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언어 학습자가 산출한 음성언어는 원어민보다 느리게 발화되며, 학습자의 능숙도가 낮을수록 발화 속도도 느려지는 상관관계가 있음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제2 언어 말하기 교육에서 발화 속도를 증가시키는 훈련을 통해 능숙도를 향상시킬 수 있음도 밝혀졌다. 또한, 발화 속도는 비교적 측정이 쉬우므로 많은 제2 언어 말하기 또는 발음 정확성 측정을 위한 자동평가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feature) 중 하나로 사용된다. 그러나 능숙도의 판정을 발화 속도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언어의 본질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발화 속도라는 특성이 통제된 제2 언어 음성을 인간이 평가하여도 능숙도를 구분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인지 실험을 진행하였다.
만약 발화 속도가 일정하게 통제되었을 때에도 능숙도 평가가 가능하다면, 인간 평가자가 능숙도를 평가 시 어떤 언어적 특성을 고려하였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능숙도 평가에서 고려하는 요소인 정확성(Accuracy)과 유창성(Fluency)을 분석하였다. 정확성은 자음, 모음, 반모음과 같은 분절음적 요소를 정확하게 발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유창성은 강세, 억양, 휴지와 같은 초분절음적 요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험에 사용된 음성 자료는 K-SEC 말뭉치에서 제공하는 한국인 아동학습자 및 원어민 아동 화자의 발화이며, 사전 실험인 1차 실험은 각 발화 토큰에 대해 발화 속도가 통제되지 않은 한국인 아동 학습자의 발화를 듣고 영어 능숙도를 평가하였다. 영어학 전공 대학원생 5인이 능숙도 평가에 참여하였고, 이들의 평가 결과에 따라 능숙도가 높은 아동 4인과 능숙도가 낮은 아동 5인을 각각 선정하였다. 두 집단 간에는 유의미한 발화 속도 차이가 나타났다.
본 실험인 2차 인지 실험에서는 1차 실험과 같은 음성 자료를 사용하였지만, 각 음성 토큰의 발화속도를 동일하게 조작하여 제시하였다. 발화 속도는 1차 인지 실험에서 측정한 높은 능숙도 집단과 낮은 능숙도 집단의 발화 속도 평균(3.0305)으로 설정되었다. 이 실험에서는 1차 인지 실험 참여자 5인 및 현직 중·고등학교 교사 5인이 추가로 참여하였다. 실험 참가자들은 1차 실험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빠르기로 조정된 한국인 아동 학습자의 영어 발화를 듣고 각 화자의 능숙도를 평가하였다. 평가자가 음원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능숙도 평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능숙도 평가 이후 평가자들은 표본으로 선정한 일부 영어 문장 발화를 듣고 음원의 속도가 인위적으로 조작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자연성(naturalness) 평가에 참여하였다. 능숙도 평가와 자연성 평가가 마무리된 후, 실험 참가자들은 능숙도 평가 시 고려한 요소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에 응답하였다.
2차 실험의 결과, 평가자들은 1차 실험과 마찬가지로 화자의 능숙도 차이를 구분하였으나, 발화 속도가 조정된 발화와 그렇지 않은 발화를 구분하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인지 실험 결과는 앞서 제시한 가설인 발화 속도 통제 상태에서도 영어 능숙도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평가자들은 정확도 판단을 위해 모국어의 간섭(negative transfer)을 포함한 분절음 오류에 중점을 두었으며, 강세(stress), 억양(intonation), 휴지(pauses)의 빈도와 같은 초분절음적 요소를 바탕으로 영어 발화의 유창성을 판단하였다. 분절음 오류는 낮은 능숙도 집단의 아동의 발화에서 높은 능숙도 집단의 아동의 발화에 비해 더 많이 발견되었으며, 분절음 오류 유형 중 단일 자음 또는 자음군 사이 모음 삽입 역시 더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높은 능숙도 집단이 낮은 능숙도 집단보다 강세 모음과 비강세 모음 길이를 구분하여 발화할 수 있었으며, 낮은 능숙도 집단의 화자일수록 평서문의 하강 효과(declination effect), 의문사를 포함한 의문문의 하강 톤(falling tone), 의문사를 포함하지 않은 의문문의 상승 톤(rising tone)을 준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나, 이는 추후 연구를 통해 보완이 필요하다. 낮은 능숙도 집단의 아동의 문장 당 휴지 삽입 빈도는 높은 능숙도 집단의 아동보다 잦게 나타났다. 발화 속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리듬 지수 중, %V와 VarcoV만이 기존 연구 결과를 뒷받침하였으며, 이는 낮은 능숙도 집단 아동의 빈번한 모음 삽입 오류, 강세 모음과 비강세모음 길이 구분의 어려움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본 연구는 활용한 데이터 수가 다소 적고, 평가 고려 요소 설문이 인간 평가자의 총체적 평가와 완벽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한계점은 있으나, 본 연구에서 제시한 결과는 실제 영어 교육 현장에서 종합적인 요소를 통합하여 교수할 뿐만 아니라, 이를 고려하여 학습자의 능숙도를 분석·평가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또한, 추후 제2언어 말하기 평가시스템을 설계할 때 발화 속도에 지나치게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하고, 인간평가자의 평가 기준과 높은 관련성 있는 자질을 반영함으로써 자동평가시스템의 교육적 활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