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한반도 남부지역 철기문화 도입과 정착과정을 내재적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함에 있다.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철기문화의 형성은 전통적으로 위만조선의 성립 후 준왕(準王)의 남천(南遷)과 연결시키거나, 최근 들어서는 연나라 장수(將帥) 진개의 동진(東進)에 의한 연문화(燕文化)의 확산과 더불어 해석되고 있다. 또한 철기문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상이나 혁신 또한 낙랑군에 의한 철기문화의 2차 파급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즉 철기문화는 정치·역사적 사건에 의해 선진지로 부터 일거(一擧)에 이식된 것으로 판단하면서, 선진지에서 후진지로 일방적인 문화전파 또는 정치적 역학 관계에 의한 문화이식(移植)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이입된 철기는 지역사회 내에서 이입-정착-확대라고 하는 일률적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종래에 고대국가로 진입하는 원동력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함에 따라 철(철기)을 생산하지 않거나 철기의 수량이 희소한 지역은 마치 사회발전도가 낮은 사회인 것처럼 오인(誤認)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그동안 철기문화를 바라보는 어느 정도 도식화된 틀이며, 여기에는 철에 관한 일반론이 강하게 잠재되어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철의 일반론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철은 인류사회의 복합성에 진전을 가져왔으며, 철을 통해 민족 혹은 국가가 흥망을 거듭한다. 두 번째, 철(철기) 생산은 높은 기술과 복합성을 요하기 때문에 전문공인이 존재하며, 이 전문공인을 통제·독점하는 사회조직(국가)이 결성된다. 물론 일견 타당한 부분이 있지만, 이러한 관점에 경도되어 철기문화의 도입과 정착과정에서 철기문화를 수용하는 지역 또는 집단이 이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간과된 경향이었다. 또한 지역에 따라서는 철기문화에 대한 도식화된 틀이나 철의 일반론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들도 확인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한반도 남부지역 철기문화의 도입과 정착과정에 대해 내재적 관점(內在的 觀點)에 의거하여 논의하였다.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철기사용 개시기(開始期)부터 고대국가 성립이전 단계까지의 철기문화는 크게 4단계에 걸쳐 변화한다. 철기문화 I단계인 한반도 남부지역 최초의 철기문화는 금강·만경강유역권이 중심이었으며, 장방형 주조철부 등의 주조제 농공규류와 소형의 단조제 공구류가 주류였다. 이러한 철기문화는 고조선(古朝鮮)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복합적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다만 고조선의 철기문화가 완전하게 이식된 결과가 아닌, 지역사회 내에서 필요한 철기를 선택적(選擇的)으로 수용한 결과로 이해된다. 그러나 약 100여년 이상 융성하던 금강·만경강유역권의 초기철기문화(初期鐵器文化)는 침체기에 접어들고, B.C. 2세기 중·후반경을 기점으로 새로운 유형의 철기문화 II단계로 진입한다. 이는 장방형 주조철부 및 주조철서 등의 기존의 고조선계(전국계) 철기문화와 함께, '무기류'를 주류로 한 새로운 유형의 단조철기(鍛造鐵器)가 결합된 양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철기문화는 위만조선(衛滿朝鮮)에 의해 구성된 것이었다. 이처럼 금강·만경강유역권과 북한강유역권에 각기 도입된 2가지 흐름의 철기문화는 재차 낙동강·금호강유역권으로 이입되면서, 도입기(導入期) 철기를 구성한다.
상기의 과정을 통해 한반도 남부지역에 철기문화가 도입된 이후, 각각의 지역사회는 그들이 처한 여건과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철기문화에 대응하면서, 철기문화 III단계로 이행된다. 그 대응방식은 크게 2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먼저 철기문화가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누 세대를 거쳐 계승됨으로써 지역사회 내에서 철(철기)의 생산·유통시스템이 구축되고 이를 통해 철기를 획득하는 방식이다. 이는 낙동강·금호강유역권을 중심으로 나타나며, 이 지역은 곧 철(철기) 대량생산체제로 접어든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철기문화의 등장과 위축이 반복되는 지역으로써 다양한 채널을 통해 외부세계에서 철기를 획득하여 사용하는 방식이다. 낙동강·금호강유역권을 제외한 여타지역에서 확인되는 대응방식이며, 철기 희소기(稀少期)에 진입한 지역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철기 획득 방식은 낙랑군 본위의 경제질서 바깥에서 이루어진 '독립적 경제활동'으로 판단된다.
2세기 중·후반경을 기점으로 철기문화는 또 한 차례의 큰 변화상이 나타나면서, 철기문화 IV단계로 이행된다. 이는 특히 서해안 및 호서내륙권과 영남 동남해안권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획기는 이전단계에서 구축된 철(철기) 대량생산체제의 역량과 낙랑군 본위의 경제질서 바깥에서 이루어진 독립적 경제활동의 역량이 점차 강화되고, 또한 이 시기를 즈음하여 낙랑군의 한반도 남부지역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에 기인한다. 이는 결국 한반도 남부지역의 제 집단, 특히 서해안 및 호서내륙권의 주구토광묘 축조집단과 영남 동남해안권의 대형목곽묘 축조집단이 주도하는 철기 교류·교역망의 확대로 이어지게 된다.
이상에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철기문화의 도입과 정착과정을 통시적으로 살펴본 결과, 한반도 남부지역에서는 시기를 달리하여 다양한 계통의 철기문화가 도입되었으며, 이는 선진지의 의도나 이해관계에 의해서가 아닌 지역사회 내에서의 선호도와 필요성에 의해 선택적으로 수용되었다. 이렇게 수용된 철기는 지역에 따라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누 세대를 거쳐 계승됨으로써 지역사회 내에서 철(기)의 생산·유통시스템이 구축되기도 하며, 새로운 철기문화의 등장과 위축을 반복하면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외부세계에서 다양한 기종의 철기를 획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지역사회 내에서의 필요성과 여건, 그리고 대내외적인 이해관계 등에 의한 복합적인 상황들에 의해 나타난 지역성(地域性)이었으며, 이는 철기문화가 단순히 그 사회의 발전도를 판가름하는 고고학적 지표로만 이해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