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세기 한국·중국·일본의 대표적 여성문인 김금원(金錦園, 1817~?), 오조(吳藻, 1799~1862), 하라 사이힌(原采蘋, 1798~1859)의 자아실현 욕망과 여성상 비교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9세기에 이르러 세 나라의 여성문인은 한시문을 써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아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작가가 살았던 사회와 개인적 성향으로 인해 이들은 서로 다른 여성상을 보이게 된다. 이를 고찰하기 위하여 본고에서는 19세기 한국·중국·일본 동아시아 삼국의 여성 한문 리터러시 성장 현상이라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여성한시문에 주목하여, 각국 여성한문학의 일면을 파악하고자 했다.
먼저 II장에서는 19세기 한국·중국·일본 여성문인이 대거 등장하게 된 사회적 배경과 특징을 살폈다. 19세기에 들어서면 세 나라에서는 공통적으로 전시대보다 여성한시문을 보존하고 간행하려는 경향이 돋보인다. 한국은 경화세족을 중심으로 여성문인이 배출되었는데, 여성의 신분에 따라 그 양상은 다르게 나타났다. 사대부 여성은 사후에 집안의 남성에 의해 가문의 영예를 드높이기 위한 도덕적인 모범으로 재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김금원을 비롯한 기녀와 서녀 출신의 하층여성은 오히려 문인으로서의 시재(詩才) 그 자체를 인정받는 경향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여성의 시문을 청물(淸物)로 드높여 남성의 부족함을 보완해준다는 기치 아래 여성시문창작을 합리화시키는 데 주력해왔다. 19세기 중국에서는 남성을 스승으로 모시는 여제자그룹이 존재했는데, 스승과 제자 관계보다는 여성문인 상호간의 동질감이 더욱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은 뒤늦게 한문학이 보편화되어서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라 사이힌과 같이 한시문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여성이 등장했다. 또한 여성문인그룹이 존재했던 한국, 중국과는 다르게 일본에서는 남녀 간의 문학적 교류가 빈번했던 것이 특징이다.
다음으로 III장에서는 19세기 한·중·일 여성문인의 자아실현 욕망을 살펴봤다. 세 여성문인의 시문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자아실현 욕망은 표면적으로는 모두 남성과의 대결의식으로 표출되지만, 그 이면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김금원은 작품에서 남성 사대부의 군자의식과 정치적 의식에 대응되는 사상을 드러냄으로써 인정받고자 했다. 오조는 시재(詩才)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여성으로, 풍류재자의 모습을 동경하면서도 매우 강렬한 불우의식을 표출하는 작품을 창작했다. 하라 사이힌은 아버지의 유명(遺命)과 본인의 의지에 따라 유학자의 신분으로 입신하여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부여되지 않았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자아를 실현해내고자 했다.
IV장에서는 19세기 한·중·일 여성문인의 다양한 여성상을 분석했다. 남성에 못지않은 행동과 의식세계를 추구했던 김금원은 자신의 묘소함을 깨닫게 된 이후 인생무상의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결국 그는 과거의 뜻을 체념했다. 오조의 불우의식은 여타 재녀와의 교류를 통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시문에 대한 애호와 공통된 종교적 성향으로 맺어진 재녀들을 통해 당대 여성 사이에 존재했던 연대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하라 사이힌에게 상리(常理)에 맞지 않는 신분은 전통적 여성상과 겸전할 수 있다. 그는 효도를 비롯한 여성적 규범을 내면화하여 여유(女儒)란 사회적 역할을 실천할 수 있었다. 이러므로 하라 사이힌이 여성적 정체성을 다짐하면서 더 많은 가능성을 탐색했으니 전근대시기에 있어 색다른 여성상을 보여준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같은 시기에 한문학에 전념한 동아시아 여성문인들의 능동적인 모습과 다양한 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세 여성문인은 폐쇄된 공간에서 구속되지 않고 외부세계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고자 하는 소수자였다. 그러나 각각 다른 인생 경험을 한 세 여성문인은 국경을 넘어 여성이란 신분에서 비롯된 의식세계를 공유하고 있었다. 요컨대 세 사람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각자 하늘 한 쪽에서 서로를 호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