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은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써 의과대학 졸업예정자에게 요구되는 핵심역량인 진료역량을 가르치고 평가해야하는 책무가 있다. 진료 역량은 의학지식에 대한 이해, 임상추론능력과 술기능력, 환자·보호자와의 원활한 소통, 환자를 존중하는 태도 등이 종합된 역량이다. 많은 의과대학들이 학생들의 진료역량을 갖추었는지 평가하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의학지식은 주로 지필시험으로, 술기능력과 환자-의사 상호작용은 실기시험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환자의 문제상황을 해결해가는 임상추론능력에 대한 평가는 별도의 도구 없이 임상실습 중 이루어지는 관찰 평가, 증례발표 및 보고서 등으로 평가하고 있다. 임상실습 중의 평가는 실제 환자진료 상황에서 학생이 어떻게 임상추론을 하는지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특정 임상과와 특정 증례에 국한되어 그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학생이 다양한 임상 상황에서 임상추론을 할 수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양한 임상 맥락의 조합이 필요하다. 다양한 임상 맥락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검사로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산하 의학교육평가사업단이 주관하는 임상의학종합평가가 있다. 임상의학종합평가는 진료 현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거나, 초기 진료 단계에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위중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임상표현 101개의 증례로 문항을 출제하는 시험이다. 그러나 다양한 임상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증례형으로 출제되는 문항의 특성과는 달리 평가 결과는 과목별 취득 점수와 석차로 제시되고 있어 학생의 구체적인 임상추론능력은 추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임상의학종합평가의 다양한 증례문항을 통해 학생의 임상추론능력을 추정할 수 있다면, 학생이 환자진료에 요구되는 수준의 임상추론능력을 갖추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수·학습의 개선은 물론 교육과정 개선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임상의학종합평가라는 검사를 통해 임상추론능력을 추정하는 것은 최근 교육 및 심리 측정 분야에서는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인지진단모형(Cognitive Diagnostic Model)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인지진단모형은 검사의 총점으로 학생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문항을 푸는데 필요한 인지요소, 즉 세부적인 지식(knowledge), 기술(skills), 능력(abilities) 등의 인지적 능력의 숙달확률 또는 숙달여부를 추정하는 통계모형이다. 인지진단모형을 통해 추정한 학생의 인지요소 숙달확률과 숙달여부는 현재 인지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므로 이를 교수·학습의 개선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다양한 교과(수학, 국어-글쓰기/독해, 과학, 영어 등)에 인지진단모형을 적용하거나, 대규모 성취도 평가부터 교실 단위의 형성평가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탐색한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의과대학 학생들의 임상추론능력을 추정하기 위해 임상의학종합평가에 인지진단모형의 적용 가능성을 탐색하고, 의과대학 학생들의 임상추론 숙달 상태를 분석하여 의학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분석 자료는 2019년 2차 임상의학종합평가 360문항 중 내과 144문항에 대한 3학년 2,603명, 4학년 2,983명 총 5,586명의 응답자료이다.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문헌분석을 통해 임상추론능력 추정을 위한 인지요소 9개를 추출하였으며, 추출한 인지요소로 Q-행렬 초안을 개발하여 통계적 기법인 자카드 계수 산출과 다중회귀분석으로 예비 타당화를 실시하였다. 예비 타당화 결과에 대한 전문가 패널들의 검토를 통해 최종 인지요소를 7개로 수정하고, Q-행렬을 개발·타당화하였다. 의과대학 학생들의 임상추론능력 추정을 위해서는 간명한 모형으로 추정의 정확도가 높으며, 대단위 자료 분석에 널리 사용되는 DINA(Deterministic Input, Noisy "And" gate) 모형을 적용하였다. DINA 모형은 학생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인지요소를 갖추어야 정답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비보상모형인데, 이러한 가정은 필요한 임상추론 하위요소를 모두 갖추어야 정확한 추론이 가능하다는 전문가 패널의 의견과도 일치하였다. 이처럼 DINA 모형을 적용하여 의과대학 3,4학년 학생들의 임상추론 인지요소의 숙달 상태를 추정하고, 학년별, 성취수준별로 분석하였다. 또한 임상추론능력 추정 결과를 의학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하기 위하여, 의학교육 담당교수와 보직교수에게 온라인 설문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선행연구와 종합하여 활용방안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의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임상추론능력 추정을 위해 7개의 인지요소를 추출하였으며, 각 인지요소는 a1 유의미한 환자정보 구별, a2 검사결과 해석, a3 질환의 원인 분석, a4 추가검사 필요여부 평가, a5 진단추론, a6 중증도 평가, a7 처치 및 치료 의사결정이다. 7개의 인지요소로 2019년 2차 임상의학종합평가 내과 144문항에 대한 Q-행렬을 개발·타당화하여 제시하였다.
