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발견이 계속됨에 따라, 이에 맞추어 사유도 계속하여 재구성되어야 한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과학적 발견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다양한 파급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필자가 보기에 큰 파급을 받는 것 중 하나가 신학이다.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 하셨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적 발견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닌, 우주 내 우연적 과정임을 주장한다. 이에 과학과 신학이 충돌하고, 오늘날 다양한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은, 과학적 발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견지할 수 있는 이해를 지니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필자는 이러한 이해를 지니기 위해 '창조'에 관한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고자 했다. 왜냐하면, 창조란 단순히 무엇인가가 생긴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기원이며 동시에 존재를 존재답게 만드는 구성적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 필자는 기독교의 대표 격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적 창조 이해를 중심으로, 오늘날 과학적 발전을 거스르지 않는 기독교의 창조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가 단순히 유일회적으로 끝난 것이 아닌, 여전히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과정' 가운데에 있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 창조론을 오늘날에도 납득 가능하도록 뒷받침하기 위해, 필자는 알리스터 맥그라스와 존 호트의 견해를 중심으로 논지를 펼쳤다. 여기서 핵심은, 오늘날의 우주 역시도 계속해서 과정적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고 있음을 또한, 그러한 과정적 이해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와 충돌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오히려 풍성하게 하는 원리로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진화를 과정적 이해 가운데 하나님의 '계속적 창조'로서 이해한다면, 진화는 하나님의 창조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를 더욱 세밀하게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와 같은 모색을 중심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창조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떠한 현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또한, 현대에서 제기되는 오해를 해소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창조론에 담긴 본 의도를 살피며 어떠한 인간상을 추구하는 것이 오늘날 건강한 이해가 될 수 있는지를 논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세계는 과정 가운데 있음을 또한, 우리 존재가 어떠한 존재이며,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인간은 본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가운데 다스리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다스리는 역할 보다, 정복하고 파괴하는 일을 일삼았다. 이는 종국에 도래할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완성의 때를 역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금 인간이란 무엇인지, 어떠한 인간상이 바람직한 인간상인지를 논할 필요가 있었다. 필자는 이를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과정적 창조 가운데 올바르게 자기반성을 반복하는 인간존재, 그리하여, 설득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요청에 응답하며,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는 능동적인 인간 주체를 논함으로 본 글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