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본 연구는 베트남 전쟁 난민으로서의 미국 이주민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서술되어 온 베트남 미술을 독일의 사례로 확장하여 분석한다. 이로써 기존 베트남 동시대 미술의 관성적 함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며 베트남 동시대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특히 2022년 카셀 도쿠멘타와 베를린 비엔날레가 베트남 미술에 주목하는 방식과 출생 이후 독일로 이주하여 성장한 예술가 성 티우(Sung Tieu, 1987)의 행보에 집중하며 2000년대 이후의 베트남 동시대 미술을 정립하는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미국계 베트남 디아스포라 미술은 역사의 재서술, 소환, 변위와 같은 주제를 다루며 역사적 트라우마를 투영해 왔다. 타국을 떠도는 예술가에게 전쟁과 관련된 초국가적 역사를 다루는 것은 프로필을 강조할 수 있는 자원이자 국제 미술시장에서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한적 주제로 국제 미술시장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과잉 대표적 성향에 대해 지역 예술가 다수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본 연구 또한 그로 인한 제한적 이해에서 수반되는 누락, 왜곡과 같은 위험성에 대한 동의에서 출발하여, 보다 객관적이고 확장적인 베트남 미술의 이해 범주를 형성하고자 이주의 배경과 활동 성향이 다른 독일의 베트남 미술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독일은 이주의 시기, 배경, 생활 양상, 그리고 미술에서도 미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1975년 미국으로 이주한 전쟁 난민과 달리, 1980년 독일과 베트남 양국이 맺은 근로자채용협정 기저의 이주는 명확한 경제적 목적을 가졌다. 제도적으로 이주민을 포용했음에도 늘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던 미국 이주민과 달리, 배제와 차별에 노출되면서도 독일에 머물고자 했던 이주민의 정서적 성향도 차이가 크다. 또한 동시대 미술을 견인하는 국제적인 주요 플랫폼으로써의 독일을 오가는 베트남 미술은 당대성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독일 기반의 베트남 미술 분석 결과는 미술사적으로도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다.

성 티우는 독일 이주민 2세대로서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반영함은 물론, 독일에서의 수학 배경을 바탕으로 베를린,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독일계 베트남 미술의 표본이 된다. 또한, 이주민과 예술가를 오가는 발언을 시작으로 자발적인 타자화를 거쳐 베트남 현지의 지역 예술로 회귀하는 과정을 따르며 상상적 초국가주의 기반의 미국계 베트남 미술의 관성적 함의를 재고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성 티우의 미술은 이주 및 난민 현상을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찾고, 베트남의 역사, 지역을 관통하는 민족지적 코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독창적 서사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세계시민으로서의 예술 실천과 발언은 역사적 증언으로 제한되는 베트남 미술 지평을 새롭게 넓히고, 동시대 미술로서 가지는 코즈모폴리터니즘적 개념을 제시한다.

본 연구는 미국계 베트남 미술의 과잉 대표성이 빠뜨리는 예외들을 직시하며, 더욱 포괄적인 베트남 동시대 예술의 연구 초석이 된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본 연구에서 비평적으로 접근하는 관성적 동향은 특정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으로서 고유하거나 단절적인 속성의 해석대상이 아니다. 미국계 베트남 미술은 여전히 동시대 베트남 미술 연구의 실마리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 반대의 방향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많은 1세대 미국 이주민 작가들이 이제는 현지로 돌아가 당대와는 다른 움직임으로, 동시대 작가에 발맞춰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시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예술가가 상호 참조해가며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연구가 시대를 넘나드는 베트남 미술사적 의의 정립의 단서가 되고, 또 다른 참조의 계기로서 각 예술가에게 귀한 영감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