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한국 사회에 규정력으로 작용한 미국의 발전 담론의 역사성을 토대로 한국 농촌에 미친 영향력을 분석한다.
미국의 발전 담론은 뉴딜에 대한 대응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경험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발전 담론은 근대화의 모델로서 제3세계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이 담론이 발전을 위한 하나의 '모델'로서 형성되고 전파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특수한 맥락은 고려되지 않았다. 미국의 발전 모델은 제3세계로 전파될 때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처럼 여겨졌으나, 이는 오히려 지역적 맥락에서 실패와 반발을 일으키며 복합적인 결과를 생산했다.
공보정책은 미국의 발전 담론이 전파되던 대표적인 수단 중 하나였다. 공보정책은 냉전적 심리전의 맥락에서 미국의 발전 담론을 선전. 전파, 그리고 내면화하려는 목적을 가졌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다룬 『자유의 벗』은 심리전의 일환으로 미군의 직접적 개입에서 발행되었으나, 종합잡지의 성격을 띠며, 단순한 국제정치적 대립으로서의 냉전에서 좀 더 문화적이고 생산적인 층위의 냉전을 내면화하고자 했다. 반면, 『새힘』은 농촌이라는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발행되어 직접적이며 구체적으로 한국 농촌의 생활을 향상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두 잡지의 수용자들은 잡지에 나타난 미국적 근대화의 모델과 발전 담론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각자의 상황에 맞게 변주하고자 했다.
농사교도원과 4-H 클럽 회원들은 한국 농촌에서 미국의 발전 담론을 전파 및 수용하던 주체였다. 농사원의 성립과 농촌진흥청으로의 직제 개편의 과정은 뉴딜 관료제와 비슷한 목표와 조직으로 이루어졌다. 나아가 4-H 클럽은 조금 방향이 다른 미국적 근대화 모델의 직접적 이식이었다. 한국 농촌 근대화의 규정력으로 작동한 미국의 발전 담론과 한국의 수용자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이 존재했다. 미국의 발전 담론을 마주한 한국의 수용자들은 현상에 대해 의문을 가졌으며, 각자만의 목표나 이유, 이해관계에 따라 행위하는 주체로서의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