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에른스트 카시러의 문화철학과 루이스 멈퍼드의 기술철학에 기초한 기술 이해의 문화적 접근법을 통해 서양의 철학적 사유와 기술이 맺어 온 관계를 정신사적 맥락에서 고찰함으로써 '기술이 무엇인가'라는 근본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카시러와 멈퍼드는 공통적으로 기술을 정신의 일부이자 문화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 이해하며 인간을 일종의 문화적 동물, 즉 상징적 동물로 정의한다. 이런 문화적 접근법은 인간이 만든 모든 문화적 구성요소, 즉 신화 · 종교 · 언어 · 예술 · 기술 · 과학 등은 모두 상징형식 체계이며, 인간의 본성은 상징형식 체계들의 체계, 즉 문화 속에서만 구현되고 이해될 수 있음을 전제한다. 이는 기술의 제대로 된 이해는 문화 속에서만 가능하고, 기술에 대한 물음은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물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까지를 분석 범위로 하는 문화적 접근법의 네 가지 근본 조건은 상징형식의 보편성 · 기술의 기원으로서의 신화와 우주론 · 기술의 진화 · 기술 이해의 다양성이다. 이런 조건들을 바탕으로 본 논문은 서구 유럽의 역사에서 나타난 서로 다른 네 가지 기술 이해방식, 즉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 · 중세의 아르스 · 근대의 테크닉 ·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신화적-우주론적 차원 · 시간과 공간의 차원 · 인간성의 차원 · 기술과 예술의 상호작용의 차원이 맞물리는 연관 관계 속에서 분석함으로써 각각의 고유한 의미를 드러낸다. 그 이유는 각각의 기술 이해 방식은 기술적 활동 자체가 아니라 이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 전체의 연관관계와 문화적 요소들 사이의 상호관계 속에서만 고유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체성 · 역사성 · 관계성은 문화 속에서 기술의 위치와 그 의미를 이해하는 요체다. 이로써 본 논문은 기술이 단지 응용과학이나 물질적 실천이 아니라 하나의 의미체계임을 주장한다.
신화적-우주론적 차원 · 시간과 공간의 차원 · 인간성의 차원 · 기술과 예술의 상호작용의 차원을 포괄적으로 고려해 분석한 네 가지 기술 이해방식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는 자연의 질서를 모방하고 주어진 것들을 십분 활용함으로써 많은 좋은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인간의 지적 활동이자 능력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중세의 아르스는 테크네처럼 자연을 모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을 알게 하려는 의도에서 창조한 무수히 많은 기호나 상징을 새롭게 발견함으로써 더 높은 초월적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 인간의 활동을 의미한다. 테크네/아르스는 폭넓은 인간의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었고 기술과 예술은 통합 형태를 유지했다.
기본적으로 다수의 의미를 지녔던 근대의 테크닉은 기계적 세계관, 산업혁명, 기술과 예술의 분리라는 역사적 계기들이 맞물리면서 주로 인과적 필연성과 구체성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계산 가능성과 효율성에 종속시키는 물화체계라는 의미로 굳어진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이후 학문적 패러다임의 전환과 위기의 심화 속에서 출현한 현대의 테크놀로지는 자율성과 독자성이 증대되면서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문화세계 전체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성장전화하고 있다.
본 논문은 기술을 하나의 의미체계로 규정하고, 문화적 접근법을 통해 서구 유럽의 기술 이해방식의 변동을 다룸으로써 문명의 위기를 보다 더 심화시키는 획일주의와 일방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대 테크놀로지의 본질적 특성을 비판하고, 위기의 극복을 위한 대안적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