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도입 과정에서 배심원의 판단에 관한 연구는 주로 배심원의 사실 판단 능력에 관한 문제에 집중되었다. 반면, 배심원의 법적 판단에 대하여는 국민참여재판 도입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관심이 기울여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크게 두 가지 점에 기인한다. 첫째, 영국 보통법에서 시작되어 미국 연방대법원이 19세기 후반 Sparf and Hansen v. United States 판결에서 확립한 "법적 판단은 법관의 몫이고, 사실의 판단은 배심원의 몫"이라는 분업 모델의 관념이 우리 국민참여재판 논의에도 영향을 미쳐, 배심원이 법적 판단에 관여할 여지는 없다는 관념이 형성되어 왔다는 점이다. 둘째, 배심원은 평결에 대하여 대외적으로 근거를 제시하지 아니하고 그 의사결정 과정도 공개되지 아니하므로 배심원의 법적 쟁점에 관한 의사결정이 베일에 가려져 그 실체를 알기 어렵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러나 배심원은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령의 적용' 권한을 명시적으로 부여 받으며, 실제 국민참여재판에서도 배심원의 법률의 합헌성,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관한 판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배심원의 법적 판단의 고유한 특성과 한계를 규명함으로써, 법관이 배심원의 법적 판단에 담겨 있는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을 판결에 충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위와 같은 연구 목적에 따라, 우선은 정확한 비교법적 관점의 획득을 위하여 미국 배심재판에 관한 주요 문헌과 판례를 고찰하였다. 그 결과 미국의 형사 배심재판에서 법관과 배심원이 각각 법적 판단과 사실 판단을 분업적으로 수행한다는 명제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으로 실제 미국 배심원은 다음과 같은 법적 판단을 수행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첫째, 법령의 적용에 관한 판단을 법적 판단으로 분류하는 관념이 강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과실의 존부와 같이 법령의 적용에 관한 판단 중 일정 부분을 사실 문제로 분류하여 배심원에게 판단을 위임한다. 이와 같은 판단은 명백한 오류가 없는 한 1심 법원과 상급심에 의하여 존중된다. 둘째, 미국의 배심원은 선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사안에서 스스로 법을 해석하여 적용하여야 하는 1차적 법 해석자의 지위에 놓이게 된다. 셋째, 미국 배심원은 무죄 평결을 하는 한도에서 통제받지 않는 "법적용거부(jury nullification)"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즉, 미국 배심원은 법에 관하여 법원이 설명한 바에 따라 이해하고 이를 적용할 의무가 있지만, 그와 같은 의무를 따르지 아니하고 법을 다르게 이해하거나 적용을 거부하여 피고인에게 무죄의 평결을 하더라도 그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평결에 대한 검사의 불복도 불가능하다. 위와 같은 미국의 형사 배심재판 특유의 제도는 일반 시민이 상식적 정의의 관점에서 국가의 형벌권 행사를 강력히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적 가치라는 관점에 기초한다. 그러나 무죄 평결에 대한 불복의 원천적 차단은 실정법의 문언과 실질적 정의가 충돌하는 경우 후자에 따르겠다는 숙고된 판단에 따른 법적용거부 뿐만 아니라, 법과 무관한 정치적·사회적 편견에 따른 무죄 평결이나 법의 내용에 대한 완벽한 오해에 따른 무죄 평결까지도 통제 불가능하게 하여, 지나치게 높은 오류 비용을 감수하도록 한다.
우리 국민참여재판법에서 목적으로 삼고 있는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이 미국에서처럼 일반 시민에 의하여 입법자의 의지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는 재판 결과도 용인하는 의미의 민주적 정당성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가장 높은 민주적 정통성을 가진 주체는 국민으로부터 입법 권한의 명시적 위임을 받은 입법자이고, 사법권의 행사 주체인 법관은 물론 사법 절차에 참여하는 시민이라 하더라도 입법자의 가치 조정에 관한 결정을 번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의 민주적 정당성은, 입법자가 가치 조정을 하지 않은 영역에서는 무작위로 선발된 일반 시민들이 법관보다 전체 사회 구성원의 입장을 더 잘 대변할 수 있으므로, 법에 의하여 일의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영역의 가치 조정 판단에 관하여 일반 시민들이 내린 숙고된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편,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는 법원은 상식과 도덕의 이름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관점이 무분별하게 법적 판단에 반영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사법부의 소수자 보호 책무도 함께 이행하여야 한다. 이처럼 시민들의 상식과 도덕에 입각한 판단이 헌법과 입법자가 법률에 표현한 가치 결정에 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 고려될 수 있기 위해서는, 법관과 일반 시민 어느 한 쪽에 법적 판단 권한을 전속시키기보다는 양자의 적절한 협업이 가능하도록 하되, 최종적으로는 헌법 제27조 제1항이 정한 바에 따라 법관이 판단에 따르는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 국민참여재판법에서는 법관은 배심원 설명을 통하여 배심원이 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획득한 상태에서 평결에 나아가도록 조력하도록 하는 한편, 배심원은 충분한 토론을 통하여 얻어진 평결 결과를 법관에게 제시함으로써 최종적인 판단자인 법관으로 하여금 자신의 판단이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는지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양자가 협업할 수 있는 절차적 조건을 만들고 있다. 특히 배심원은 구체적 타당성에 대한 고려, 일상의 언어 감각의 법 해석에의 반영, 피고인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 관용의 자세 등에 있어서 법관보다 비교 우위에 있고, 이러한 장점을 토대로 사회상규에 의한 정당행위, 법률의 착오, 죄형균형과 책임 원칙의 고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범죄 성립의 엄격한 판단 등의 측면에서 법관에게 유의미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에 1심 법관의 법률 전문가로서의 판단과 배심원의 상식적 판단이 일치하여 무죄의 결론을 도출한 경우에는 사실인정 판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도의 존중을 부여하는 법리를 새롭게 펼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분업 원칙에 따른 엄격한 권한 분리를 거부함과 동시에 법적 추론의 과정을 선험적으로 주어진 법을 사안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이 아니라 "규범과 사안 사이에서 시선을 왕복"하며 잠정적인 법적 추론의 가설을 평가하고 적용하여 최종적인 법적 확신을 얻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면, 법관과 배심원이 법에 대한 이해를 상호 주고받으며 법에 대한 전문성과 상식적 판단을 결합시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점차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조건 하에서는, 배심원이 법령의 적용에 따른 결론에 관한 의견 뿐만 아니라, 법률의 합헌성에 관한 의견과 판례 변경의 필요에 관한 의견, 해석적 선례가 없는 법률의 해석에 관한 의견도 법관에게 제시함으로써 법관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법적 판단을 뒷받침할 수 있다. 이러한 합리적인 법적 판단의 이상을 더욱 충실하게 구현하기 위한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배심원의 평결에 대한 법관의 근거 청취 절차의 공식적 구축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참심제에 입각한 평의 절차의 도입 가능성에 대하여 신중한 고민을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