극적 지향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바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이상(李箱)을 계보의 필두에 두고서 자신의 시론을 해방 이후 시사의 전위적 위치에 자리매김하고자 한 근원에는 현대성 선취에 대한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는 또한 급진적 형식 실험 및 전향 양상에 대한 당위의 마련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