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사회과학 관점에서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중심으로 예술의 생산, 유통 과정과 예술 활동을 다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특성을 이해하고,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국내 예술 활동에 끼친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 연구의 주요한 목적이다.
한국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서구의 운영 방식을 차용하여, 1990년대 중반 등장하였다. 레지던시 운영 초기에는 주로 시각예술 장르의 예술창작공간 제공 역할에 머물렀으나, 이후 약 20년 가까운 시간이 경과하며 점차 다양한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국내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전국 광역시도 대부분에 설립되었을 정도로 양적 증가했으며, 이 중 상당수가 개인 창작공간 제공뿐 아니라 입주자 대상의 전시개최, 홍보지원, 평론지원, 교류기능 등을 갖추고 운영하고 있어 예술가들의 선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예술가들은 수도권에 위치하며 예술계 안팎에서 공신력이 높은 미술관이 운영하는 곳, 혹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용이한 레지던시를 선호하며 이러한 경우 입주 경쟁도 상당히 치열하다.
국내 활동 예술가 중 다수에게서 아티스트 레지던시 입주를 통해 스튜디오 공간과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전시, 아트마켓 등의 행사에 참여해 입주기간 동안 자신을 프로모션 해나가며, 이와 동시에 다른 외부기금을 지원받아 소규모 공간에서 꾸준히 전시를 여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복합적 특성을 갖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그에 연결되어 나타나는 예술 활동의 다양한 층위를 살펴봄으로써, 예술의 생산과 유통 과정, 국내 예술 활동을 심층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 연구는 크게 세 부분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다루었다. 첫 번째, 국내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전국 광역시도와의 연계 흐름에서 지속 증가해 온 경향을 보인다. 연구의 제3장에서는 이를 실증하고자, 전국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사례 수집과 코딩을 통해 1차 데이터를 구축한 후 통계분석을 진행하였으며, 이를 통해 한국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나타나는 전반의 경향성을 짚어보고자 했다.
분석 결과,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공간특성, 운영특성, 프로그램특성별 상이한 차이가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사회교류 기능에 중점을 둔 아티스트 레지던시도 등장한 상황으로, 아티스트 레지던시 개념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따라 상이한 특성에서 운영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이와 같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이미 전국적인 양적 증가를 이룬 상황에서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요구되는 부분으로 명확한 레지던시 개념 설정을 바탕으로 한 예술가 성장지원과 지역사회와의 유연한 연결을 제시하였으며, 예술가 자율성을 고려하되 현실적 성장을 지원하는 질적 제고를 위한 아티스트 레지던시 전반의 개선과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두 번째, 연구의 제4장에서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상업시장간 연결에 주목하여, 실험적 성격을 갖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상설 아트마켓 운영 사례를 Bourdieu의 예술생산 장 이론(field theory)에 근거하여 분석하는 경험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연구에서 주목한 신당창작 아케이드의 에스스토어(S-store)는 주로 순수예술 장을 지원하는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전·현직 입주예술가들에게 상업시장 작품 판매를 지원하여 예술가의 경제적 안정을 돕고, 창작활동의 지속을 도모하는 방편에서 마련된 것으로, 순수예술 장에 바탕을 둔 복합적 성격의 상업예술 장에서 나타나는 특이점과 참여예술가들이 겪는 인식 변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창성과 희소성을 갖는 중요 사례로 볼 수 있다.
연구 결과, 에스스토어 사례는 일반적인 대중 유통 시장과 달리, 생산과 유통, 판매, 운영 전반에서 예술가와 예술 창작물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어 특이점을 보였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게 상업 유통 시장 진출은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고 작품 활동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물리적·시간적 여건이 가능할 때에만 고려되는 부분으로 주요 활동 이외의 부수적 요소로 인식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같은 결과는 에스스토어 사례 자체가 갖는 실험적 성격과 이원화된 예술 장의 논리가 결합되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Bourdieu가 제시한 제한된 생산 장과 대규모 생산 장의 논리가 예술가 인식 내에서 여전히 공고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또한 이 연구를 통해 장 내 행위자 역할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장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Bourdieu 이론에 근거한 다른 연구들과의 차별점이 도출되었다. 이와 함께 연구에서는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매개로 입주예술가들을 고려한 더욱 다양한 시도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한편, 순수예술 장과 상업시장 간 연결에 있어 예술계와 예술생산, 예술가 스스로 생각하는 예술가로서의 지위, 자격에 대한 심층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제시하였다.
세 번째, 연구의 제5장에서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기금 제도 등을 적극 활용하여 예술작업을 지속하는 예술가들에 주목하였다. 연구는 Foucault 관점의 신자유주의 통치 경쟁 역학이 예술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으며, 이러한 시각에서 Foucault가 제시한 통치성, 자기 배려 개념에 근거하여 예술 활동에 내재된 신자유주의 통치성과 예술가 개인의 자기 배려를 해석하였다. 이 같은 해석을 통해 연구에서는 예술 활동에서 예술지원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예술지원에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이 발견되지만, 상호책임과 신뢰, 배려에 기반하는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예술가들이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제시하는 여러 활동에 참여하며, 예술계 외부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자기의 기술을 구사하는 상황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Foucault가 개별적으로 제시한 통치성과 자기 배려 개념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통치성 개념에 한정하거나 자기 배려 개념에만 근거한 선행연구들과 차별화된 연구의 독자성과 의의를 제시하였다.
한편, 예술지원제도를 많이 경험한 예술가일수록 영구적으로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경우가 많으며, 지원제도 활용 없이도 활동 가능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신자유주의 통치 경쟁에서 승리한 뒤에야 그러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가들의 역설적 현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예술가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은 예술지원에서 우선되어야 할 부분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예술가 개인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현실적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연구는 제기하였다.
그 동안 국내 아티스트 레지던시 관련 연구는 주로 수도권에 위치한 인기 레지던시에 한정하여 진행되거나, 비수도권 지역의 특정 사례에 집중하는 형태로 대부분 단편적으로 수행되어왔다. 이 연구는 전국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특성을 살펴보고, 그에 긴밀하게 연결된 한국의 예술 활동을 Bourdieu와 Foucault의 이론에 근거하여 다층위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독자성과 의의를 가지며,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넘어 향후 예술지원제도를 개선하고, 예술가지원을 고려함에 있어서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