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부안 유천리 청자가마에서 보이는 특징을 파악하고 부안 유천리 청자요장과 다른 청자요장의 가마, 건물지, 공방지 등을 비교하여 부안 유천리 청자요장의 운영체제에 대해 고찰하였다.
고려시대 부안지역의 청자요장은 줄포만을 마주하고 있는 고창지역의 청자요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창지역에서 부안지역으로 요업이 이동하게 된 이유는 크게 4가지로 보인다. 동일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한 최적화된 요지환경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또한 과도한 별공으로 인한 장인의 유망현상이 발생하는 시대적인 배경을 통해 보았을 때, 고창지역 청자요장의 기술자들 중 일부가 이동하여 부안지역에서 요업을 운영하였을 것을 추정하였다. 부안 진서리 일대에 비교적 이른 시기에 요업이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가마들에서 고창 지역의 청자 가마들과 유사한 길이와 소성실 기울기를 공유하고 있어서 친연성을 보인다. 퇴화해무리굽완과 반구병편, 녹청자들이 진서리 7호에서 출토되어 당시 가장 많은 생산량을 보이고 제작되고 있는 완을 고창 용계리와 같은 운영시기에 생산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마 구조의 변화를 통해 청자요업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였던 노력들이 부안 유천리 가마들의 구조와 특징에서 확인되었다. 석재형 감실을 설치하여 더욱 좋은 유약을 제조하고자 연소실에서 생산된 재들을 보관하였다. 12세기 3/4분기경에 개요한 가마들에서는 경사형 불턱이 확인되는 것에 반해 12세기 4/4분기-13세기의 개요한 청자가마들에서는 수직형 불턱이 확인되었다. 또한 여러 차례 개축을 통해 불턱의 높이가 상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2세기 후반경, 경사형과 수직형 불턱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으며 생산하는 기물의 품질에 따라 가마의 구조를 달리하였던 것으로 해석하였다. 진서리에서 유천리로 요업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요업이 진행되는 자연환경도 변화하게 되었다. 특히 부안 유천리 청자요장 중 가마의 밀집도가 가장 높아지는 곳은 만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낮은 구릉산지에 분포하고 있다. 산 중턱부에 위치한 진서리에 비해 유천리에서 더욱 낮은 자연경사도를 얻을 수 있었으며 점차 도공이 불길을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이라는 자연지형은 더욱 높은 풍화, 침식작용을 거친 이차점토를 수급할 수 있었기에 점차 만의 안쪽에 대규모 요장이 조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초벌구이는 경제적이지 못한 공정이다. 하지만 초벌구이와 초벌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더욱 양질의 청자를 생산하고자 하였다. 가마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생산품의 풀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석된다.
부안 유천리 3구역 요장에서 확인된 건물지와 공방지들은 청자를 제작하는 과정부터 선별, 보관하는 단계까지 청자를 제작하기 위한 모든 공정들이 건물지와 공방지의 성격에 반영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요장에서 확인된 건물지들은 모두 건물지라고 명명하였지만 담당하고 있는 기능과 성격에 따라 구별되는 것으로 보인다. 부안 유천리 3구역 일대에서 확인된 기와 건물지는 소수공업 지역에서 보이지 않았던 건물의 형태이다. 또한 축대를 이용하여 공간을 분리하고 구획을 나눈 것으로 보여 높은 위계를 가진 건물이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부안 유천리 3구역 일대에서 보이는 공간구조를 살펴보았을 때, 부안에서 생산하는 고려청자가 점차 화려한 문양을 보이며 여러 시문기법들이 복합적인 양질의 청자를 생산할 수 있게 된 이유가 가마와 건물지, 공방지 간의 유기적인 관계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였다. 효율적인 청자생산을 위해 분업화된 청자생산과정이 건물지와 공방지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일반적인 폐기물퇴적구가 아닌 자편들만 인위적으로 파쇄한 자편퇴적층이 발견되었다. 이는 곧 왕실에서 사용하기 위한 특수한 목적의 청자들을 다수 제작하였으며 생산품의 품질을 관리하고 낙선품들 조차도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본 고에서는 부안 유천리 청자가마에서 보이는 구조적 특징과 유구의 중요성을 주목받지 못하였던 고려시대 청자요장 내 건물지와 공방지의 성격과 기능에 대한 연구이다. 고려시대 청자요장에서 확인된 건물지, 공방지들 중 부안 유천리3구역 일대에서 확인된 건물지들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가마의 구조와 건물지와 공방지들의 공간구조를 변화시키고 구획하는 과정을 통해서 부안의 청자요업 기술을 빠른 시간에 발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마와 건물지, 공방지의 변화가 바탕이 되었기에 강진과 함께 최고급의 상감청자를 생산할 수 있었던 요장의 발전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