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회화의 발현은 중국예술사에 매우 흥미로운 현상을 보여준다. 그 현상으로 산수화, 인물화와 함께 중국화의 3대회화 중 하나로 꼽히는 화조화(花鳥畵)의 발현으로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원나라 초 화조화는 색채가 현란하고 조형이 정연한 스타일적 특징에서 표현이 간소한 수묵사의(水墨寫意)를 중요시하는 형식으로 빠르게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색채의 세계에서 복고풍의 흑백세계로 단숨에 들어선 것과 같다. 또 하나의 현상으로 원나라 회화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개념 '복고주의'의 대두에서 그 특성을 볼 수 있다. 중국회화의 중요한 전환기인 원나라 시대에 나타난 '복고'의 결과는 당대의 '혁신'으로 간주된다. 원나라는 상대적으로 문명수준이 낮은 초원민족인 몽골족이 세운 정권이었다. 하지만 원나라 사대부계통의 회화는 매우 높은 예술수준에 도달하였고, 중국회화사의 또 다른 고봉(高峰)인 송대(宋代)와 함께 송원회화(宋元繪畵)라고 불렸던 만큼 유서가 깊다할 수 있다.
본 연구자는 원나라 시대의 예술적 특성 및 모순적이면서도 흥미로운 회화적 흐름과 예술적 현상들을 연구의 모티브로 착안하였다. 수묵화조화(水墨花鳥畵)에 대한 이론적 고찰에 중점을 두고 당시의 회화적 현상을 조명할 필요성을 제기하여 논문의 착안점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특히 본 논문의 핵심적 연구내용인 조맹부(趙孟頫, 1254~1322)의 복고주의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과 원나라 시대의 회화의 특성과 연결하여 본 논문의 논점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당시 몽고족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박해와 차별이 심화하면서 한족을 중심으로 송나라 예술의 계승과 함께 복고주의가 나타나게 된다. 그 중심에 조맹부의 주도로 당, 오나라, 북송의 문화를 기반한 회화가 성행하였고 이후 남송의 멸망과 함께 문화전성기였던 북송 즉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복고주의운동이 시작되었다. 당시 조맹부는 원대 동거파가 아니었다. 동거파의 영향으로 일부화풍을 계승했던 것이다. 조맹부는 전통적 채색화의 특징과 사의적인 수묵화를 표방했던 화가이다. 그가 이러한 화풍을 가졌다는 점은 그가 추구한 복고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그의 지향한 점은 중국미술사에서 복고주의를 의미한다. 산수화에서도 수묵산수보다 청록산수가 당의 복고주의를 드러냈다. 기법면에서는 구륵법에 의한 산수화풍이나 북종화 계열의 인물이나 동물 즉 말 등의 표현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채색화가 가미되어 사실적인 대상묘사가 이뤄진 것이다. 또한 시서화의 일치를 강조하며 여백을 살려 백묘법이나 남종문인화적 화풍이 당/북송의 수묵화로서 복고를 표출하였다.
본 논문은 중국미술사의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던 당시의 시대적 현상을 반영하여 논문의 논점들을 정리해 나갈 것이다. 특히 인물화가 쇠퇴하면서 원나라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자연에 은거하며 복고주의에 가담했던 당시의 예술성향을 고찰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 될 것이다. 아울러 원체화풍의 쇠퇴와 함께 문인사대부가 이끌어가는 계기를 마련했던 복고주의 화풍의 유행과 회화의 특성을 추적하고자 한다.
과거 동서양은 미술에 있어 서로 간 상호교류가 있었음을 모두가 인정한다. 중국은 1898년경 문호를 개방하면서 서양의 근대미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30년대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서구미술을 습득시키면서 미술의 혁신을 꾀하고자 했다.
