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공공부문의 예산 불용을 바라보는 그간의 주요 논의에 따라, 예산 불용은 재정 민주주의의 훼손이자, 배분적·기술적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재정운용의 결과로 인식되어 왔다. 그 결과 예산 조기집행정책, 예산 불용에 따른 예산 삭감 등 예산 불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가지 제도들이 생겼고, 사업 실무자들의 예산 불용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져갔다.

예산 조기집행 목표 달성을 위해, 또 예산 불용에 따른 여러 제도적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해 사업 실무자에게는 비효율적·비효과적 예산집행에 대한 유인이 발생하게 된다. 만약 그렇다면, 예산 불용을 기존의 연구와 같이 재정 운용 비효율성의 지표로 삼는 것이 적절한지, 또 만약 비효율적·비효과적 예산 집행이 발생한다면, 오히려 재원이 보전되는 예산 불용이 상대적으로 건전한 예산 행위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본 논문에서는 예산 불용을 재정운용의 비효율성의 지표로 삼는 것이 적절한지 살펴보기 위해 연도별 예산집행률이 재정성과목표 달성률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해보았다. 또한 1분기와 4분기의 예산집행률이 각각 재정성과목표 달성률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하여, 비효율적·비효과적 예산집행이 발생하지는 않는지 확인해보았다.

연도별 예산집행률과 1분기, 4분기 예산집행률을 각각 독립변수로 설정하여 분석한 결과, 먼저 연도별 예산집행률은 재정성과목표 달성률에 유의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예산불용을 재정운용 비효율성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로 삼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1분기 예산집행률 역시 재정성과목표 달성률에 유의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 4분기 예산집행률은 재정성과목표 달성률에 유의한 양(+)의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예산 조기집행정책으로 인해 일부 비효율적·비효과적 예산 집행이 발생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는 예산 불용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성을 제시해준다. 사전 조사 및 집행 계획 부재, 충실하지 못한 예산 집행 등의 비효율적인 재정운용으로 인해 예산 불용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낭비적 예산 집행 등의 비효율적 재정운용으로 인해 오히려 예산 불용이 감소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재정운용의 효율성을 판단하는 지표로 예산 불용을 선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연도별 예산집행률과 재정성과목표 달성률이 비례하지 않는 분석 결과를 볼 때 이러한 주장에 타당성이 더해진다.

앞서 언급한 낭비적 예산집행이 실제로 발생하는 것 또한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낭비적 예산집행은 기술적 효율성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재정운용의 결과이자, 재정 민주주의의 더 큰 훼손을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예산 불용은 세계잉여금의 형태로 다른 용도에 사용되거나 차기 재원에 이입된다. 하지만 낭비적 예산집행은 집행에 따른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재원이 소멸된다는 점에서 예산 불용보다 더욱 비효율적인 예산 행위이자, 재정 민주주의의 훼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오히려 예산 불용으로 남기는 것이 상대적으로 건전한 예산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예산 불용에 대한 제도적 불이익의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낭비적 예산집행의 방지와 재정 운용의 효율성 개선을 위해서는 예산 심의 기관의 전문성 확보가 필수적이며,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인 조기집행목표 설정, 평가기준으로서의 예산 조기집행목표, 사업 예산집행률 및 불용액 목표의 재검토가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예산집행기간의 연장, 다년도 예산제도, 예산집행에 대한 사업담당자의 자유재량권 강화 및 예산절약 인센티브 프로그램의 도입 등을 통해 예산 집행에 대한 사업실무자의 재량권을 강화하고 예산 절약에 대한 유인을 제공하여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