DINA 모형 적용하여 3,4학년 의과대학 학생들의 임상추론능력을 추정한 결과 7개 인지요소 숙달확률의 평균은 0.674∼0.770이었으며, a1과 a3 인지요소의 숙달확률이 가장 높았고, a4 인지요소의 숙달확률이 가장 낮았다. 학년별 임상추론 인지요소 숙달 특성을 분석한 결과, 학년 간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 4학년 학생의 인지요소 숙달확률의 평균은 0.826∼0.910이었으며, 3학년 학생의 인지요소 숙달확률은 0.504∼0.644이었다. 성취수준별 인지요소 숙달 특성을 분석하기 위하여 3모수 로지스틱 IRT(Item Response theory)를 적용하여 능력모수(Theta)를 추정하여 각 학년의 상위 27%와 하위 27%를 '상위'와 '하위'로 두고 그 사이를 '중위'로 성취수준을 구분하였다. 4학년은 상위와 중위집단 모두 인지요소 숙달확률이 높았으나 하위집단은 숙달확률이 낮았고 상위와 중위집단과도 다른 패턴을 보였다. 3학년에서는 상위집단이 모든 인지요소를 숙달하였으며, 중위와 하위 집단은 낮은 숙달확률,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의과대학 학생들의 임상추론능력 추정 결과를 의학교육 현장에서 활용하기 위해 선행연구와 설문결과를 종합하여 다음의 네 가지를 활용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1) 임상추론능력의 졸업성과 또는 시기성과 달성 확인에 인지요소 숙달 수 또는 필수 인지요소 숙달여부 등을 활용할 수 있다. 2) 임상추론능력의 향상을 확인하기 위하여 학년별, 회차별 누적 정보를 통해 임상추론능력의 숙달의 향상을 확인할 수 있다. 3) 숙달확률이 특히 낮은 인지요소나 학년 간 숙달확률의 차이가 큰 인지요소 등은 그 이유를 분석한다면 교육과정과 교수학습방법의 개선에 활용할 수 있다. 4) 인지요소의 숙달 정보는 졸업성과 또는 시기성과 달성에 대한 준거설정에 활용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의과대학 학생들의 임상추론능력을 추정하기 위하여 임상의학종합평가에 인지진단모형의 적용 가능성을 탐색하였으며, 실제 임상현장이 아닌 지필시험 맥락에서도 임상추론능력을 추정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출판된 의학교육 연구 중 인지진단모형을 적용한 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임상추론의 인지요소를 추출하여 제시한 점은 후속 연구들의 이론적 근거 마련이라는 의의가 있다. 다만 임상의학종합평가의 내과 문항만을 분석 대상으로 하였고, 시험 종료 후 Q-행렬을 개발하여 전문가의 판단이 반영되어 있으며, 인지요소 숙달 정보의 활용 방안 탐색 시 교육의 수혜자인 학생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였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숙달 정보를 졸업성과 및 시기성과 달성이라는 성취결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선행연구와 의학교육 담당교수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하여 의학교육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활용방안을 제안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