중국미술은 전체를 통틀어 자연과의 만남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하다. 자연과 친화적 관계를 유지하고자함이 보편성이다. 당송시대의 산수화에 나타난 대기원근법이 터너(J.M.W Turner)나 콘스터블(John Comstable)의 그림에 보여 졌듯이 유럽의 자연주의에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다시 선진문화로 포장된 새로움이 되어 우리에게 나타났다.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Voltaire) 역시 지구상에서 일어난 것에 관해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제일 먼저 모든 예술의 요람이자 모든 방면에서 영향을 준 동양에 눈을 돌려야 한다면서 도량 넓은 아시아를 본받아야 한다면서 가장 덕망 높은 원형으로 중국인을 손꼽았다고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서양의 주된 미술양식을 그레고-로만(greece-Roma)이다. 지오토부터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외부적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나 역사적으로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이다. 본격적인 의미에서 동양의 산수화가 서양에 영향을 미천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들 수 있다. 단적인 예로 터너(J.M.W Turner) 그림에 나타난 배경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동양화의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중국의 4대발명품의 전달과정에 연유되어 있음을 상기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 유럽작가들에 의해 표출된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대기원근법이라는 포장아래 중국전통산수화 양식이 나타나고 있고 정물화는 당송시대의 화조화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러시아의 모스크바 출신으로 알고 있는 칸딘스키 역시 그의 조상들은 중국국경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즉 혈통면에서 이미 동양적 전통의 연관성을 잠재적으로 이어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1925년 그레코-로만전통에 근거한 유물론적 사관을 버리고 동양의 예술정신, 서양 정신보도 훨씬 세계를 보다 영구적으로 그리고 한층 우주신비론적으로 인식한 동양과 아시아에 빠져들었음을 기록한 바 있다. 이러한 근거들은 사혁의 6법으로부터 사물의 물성을 기의 정신으로 강조한 역사적 유산으로부터 다시금 통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거들을 바탕으로 중국회회사의 역사성을 되짚어보고 중국미술의 동양적 정신세계와 자연주의를 서구 미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고증에 초점을 둘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회화연구를 진행할 때,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의 채색도자기 패턴과 문양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아 논술을 시작한다. 현재의 고고학적 자료와 형상학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연구사고는 매우 합리적이다. 그러나 회화기원의 문제에 대해서, 세계의 여러 연구마다 그 기원이 주술, 놀이, 모방에서 비롯되었다는 이론 등등 다양한 이론이 존재한다. 반면 중국고전이론에서는 회화가 '팔괘도안(八卦圖案)'과 '상형문자(象形文字)'에서 기원했다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국회화는 기원 때부터 사유와 문자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파악할 수 있다. 이후의 발전과정에서 중국화는 화가의 신분과 회화의 목적에 따라 궁중회화, 문인사대부화, 장인화의 세가지 체계로 나뉘었다. 본문에서 서술하는 원대수묵화조화는 문인사대부화의 체계에 속한다. 이 체계에서 보았을 때, 회화발전은 '팔괘도안(회화의 철학적 의미)'과 '상형문자(회화의 구체적인 기법)'의 원시적 형태의 점진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도 원대의 수묵화조화에 대한 고찰과 분석은 이 두 가지 맥락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수묵화조화는 초기의 수묵화와 화조화가 역사의 발전속에서 점차 융합되어 당나라 말기에 들어 형성된 것이다. 수묵화조화는 송나라시기에 고도로 발전하였으나 남송말기에 이르러 전체회화가 쇠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조맹부(趙孟頫)는 '복고(復古)'라는 관념을 내세웠고, '복고'를 통해 회화를 포함한 문예창작을 진흥하고자하였다. 그 결과' 복고'라는 관념은 원대의 각종문예창작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원대의 가장 현저한 문화현상이 되었다. 이를 깊게 분석해보면, 원나라시대 '복고'가 흥했던 것에는 당시의 특수한 시대적 배경에서, '복고'의 내적실체를 직접적으로 추구하는 사대부계층의 분위기가 일종의 원인이 되었다. 당시 사대부계층은 사회적 책임과 '도(道)'에 대한 추구(회화철학적 의미)가 있어야 했고, 이것이 사대부들의 회화의 실질적인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원대의 사대부화가들이 고도의 붓놀림기법을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화조화의 창작과 연구를 보면, 신소재의 활용과 시각적 충격과 같은 형식적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주류풍조가 되어있다. 화조화 이면의 철학적 함의, 가장 핵심적인 기법은 모두 무시되는 것이 현 상황이다. 하지만 회화창작에서 그저 그 종류가 풍부하고 양식이 참신하다는 것이 반드시 예술적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본 논문은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현상에 대해 깊은 고찰과 분석을 수행한다. 고찰과 분석을 통해, 현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추구하고 새로운 해석의 제시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창작자의 관점에서 분석을 진행하여 회화의 이론적, 표현 기법적 시사점과 향상을 얻으려 한다.
이러한 고찰은 벽화유적지, 예술대학, 관련 박물관, 예술가작업실 등을 견학하는 답사와 문헌정리, 기존 원나라 화조화 관련 전문서적, 학위논문, 간행물, 사진자료 수집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수묵화조화의 예부터 지금까지의 이론과 기법, 조형의 발전 맥락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기별 발전상황과 예술적 특성에 대한 분류와 분석을 진행하여 역사, 문화, 미학적 특성을 요약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앞에서 언급한 요소들을 통해, 중국문인사대부 회화체계 및 구상(具象)적인 것으로부터 추상(抽象)적인 회화창작자의 주체의식이 작품속에 더욱 명확하게 표현되는 회화사에 커다란 변화를 증명하고자 함이다. 또한 원나라 수묵화조화에서 나타난 철학적 함축과 용필법의 두 가지 융합적 측면을 고찰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원나라 이후 화조화창작은 예술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본 연구자는 당시 조맹부가 이끈 '복고주의' 현상과 맞물렸던 중국 미술사가 현대예술 발전상황에 끼친 영향과 현상을 비교하고자 하였다. 결과적으로 논문의 증명을 통해 현대예술발전의 문제점을 제시하여 발전적 방향과 현실적인 참고가치 및 의의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