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근거이론방법을 사용하여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에 대한 경험에 관한 실질적 이론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는 가족, 연인, 혹은 친구 즉 주요 타자의 자살 생각, 자살 계획, 자살 시도를 경험한 성인 25명이 참여하였으며, 이들과의 개별 심층 면접을 통해 얻은 자료가 근거이론방법을 통해 분석되었다.
자살 사망자 주변의 '자살 사별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에 비해 자살로 사망하지는 않았으나 심각한 자살위기를 겪고 있는 경우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수행되었으며, 특히 돌봄 제공자 즉 케어기버(caregiver)라는 개념을 참고하여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에 대한 경험을 들여다보았다. 이를 위하여 첫째, 참여자들이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 앞에서 자신과 주요 타자 관련 요인 그리고 사회적 요인과 상호작용하며 구성해나가는 내적 반응 및 행동을 살펴보았다. 둘째,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에 대한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범주가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로 인한 두려움에 직면하여 나타나는 내적 반응과 행동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관계 변화'임을 발견하였다. 셋째,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로 인한 관계 변화 경험을 유형별로 기술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본 연구를 통해 발견된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에 대한 경험의 내용은 크게 7가지 범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 참여자들은 자살로 인해 주요 타자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이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은 적이 있는 참여자들의 경우 두려움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둘째, 주요 타자의 사라짐은 내적인 차원에서 참여자 자신의 사라짐이기도 했다. 주요 타자가 사라지게 되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는데, 특히 어린 시절 부모의 자살위기를 경험한 참여자들은 마치 자신의 세상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셋째, 두려움은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죄책감의 이유는 관계 유형이 따라 차이가 있었다. 친구 관계인 참여자의 경우에는 만약 실제 자살이 일어났을 때 자살을 막지 못한 스스로를 탓할 것 같다는 예기된 죄책감(expected guilt)를 보고하였는데 자신을 탓하는 대신 두려움을 마주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 가족인 참여자들은 자살위기로 인한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가족의 소중함을 실감했고 더 신경 써서 챙기고 사랑하지 못한 죄책감을 경험했다. 넷째, 참여자들이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에 대해 경험한 자기 초점 내적 반응은 책임감, 무기력함, 익숙해 짐 그리고 한계 인식이었다. 참여자들은 자살을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무기력해진다. 또한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가 반복되거나 지속되면서 점차 익숙해지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를 마주하였다. 다섯째, 참여자들이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에 대해 경험한 주요 타자에 대한 내적 반응은 미안함, 안타까움, 실망감, 화 그리고 답답함이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과 동시에 '실망감, 화, 답답함'도 함께 느낀 것을 통해 그들이 자살위기의 주요 타자들에게 갖는 양가적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여섯째, 내적 반응에 따른 행동 차원의 구성 요인으로는 경청하기, 회복 돕기, 눈치 보기, 그리고 거리 두기가 도출되었다. 참여자들의 주요 타자에 대한 내적 반응과 마찬 가지로 행동 차원에서도 '경청하기와 회복 돕기'와 함께 '눈치 보기와 거리 두기'라는 양가적 요소가 나타났다. 전자는 주요 타자를 돕기 위해 몰입해서 하는 의도적인 행동인 반면 후자는 상황과 주요 타자와의 관계 맥락에서 발생하는 반응 행동이었다. 일곱째,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에 대한 참여자의 내적 반응과 행동에는 참여자와 주요타자 관련 요인과 사회적 인식이 역동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참여자와 주요타자 모두 가족 및 가까운 지인 그리고 전문적 도움이 유의미한 요인이었으며 구체적인 개인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참여자 관련 개인적 요인은 증상 이해 정도, 개인적 여유, 타인과의 정서적 거리, 도덕적 당위감 그리고 주요타자 관련 개인적 요인은 자살위기의 반복 여부와 회복 의지가 도출되었다. 또한 자살을 터부시하는 분위기와 자살에 대한 낙인은 참여자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다음으로 핵심범주는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로 인한 두려움에 직면하여 나타나는 내적 반응과 행동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관계 변화'로 나타났다. 앞서 살펴본 일곱 가지 범주에서는 참여자와 주요 타자 사이의 관계적 역동과 그로 인한 관계 번화가 발견되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관계 유형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였다. 특히 거리두기 양상에서 관계별 차이가 두드러졌는데, 연인의 경우 가족 및 친구와 달리 주요 타자와의 거리두기가 극단적인 양상 즉 관계를 끊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가족의 경우 적절한 거리를 두기 상대적으로 어려웠으며, 부모-자녀 관계에 경우 자녀의 거리두기 시도는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거리 두기 정도'와 '자살위기 회복 정도'의 2가지 축에 따라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로 인한 4가지 관계 변화 유형을 발견하였다. 첫번째 유형은 참여자들이 주요 타자와 거리를 두지 않았고 자살위기는 호전된 경우로, '비 온 뒤 굳어진 땅'으로 명명하였다. 두번째 유형은 참여자들이 주요 타자와 거리를 두지 두었고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는 호전된 경우로, '각자의 삶을 살기'로 명명하였다. 세번째 유형은 참여자들이 주요 타자와 거리를 두지 못했고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는 호전되지 않은 경우로, '벗기 힘든 마음의 짐'으로 명명하였다. 마지막 네번째 유형은 참여자들이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가 호전되지 않은 채 거리를 둔 경우로, '지쳐서 놓아버림'으로 명명하였다.
본 연구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 상황에서 케어기버의 내적 경험을 탐색했다는 의의가 있다. 기존 자살 관련 연구는 자살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따라서 주변인 관련 연구 역시 그들이 자살예방에 기여하기 위해서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한 것이었다. 본 연구는 자칫 자살예방을 위해 자원으로만 간주되기 쉬운 케어기버의 주관적 경험을 질적 연구방법을 통해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들이 경험하는 현상과 그에 따른 반응 및 행동, 관련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탐색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둘째, 본 연구는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를 경험한 참여자들을 하나의 동질 집단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요 타자와의 거리 두기 정도와 자살위기의 호전 정도에 따라 유형화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또한 주요 타자와의 관계(가족, 연인, 친구)에 따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에도 주목하여 그 의의를 탐색하였다. 각 관계 및 유형 별 특징을 반영하여 자살예방 지원책을 마련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것이 주변의 자살을 예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본 연구는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에 대한 참여자의 경험을 관계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케어기버 경험에 대한 이해를 확장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케어기버 역할이나 부담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돌봄을 받는 당사자의 반응과 상호작용하며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자살위기 당사자와 참여자의 관계는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 상황에 대한 경험은 자살위기의 주요 타자를 돕기 위한 고정된 과업이 아니며, 자기 개념 및 타인과의 관계 방식까지 아우르는 다차원적인 관계적 변화를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본 연구는 주요 타자의 자살위기에 대한 경험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제언들과 자살예방교육을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후속 연구를 위해 제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