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현재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삶의 방향에 대하여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되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는 아직 초기인 만큼 관련 분야의 종사자들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체감하는 정도는 미약하다. 이에 본 연구는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에 관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인공지능 혹은 이를 통한 가까운 미래사회에 대하여 어떠한 인식을 뒀는지 살피고자 한다. 나아가 미래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파악하고, 그 방향성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 긍정적인 측면으로 발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SF 영화 속 소재로 차용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의 본질은 첨단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변화 속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이 과연 공존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인공지능에 관한 다각도의 연구를 통해 우리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대다수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들에서 이들 존재는 보편적으로 기술적 타자로 여겨져 왔다. 이에 영화 속 인공지능의 정체성은 외형적으로는 인간과 닮은 형상을 취하지만 기계이며, 그렇다고 해서 기계로 인식하기에는 인간보다도 더욱더 인간적인 모습을 취한다. 또한, 기계이면서도 그들의 행위는 인간의 삶을 너무나 동경하는 모습으로 재현된다.
본 연구에서 연구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 개념에 따르면 주체가 불완전한 존재에게 느끼는 혐오감, 불결함, 공포감, 두려움 등과 같은 철학적 관념은 많은 공포영화나 SF 영화, 특히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영화들에서 보이는 감정들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드러낸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SF 영화를 살펴보면 이 같은 혐오감과 불결함과 같은 감정을 일으켜 관객에게 불안한 심리를 갖도록 만드는 타자화된 존재는 숭고와 혐오(공포)의 이중적 감정을 재현함과 동시에 타자화된 인간의 억압된 무의식을 형상화한다. 이에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서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적 의미에서 타자화된 존재는 바로 주체할 수 없는, 저지할 수 없는 욕망의 환유적 움직임의 산물이 된다. 이에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영화의 보편적인 서사는 인간과 대결 구도를 펼치는 진행 방식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는 초반에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보이지만, 인공지능 존재가 점차 진화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과 나아가 인간의 존재까지도 위협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이 같은 감정은 마치 공포영화 속 괴물에 의해 언젠가 나 역시도 희생자가 될 것이란 생각에 괴물을 두려운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SF 영화 속에서 인공지능 존재를 재현하는 방식에서도 영화는 처음에는 이들 존재를 인간과 매우 유사한 이미지로 재현하여 우리에게 친근함을 제시하지만, 이내 불안한 감정이 시작되는 지점부터는 인간과 확연히 구분되는 기계적 이미지를 제공하여 이들 존재를 이질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이를테면 공포영화 속 괴물처럼 더럽고, 흉측하며, 기괴한 형상의 기계적 이미지를 그대로 노출하는 방식을 통해 그동안 친숙했던 존재를 일순간 낯설게 만들어 이들이 타자화된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낯선 존재이기는 하지만, 결국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들이 개인 주체의 심리적 현실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에 속한 집단의 성립과 안정적 유지를 위해 이질적 타자성을 지닌 개인이 아브젝트화되는, 이른바 '사회적 아브젝시옹'의 의미가 담겨있음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주어진 타자성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는 곧 우리 사회를 탐구하는 과정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에서 알 수 있듯이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타자화된 존재와 주체와의 비교를 통해 철저히 계급화된 모순된 현실사회를 비판하고 있으며,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면을 은유적 표현으로 공개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대적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다수 영화는 암울하고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여 우리 인류가 경험하게 될 미래가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로 재현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SF 영화의 타자성에 대한 핵심은 주체가 되는 인간은 자신이 전지전능한 창조자라는 과대망상증에 걸린 인물로서 그려짐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AI를 동경하는 인물이 되어 영화에서는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욕망을 재현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인간의 AI 제조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 AI가 인간과 가까워진다면 어느 수준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경고를 동시에 던진다. 더불어 인간이 가진 기억과 인간이 산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진실인지에 대한 질문도 한다. 생명의 창조자가 되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은 자유의 의지를 보이는 인공지능을 폭력에 의한 평생 억압이란 테두리에 가둬 놓는다. 이는 인공지능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보이는 공통된 재현방식이 된다.
그러나 대다수 영화가 유사한 재현방식을 가진다고 해서 결말마저 같은 유형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영화가 끝까지 살아남는 존재로 인류를 선택하고 있지만, 몇몇 영화에서는 끝까지 살아남는 존재로 인공지능 존재를 선택하는 예도 존재한다. 이는 과학기술, 특히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점차 변화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발전에 따라 이 같은 재현의 변화를 보이는 것은 인간과 인공지능과의 관계성을 입증하려는 시도로 인공지능 기술이 현실화하는 시점에서 과연 이들이 서로 공존 가능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며, 더는 인공지능을 타자화된 대상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