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은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조선조 초기의 대표적인 여류화가로서 조선조 회화사상 크게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500백 여년 전 성리학 사상이 팽배해 있던 조선사회에서 태어나 지금까지도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으며 詩. 書. 畵에 능한 예술인으로도 유명한 여성이다.
어려서부터 안견의 성취한 북송화풍인 원체화풍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녀의 초충도는 조선조 초기의 화훼화를 대표하겠으며 사임당이 활동했던 조선 초기는 여류화가가 활동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위상은 〈초충도〉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녀의 초충도에서는 한국적인 소재, 구도, 색채, 주제 등의 표현방법이 결코 화려하거나 인위적인 것을 취하지 않았다. 사임당의 초충도는 작고 너무나 하찮은 미물이어서 애정 어린 관심으로 봐야하는 소박한 소재를 우리들의 삶과 화폭에 담고 있는 것이다.
사임당은 섬세하고 맑고 풍부한 정서와 깊은 애정으로 자연을 관찰하였다. 초충도에는 많은 곤충들이 등장한다. 사마귀와 땅강아지, 매미, 귀뚜라미, 메뚜기, 여치 등 당대 회화의 소재로는 꺼려하던 것들을 사임당은 나름대로의 상징성을 갖고 작품 속에 등장시킨다. 이러한 상징성은 자연과 합일된 정신으로 불완전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임당의 현세기복적(現世祈福的) 정신이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임당의 심성 그대로 속에서 충만하되 밖으로 나타내지 않는 겸양한 모습이 초충도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아들 율곡은 어머니의 그림을 보고 "모두 지극히 정묘하다." 라고 표현하였다.
특히, 초충도는 관념적인 당시의 중국 화조화의 영향으로부터 탈피하고 있으며, 사상이 아니고는 힘든 사실적인 표현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조선조 초기 이후의 화훼화 화단에 사임당의 초충도가 범본이 되는 중요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슴이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의 초충도에는 자연스럽고 은근하며 소박하여 보는 이들이 마음을 편하게 갖게 해주며 미소 짓게 한다. 장식성이 강한 중국의 초충도와는 큰 비교가 된다.
또한 사임당의 초충도는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한국적인 특성을 지닌 독립된 회화양식으로 발전되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다정다감하면서 섬세한 감성을 지닌 문인으로서 사임당은 조선왕조가 요구하는 성리학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적이며 자립적인 인간으로 자신의 生을 개척한 여성이기에 그 위상은 더욱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