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주희의 독서법을 고찰함으로써 독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 주희는 동아시아의 학문 체계에서 최초로 독서법을 체계화한 인물로서 그의 독서법은 '활자 매체인 책을 읽는 행위'인 독서의 가장 원형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오늘날의 독서, 즉 읽기가 많은 부분에서 문장론에서 생산된 쓰기 방식을 가지고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점에서 주희의 독서법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독서 행태에 대해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주희는 독서의 본질을 '텍스트에 대한 정밀한 의미 파악'으로 인식하였다. 이는 그가 처하였던 남송의 위기 상황과 관련있는데, 주희는 당시 혼란의 극복 방안을 혼잡스러운 학문 체계를 재정립하는 것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주희는 성현들이 남긴 經書에 깃든 은밀한 뜻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 독서의 목표라고 본 것이다. 그러한 주희의 독서관은 그의 문도들과의 대화를 통해 독서에 관해 정리된 『朱子語類』 「讀書法」에 잘 나타나 있다.
본고는 주희가 남긴 여러 독서 개념 가운데 독서를 시종일관 '텍스트의 정밀한 의미 파악'이라고 견지한 주희의 독서관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파악한 '질문', '단락', '암송' 그리고 독해 방식으로서의 '봉하(縫罅)'라는 4가지 개념을 살펴보았다.
주희는 독서는 텍스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주희에게 있어 질문이 없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었으며, 또한 질문에는 끝이 없다고 보았다. 나아가 질문은 독서가의 독서 수준을 보여주는 도구이기도 하였다. 본고에서는 그가 남긴 「讀書法」의 조목들을 가지고 독서를 질문으로 인식한 주희의 독서관의 특성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단락'은 본래 서구 문장론에서 철저하게 효율적인 쓰기 방식으로 개발되었던 개념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늘날에는 텍스트를 읽기 위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장론에서는 글쓴이로 하여금 글을 중심 문장과 뒷받침 문장으로 구성하여 서술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텍스트를 읽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쓰기 방식을 독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희는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글자 하나, 구 하나에도 집중하는'주석적 독서'를 강조하면서 아를 위해 텍스트를 단락 단위로 읽어나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주희의 단락 구조에 대한 인식과 함께 단락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했던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은 단락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주희에 의하면 본래'암송'은 텍스트의 의미를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한 독서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암송은 독서법이라기 보다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작문법으로써 권유되고 있다. 물론 암송을 통해 글쓰기 실력이 나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희에게 있어 암송은 철저하게 텍스트의 의미 파악을 위한 독서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 암송이 문인 관료 선출을 위한 과거제를 거치게 되면서 작문법을 위한 수단으로 성격이 변하게 된 것이다. 즉,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하고자 하는 학인들은 과거에 나올만한 글들 위주로 그것들을 초집하고 외우게 됨으로써 차츰 암송은 독서법이 아닌 글을 쓰기 위한 방식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봉하'는 텍스트의 틈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희가 텍스트의 핵심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뚫고 들어가 활짝 열어 젖혀야만 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비록 「讀書法」에서는 등장 빈도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주희의 많은 독서 개념을 수렴하는 용어이다. 봉하는 텍스트의 핵심 의미가 놓여있는 곳으로서 핵심어와 같이 텍스트의 표층에서 바로 찾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행간이나 통사 구조, 혹은 문맥이나 어세 속에 놓여있기도 하다. 따라서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은 이 봉하를 찾아 잘 파고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대는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고 읽은 매체가 다변화되면서 읽는다는 개념 역시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그리고 독서 인구는 나날이 줄어드는 반면 문해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주희 독서법은 이러한 독서를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방식이다. 물론 주희 독서법을 오늘날에 활용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와 함께 주희 독서법의 적용 방식에 대한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