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는 동북아시아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이며 조선후기 민화에서도 다양한 표현으로 나타난다. 복숭아는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풍요'와 '장수(長壽)', '길상(吉祥)'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났다. 복숭아나무는 악귀를 물리치고, 그 열매는 신선이 먹는 선과(仙果)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관념은 고대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에서 복숭아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B.C. 4세기경으로 『산해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복숭아는 '나쁜 기운이 든 악귀를 처벌하는 신성한 존재였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꾸준히 출토되고 있는 복숭아씨를 통해 복숭아가 제사와 관련된 제의(祭義)에 신성한 존재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며 다양한 고사에서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서왕모의 반도(蟠桃) 고사, 신라 박혁거세의 건국신화, 가야 허황옥의 결혼이야기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전기까지만 하여도 복숭아는 대부분 공예에서 나타나고 회화에서 복숭아를 그린 그림은 볼 수 없었으나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영역을 확장하여 비단 공예뿐 아니라, 회화에서 복숭아의 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여러 번의 전란을 겪은 후 피폐해진 민심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기복신앙에 의한 것과 동시에 조선후기 상업의 발달로 부유한 중인층이 늘어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복숭아는 일종의 기호로서 '벽사', '수복(壽福)', '길상(吉祥)'의 의미까지 더해져 복숭아 하나로 다양한 염원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복숭아는 조선후기 문화계의 새로운 유행을 일으키며 민화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제재가 된다.
본 연구는 〈요지연도〉, 〈십장생도〉, 〈책거리〉, 〈문자도〉라는 네 가지 화목을 중심으로 복숭아 도상의 표현기법과 변화양상을 추적했다. 시간의 흐름별로 변화양상을 파악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요지연도〉와 〈십장생도〉를 유형별로 분류했다. 〈책거리〉와 〈문자도〉는 추상적이거나 디자인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는 관계로 각기 기물로서 변형된 복숭아 도상의 형태와 시대순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복숭아 도상의 각 요소의 형태 변화 및 기법의 변화, 화점문과 태점을 중심으로 변화양상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궁중 화풍의 작품도 포함하여 '궁중회화'와 '민화'의 그림을 모두 분석대상으로 삼아 작품의 편년을 추측하였다. 그 결과, 복숭아 도상이 조선 말기로 갈수록 형태와 기법 면에서 '도식화 전- 도식화- 해체'의 과정을 보임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I 장에서는 연구의 의의와 목적에 대해 언급하고 선행연구를 통해 문제의식을 더욱 명확히 하였다. 이를 토대로 연구 방법과 연구 대상을 소개하였다. 본격적인 분석을 전개하기에 앞서 II장에서 조선후기 복숭아 도상이 성립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고대 중국에서 한반도로 복숭아의 유래 및 전개 과정을 살핀다. 더불어 도교사상의 전파와 유행과 함께 복숭아가 '불사약'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고찰하고 조선후기 민화의 성행을 살펴보았다.
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된 후 III장에서 구체적인 작품 분석에 초점을 두었다. 조선후기 민화에서 복숭아 도상이 많이 표현된 〈요지연도〉, 〈십장생도〉와 〈책거리〉, 〈문자도〉를 순서대로 사회문화적·경제적 의미를 분석하고, 화목에 따른 복숭아 도상의 위치와 도상에 표현된 미술적 양식의 변화와 채색 방법, 기법을 분석하여 연구하였다.
〈요지연도〉에서 복숭아 도상은 연회에 참석하는 군선을 맞이하는 누대 입구와 육지 전반에 상징적 배경으로 그려졌고, 주목왕에게 바치는 서왕모의 '불사약'을 의미하며 전란으로 인해 한 치 앞조차 알 수 없었던 시대 상황에서 무탈하게 '장수'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상징적 표현임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으며, 표현기법 측면에서는 수묵화에서 채색화로 가는 과도기적 양상과 화점문과 태점을 통해 장식화로서의 변모를 알 수 있었다.
〈십장생도〉는 요지연과 마찬가지로 '장수'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그려진 화목으로 복숭아 도상의 변화양상이 비교적 잘 나타나 있었다. 편년이 기술되어 있는 자료의 형식 분류와 표현방법의 변화양상을 통해 편년을 알 수 없는 작품의 편년을 추정할 수 있었다. 또한 〈십장생도〉의 제재 중 하나로 작은 부분이 배치되었던 복숭아가 점점 〈십장생도〉의 중심 도상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책거리〉에서 복숭아 도상은 '불로장생'을 상징할 뿐 아니라 소과의 형태로 '삼다(三多)'를 의미하였고, 복숭아형 연적에서는 '길상'과 '여성성'의 의미를 담으며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선비의 서재에 해학적인 우리 조상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복숭아형 표주박에서 복숭아는 '선비의 청렴함'을 효과적으로 상징하였다. 특히 〈책거리〉에서의 복숭아 도상은 궁중회화와 민화의 뚜렷한 구별이 가능하였다. 궁중회화에서는 복숭아를 담은 기물, 연적, 표주박 등이 궁중에서 사용되는 진기한 기물이었다면, 민간에서는 조악하지만, 복숭아 도상에 대한 자유로운 표현이 돋보였다.
〈문자도〉에서는 유교의 덕목인 '의(義)'를 상징할 때 복숭아가 빈번히 등장한다. 문자의 상반부에 복숭아가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도원결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후기로 가면서 과도기적 단계를 넘어 정형화된 형식이 파괴되고 도식화가 심해졌고 대량 수요에 대한 공급을 위해 그림이 단순화되고 채색이나 구성면에서 이전의 〈문자도〉에 비해 완성도나 화격면에서 저하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화로서는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작품이 상당수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IV장에서는 앞에서 화목별로 분석한 복숭아 도상을 바탕으로 유형별 복숭아 도상의 변화양상을 분석하였다. 태점, 화점문, 복숭아의 화면상 위치, 꽃의 표현 등 변화양상을 각각의 작품별로 유형별로 수치화하여 시대에 따른 복숭아 도상의 표현양상을 정리하였다. V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정리하고 조선후기 민화에 표현된 복숭아 도상 연구에 의한 상징과 의미, 그리고 회화사적으로 복숭아 도상 연구의 의의에 대해 결론짓는다.
복숭아는 우리 민족의 일상생활에서 늘 존재하면서 생활 깊숙이 침투해있었다. 민화는 특히 단순히 감상하는 회화에서 벗어나 우리 생활공간을 장식해주는 장식화의 기능도 크다. 그만큼 민화에 복숭아를 많이 그렸다는 것은 생활과 밀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의 전란으로 인한 혼란한 사회 분위기는 민중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으나 '재생'의 여지도 남겨두었다. 민화를 통해 조선후기 새로운 계층으로 부상한 중인들과 민간 계층의 의식을 엿볼 수 있었으며 생활의 힘겨움에도 불구하고 그 고난을 받아들이며 극복하려는 낙천적 미의식이 복숭아에 집약되어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