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디지털 문명의 혜택은 생활의 간편함과 편리성이 확대되어 삶이 풍요로워졌지만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이 힘들어지면서 인간성 상실과 소외라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병리 현상을 자각하면서 '웰빙(Well-being)', '워라밸(Work-life balance)', '휘게(Hygge)' 등의 새로운 삶의 유형을 모색하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 본연에 충실한 자연주의적 삶으로 회귀하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는 물질 만능주의로 가속화되어가는 현대사회의 불확실성 속에서 행복과 안정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 행동의 발단을 철학자들은 '안정을 되찾으려는 생물체의 부조화 상태의 행동'으로 이해한다. 소우주 개념인 인간의 본능은 주어진 상황에서 심신의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다. 노장(老莊)철학의 중심 개념인 도(道)의 측면에서 볼 때 개인의 행복과 자유 그리고 창의성은 보편의 기준이 아닌 내면의 독립적 생명력에서 나오는 것이며, 도의 체득(體得)을 위한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의 '무위(無爲)'의 실천은 인식의 한계를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도'는 '최상의 인식 경지'를 의미한다. 인식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인간의 사고(思考)와 행동을 지배한다. 색채, 그리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개념 역시 한정된 인식에 의해 구획되고 경계를 만들어 결국 인간의 삶을 억압한다.

노장은 우주를 시간의 순환적 개념으로 이해한다. 세상에 현존하는 만물은 빛과 어둠, 따뜻함과 차가움 등의 대립하는 성질과 짝을 이루어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관관계에 있으며, 시간의 운행에 따라 그 역할의 위상도 바뀌면서 순환하고 상호작용한다. '현(玄)'은 노자의 도의 작용인 유무상생(有無相生)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상반되는 관계에 있는 유(有)와 무(無)가 분별 되지 않고 함께 뒤섞여 오묘한 혼돈의 상태로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무색(無色)·무성(無聲)·무형(無形)의 도를 드러내는 현은 '가물거린다', '검다', '심원(深源)하다' 등을 상징하는 하나의 철학적 이미지이다. 현의 철학적 이미지로 구성되는 현의 공간은 대비되는 만물이 혼재되어 있으며 무위의 실천으로 도가 작용하는 공간이다. 또한 생성과 해체가 동시성을 가지며 만물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시시비비(是是非非)가 부재한 고요한 공간이다. 무위는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인식의 한계를 깨닫고 모든 꼬임과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유의 실현인 정신적 소요(逍遙)를 획득하는 것이다. 도의 구현인 무위의 자기 법칙성을 통한 조화로운 생성과 창조의 과정에서 대립적 분별과 집착을 극복한 노장사상의 지향점은 무위의 실천으로서 자연의 색채를 통해 삶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본 연구의 목적에 부합한다. 컬러토피아(Colortopia)는 컬러(Color)와 유토피아(Utopia), 그리고 디스토피아(Dystopia)의 토피아(-topia)를 합성한 단어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밝음과 어둠이 중첩되어 드러나는 인간의 감정과 색의 흔적들 속에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함께 공존한다는 의미이다.

관계를 통해 상(像)을 갖추는 색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느낌과 감동을 만들어내며 인간의 내면에 영향을 끼친다. 빛의 에너지로서 총천연색인 자연의 색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한쪽으로 치우친 불균형 상태의 감정을 균형 있고 조화롭게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본 연구의 목적은 현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대립하는 관계의 이분법적 짜임을 해소함으로써 색채의 새로운 가치를 탐색하고 그 이해의 폭을 넓히며 색채를 통해 심신의 안정과 평화를 찾는 데에 있다. 또한 철학적 접근을 통한 색채작품 제시 및 폭넓은 색채이미지 스펙트럼 구현과 정신적인 초월과 자유를 통한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표현으로서 의의가 있다.

본 작품 연구는 삶의 주체인 인간(Human)과 그리고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도시(City)와 자연(Nature)을 테마로 구성하였다. 첫 번째 테마, '인간'의 주제는 관계이다. 나 자신, 본연의 모습에 집중하는 장으로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함께 다양한 삶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색채로 표현한 것이다. 빛과 어둠, 유와 무의 상반된 개념을 함축한 현의 이미지로 모든 색채의 균형과 조화를 의미하는 하양과 검정을 주조색으로 삶의 순간순간 인식과 판단에 의해 발현되는 빛의 에너지는 다양한 유채색으로 표현하였다. 두 번째 테마 '도시'는 흔적을 주제로 한다. 도시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온 인간 세월의 흔적들이다. 같은 공간에 중첩되어있는 시간의 흔적들은 경계 없이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는데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상반된 감정을 색채의 보색대비를 활용하여 표현하였다. 세 번째 테마는 무위를 주제로 한 '자연'이다. 자연은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로 인간과 도시, 무위(無爲)와 유위(有爲)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준다. 생명의 진원지로서 무한함을 빛과 색의 보고지인 하양과 검정을 사용하여 생성과 해체의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스스로 그러함'의 무위로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동하는 빛의 에너지인 유채색으로 표현하였다. 마지막 작품, '컬러토피아(Colortopia)'는 앞의 세 가지 테마인 인간·도시·자연을 종합한 작품이다. 과거와 미래, 아날로그와 디지털,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등의 상반되는 개념들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다양한 가치들이 서로 존중받으며 소통되는 컬러토피아의 미래를 표현하였다. 무한한 가능태(可能態)로서 혼재된 상반된 개념들을 현의 철학적 이미지인 무채색으로 보이지 않는 영역을 표시하였고 균형과 조화로 드러나는 삶의 인위와 자연의 모습을 파랑과 초록 등 유채색으로 표현하여 시간의 유한함과 변화의 무한함을 표현하였다.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색채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색채의 분절화 되지 않는 속성에 입각한 현의 색채는 대립하는 빛과 어둠의 상징인 하양과 검정 그리고 하양과 검정의 교집합인 회색의 무채색으로 표상됨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현의 공간에서 유와 무의 대립 면의 상호작용에 의한 만물의 생성 작동 기제가 빛과 어둠의 상호작용에 의한 색채의 생성 작동 기제와 유사함을 확인해 준다. 둘째, 자연의 색채는 무위의 실천으로서 도의 색이 될 수 있기에 수양의 매개체로서 심신의 안정과 평화를 통해 자연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본 논문의 주제인 '현의 공간, 컬러토피아'는 현이 함의하는 사유 방식에 따라 인간의 욕망과 인위적인 모든 것을 해체함과 동시에 인식에 의해 구분된 색채의 분절화를 초월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단서가 되었다. 이처럼 현의 공간은 모든 관계의 이중적 대립과 이분법적 꼬임을 해소함으로써 색채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철학적 탐색과 활용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현의 공간 컬러토피아 작품은 색채를 통한 인간성 회복으로 자신을 굳건히 하여 어떠한 상황의 미래에도 유연한 사고로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균형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주체 의식을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