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은 인간이 살아가는 문화적 환경이자, 매일 변화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경관을 동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지층으로서 바라보는 관점은 최근 경관연구의 흐름이다. 하지만, 경관을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산물이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리적 현상의 집합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아직 미비하다.
경관연구에서 이야기는 중요하다. 이야기는 장소의 물리적 생성과 소멸 등에 대한 인간의 기억을 전달할 수 있는 비물리적 매개체이며, 인간의 장소기억을 텍스트, 사진, 그림, 녹취 등으로서 기록할 수 있게 돕는 거의 유일한 도구다. 개개인의 장소경험은 장소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되는 경관적 서사다. 본 연구는 거시적 역사의 흐름과 미시적 인간 삶의 다층적 관계성을 일상경관으로 읽어내기 위하여 이야기와 이야기맵핑을 연구의 중요한 매체로서 활용한다. 이야기맵핑은 장소와 관련된 개인들의 이야기를 데이터로써 분류하여 공간, 시간, 사람 간의 관계성을 평면적 지도위에 구현한 시각적 결과물이다. 개인의 기억이 모인 집합기억을 시각화하는 이야기맵핑은 이야기가 있는 경관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수단이며, 이야기맵핑을 통한 연구방법은 장소와 장소성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한 실천적 연구방법으로 유용하다.
본 연구는 역사·문화적 맥락이 지역 주민들의 일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거시적 역사의 흐름에 가려져 주민들의 미시적 일상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대표적 역사 도심인 서울 북촌 지역을 본 연구의 대상지로 삼아, 이야기맵핑을 통한 일상경관 읽기를 시도한다. 북촌은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사가 담긴 경관연구가 이루어진 적 없는 곳이다. 또한 북촌은 자연·역사·생활환경과 주민 생활이 다층적 관계성을 이루는 일상 공간으로서의 특성을 지닌 곳이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북촌의 환경적 변화가 급격해지기 시작한 191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약 110년의 기간으로 선정한다. 이 기간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1910년부터 1940년까지의 '가'시대, 1950년부터 1970년까지의 '나'시대, 1980년부터 1990년까지의 '다'시대와 200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의 '라'시대 등 네 개의 시대로 구분하여 설정한 것이다. '가' 시대는 대한제국부터 일제강점기, '나' 시대는 정부수립과 및 6.25전쟁과 경제적 도약을 시작한 시기, '다' 시대는 산업화를 통한 개발 확대로 인해 북촌 한옥보존제도가 후퇴한 시기이며, 마지막 '라' 시대는 디지털 및 정보화시대에 전통적 역사도심으로서 관광지화되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난 이후 도시재생이 진행되는 현재를 아우른다.
연구의 세부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심층 인터뷰와 문헌고찰을 통해 북촌 지역 주민들 일상 장소에 대한 경험적 기억을 수집하여 이야기데이터화 하는 것이다. 이야기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하여 조경학 및 도시계획학 관점의 장소 및 경관연구를 기반으로 한 포스트 신문화지리학의 실천적 경관연구와 인류학 및 사회학의 현상학적 참여관찰 연구 등을 접목한 다학제적 연구방법을 활용한다. 이야기데이터 수집은 대상지와 주민들을 '만나고', 일상 장소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낯설게 '바라보며', 일상 장소의 이야기와 의미를 '찾는' 순서로 진행된다. 두 번째는 이야기맵핑의 구현을 통한 이야기데이터를 시각적으로 '기록하기'이다. 이는 수집한 이야기데이터를 해체하여 맥락에 맞게 분류하고, 시계열 분석을 통해 재구성한 것을 바탕으로, 자료의 특성을 부각하는 독창적 이야기맵핑을 기획함으로써 구현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맵핑을 통해 대상지인 북촌의 일상경관을 '읽어내는' 것이다. 일상경관 읽기는 이야기맵핑에 구현된 장소와 장소 간, 장소와 사람 간, 장소와 지역 간, 장소와 시대 간의 관계성 등에 대한 다층적 연결짓기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본 연구에서는 이야기데이터의 범주화 및 세밀화 를 통해 분석하고, 이야기맵핑을 활용한 장소간의 연결망을 다층적으로 엮어 일상경관으로 해석한다. 상기한 바와 같이 본 연구는 경관을 읽어내는 다양한 시선을 견지하고자 연구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구성한다. 제3장은 외부자인 연구자의 관점에서 구현한 일상사 지도와 일상경관 읽기, 제4장은 내부자인 주민들의 주관적 관점에서 재현한 심상 지도와 일상경관 읽기, 그리고 제5장은 외부자인 연구자와 내부자인 주민 집단의 협력적 관점을 통한 공동체 지도와 일상경관 읽기 등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맵핑을 통해 북촌의 일상경관을 읽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촌의 일상 장소 이야기의 집합은 장소성 유형에 따라 범주화 및 세밀화하여 분석될 수 있는데, 그것은 일상 장소의 이야기는 장소성의 유지, 소멸 및 변경 등으로 분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일상 장소 이야기를 통해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경관을 다시 보고, 의미를 찾으며 일상경관의 가치를 재발견해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누적된 이야기데이터를 시계열로 분석한 "북촌 100년, 이야기경관 연대표"로서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각화한 "북촌 100년, 이야기경관 지도"로서 구현하였다. 북촌의 축적된 이야기맵핑은 지도를 읽는 이가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 잇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경관 연구의 중요 수단이자, 북촌 이야기경관 연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열린 결말이다.
본 연구는 기존의 환경계획 및 설계연구에서 진행한 경관연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긴 기간과 노력이 요구되며, 연구 초반 연구 대상자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은 점과 더 다양한 관점으로 다층적 이야기경관을 읽어내지 못한 한계가 있다. 향후에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연구 대상지 선정시 사전지식이 충분히 있는 곳을 선정하거나, 연구자가 지역의 내부자 혹은 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이미 형성한 곳을 선정하는 방안, 혹은 주요지자체나 지역 민간단체의 도움이나 협력을 받는 것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다량의 이야기데이터의 확보를 위하여 온라인 플랫폼 구축을 통해서 내부자 및 외부자의 자발적 이야기데이터 수집을 유도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와의 공감대 형성 및 지자체와의 인식 공유를 통한 체계적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북촌 고유의 시간성과 삶의 흔적을 이야기라는 도구로 읽어내는 실천적 연구를 하고자 했다. 이야기를 이야기맵핑을 통해 시각화하고 일상경관을 읽어낸 것이 본 연구의 의의이다. 이야기맵핑의 주요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이야기맵핑을 읽는 이는 누구나가 될 수 있으며, 읽는 이의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읽힐 수 있다. 둘째, 이야기맵핑은 이야기데이터의 수집과 누적을 통해 일상경관으로서 아카이빙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변화하는 동사형(verb)으로서의 일상경관의 장소, 시간, 사람과 장소간의 관계성을 읽어내고 장소성을 재발견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맵핑을 통해 읽은 이야기가 있는 일상경관은 지역의 장소 정체성 연구를 위해 중요한 연구의 과정이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의 내용은 곧 이야기경관 연구의 과정이며 실체이다. 본 연구를 통해 이야기경관의 개념을 정립하고, 연구의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이야기경관 연구의 발전을 꿰하고 연구의 지속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본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본 연구는 향후 환경계획 및 설계를 위한 기초 자료로써 활용 가능하며, 지역의 교육 및 관광과 홍보, 문화와 예술 연계 콘텐츠 및 프로그램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지역의 이야기 아카이빙 및 지역 브랜드 활성화 등 도시, 공간, 장소 연구 등의 다양한 방면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