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노동운동가들의 소진 경험은 무엇이고, 그 경험은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소진경험이 있고, 심리상담 경험이 없는, 10년 이상의 노동운동경력을 가지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노동운동가 6인을 만나 심층 면담하여 자료를 수집 하였다. 수집된 자료는 van Manen의 현상학적 체험연구의 방법을 적용하여 분석하고, 해석하였다. 이를 통해 노동운동가의 소진 경험에 관한 본질적인 주제 13가지를 도출하였고, 노동운동가로서의 '나'와의 관계에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노동운동가들과 조직과의 관계에서로 유목화 하여 제시하였다.
참여자들은 노동운동가로서의 '나'와의 관계에서 소진을 경험하였다. 참여자들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운동가로 규정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더 엄격하고 높은 기준의 활동가다움을 지향하여 왔다. 이러한 기준은 삶에서 자신을 이끌고 추동하는 동력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진에 노출되기 쉬운 조건으로 작용하였고, 소진에 이르게 하였다.
참여자들은 가족과의 관계에서 소진을 경험하였다. 참여자들은 늘 일을 하거나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가족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중요한 타자이지만 활동을 하면서 외면되었고, 선택의 순간에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렇기에 가족은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린 느낌을 주는 존재'였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자녀로서, 특히 '자녀를 둔 부모로서' 더욱 그러했다. 자녀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고, 일상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이제 성장한 자녀를 보면서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후회를 하게 되었다. 부모로서 상처로 남겨진 기억들이 개인적인 삶이 없었음을 드러냈다.
참여자들은 노동운동가들과 조직과의 관계에서 소진을 경험했다, 참여자들은 활동하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단절감'을 느꼈다. 내부의 분열과 뭔가를 하자고 제안하면 싫어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이 돌아왔고, 노동운동하는 사람들 내부에서 의기투합이 잘되지 않았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딪힘과 싸움으로 의심과 배신감을 경험하였다. 참여자들에게, 쉽지 않은 노동운동의 길에 뜻을 함께 모은 동지, 동료들은 큰 의미가 있는데, 이런 관계에서 단절됨은 소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연구자는, 이러한 13가지 주제의 노동운동가의 소진 경험을 바탕으로, 그 경험의 의미를 4가지로 해석하였다.
첫째, 참여자들의 소진 경험은 '멈춤 그리고 성찰과 사유하는 시간'의 의미가 있다. 자신에게로 집중하는 시간들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감정들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그 감정들로부터 떨어져서 자신을 객관화하여 보았고,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역지사지하는 경험을 하였다. 참여자들은 활동이 우선이 되어 놓친 것들을 생각하였고,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으며, 노동운동가 자신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들이 명료하게 알아차려지게 되었다. 내 것 인줄 알고 해왔던 것을 떨어트려서 보고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노동운동가에게 숨 쉴 구멍이 되었고, 숨고르기를 하는 경험이 되었다.
둘째, 참여자들의 소진 경험은 '나를 잘 돌봄이 운동적 삶을 지속하게 함'의 의미가 있다. 참여자들은 '조직의 명분과 이해' 보다, '개인', '나', '활동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전의 생활패턴이었던 활동 우선과 타인에게로 향했던 예민함과 관심을 내안으로도 향하게 하고,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등, 나를 잘 돌보아야 운동적인 삶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경험이었다.
셋째 참여자들의 소진 경험은 '한계를 수용하고 삶의 과정으로 나아감'의 의미가 있다. '내가 지쳤구나'를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 되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그동안의 삶의 패턴을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경험했다. 그것은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이 되어서 자신을 돌봄으로 다시 세우고 다져나가기를 반복하며 자신을 만들어가는 경험이 되었다. 삶에서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분명히 전의 그 자리가 아님'을 경험하는 과정으로,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삶에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넷째, 참여자들의 소진 경험은 '주도적으로 선택한 삶, 노동운동을 잘 마무리하고 싶음'의 의미가 있다. 참여자들은 소진을 반복하여 경험이 되었어도, 노동운동을 시작했던 첫 마음을 확인하는 등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과 '운동적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참여자들에게 '노동운동'이 유일한 자산이 되었고, '내 인생'이 되었듯이,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은 '운동적 책임감'을 기꺼이 지고 가고 싶은 태도로 드러났다. 이러한 '운동적 책임감'은 노동운동의 대의적 측면을 위해 '복무함'과 노동운동을 하는 노동운동가 당사자의 '운동적 삶을 살아감으로 존재함'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노동운동가가 주도적으로 선택한 자신의 삶에 대하여 자신이 책임을 져가는 '삶의 과정이 되어 감'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소진을 경험한 노동운동가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관계라는 일상의 기본 구조를 통해, 노동운동가들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경험의 의미를 해석'하였다. 이를 통하여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는데 연구의 의의가 있다. 또한 노동운동가들의 소진 경험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는 가운데 본 연구가 소진을 경험하는 노동운동가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제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