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학파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보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했던 이론 체계의 미학적 의미를 재검토하고 이것을 현재 시점에서 재활용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정보 미학이 선도적으로 도입했던 개념들이나 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은 현재 과학적 미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분야들에서 거의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철학적 미학에서 정보 미학은 일시적이고 지엽적인 역사적 일화 이상의 평가나 인지도를 얻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이것이 정보 미학에 국한된 특수한 문제라기보다는 미학 자체의 학제적 성격에서 비롯된 본질적인 차원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즉, 하나는 역사적으로 인식론으로부터 독립해 나온 가치론의 정체성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미학이라는 학제의 적법성과 관련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적 미학 대 과학적 미학으로 서로 대립하는 방법론적 정당성의 문제이다.
우리의 대안적 관점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쓰이는 형식 언어를 구문(syntax)으로만 이루어진 넓은 의미의 언어로, 즉 사유의 도구로서 파악한다면, 정보 미학을 우리말에서 '시학'(詩學)으로 번역되곤 하는 '포이에티케'(Poietike), 즉 제작학을 위해 정립된 이론 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 미학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로 생성되는 미적 대상을 설명하기 위해 기획된 이론이었다. 이로부터 우리는 형식 언어에 해당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하는 소스 코드에서 구문론적으로 생성되는 '객체'라는 문법적 용어에 미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개념화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 논리적 추상물의 성격을 기존의 예술 비평에서의 형식 개념과 연결한다. 결과적으로 정보 미학에서 제안한 '열린 형식'의 의미가 무엇이며, 초기 컴퓨터 그래픽 예술을 지성에 의한 사고실험으로 규정하며 사변적 미학에 저항하는 '이성적' 미학을 주창한 의도가 무엇인지 또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이를 통해 생성 예술이나 정보 미학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부문 일반에서 형식성이 정신과, 추상성이 질료와 개념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결합되는 원리를 해명할 수 있다. 추상적 사유 능력을 창조적 과정에 동원한다는 발상은 비단 디지털 컴퓨터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현대 예술에서, 특히 실험 과학과의 연계를 통해 완전한 자율성을 추구했던 추상 예술에서 이미 발견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언뜻 서로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는 요소들을 추상화를 통해 자율적 원리들로 조율함으로써 복합적 구조로 구성하여 미적 대상을 물리적으로 실현한다. 이 과정에서 형식 언어를 직접적인 매개로 한다는 점이 초기 디지털 컴퓨터 그래픽 예술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알고리듬 예술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미학이 집착하는 '이미 표현된 것'으로서 고정된 산출물이 아닌, 형식 언어로 정의되는 클래스가 인스턴스로 실재화되는 역동적 과정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 미학은 추상적 구조를 양적인 관계들로 구현 또는 분석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제작학이라는 차원에서 일반 미학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로써 철학적 미학과 과학적 미학 사이를 연계하는 방법론적 경로로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