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문학 담론의 중심 주제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당대의 문학장에서 민족은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지 않는 기표였다. 해방 직후에 터져나왔던 민족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은 제각각 조선 민족을 내세우며 조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건설되어야 할 국가의 이념을 제시하는 형태를 취했다. 그것들은 이미 존재하는 조선 민족을 근거로 국가 건설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었다기보다는 이제 완결되어야 할 민족 형성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경합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각 담론이 어떤 민족을 주장하는가는 실상 어떤 민족을 형성하고자 하는가를 뜻하는 것이었다.
해방 직후 문학 장에서는 민족에 대한 전혀 다른 사고를 가진 담론들이 경합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합 가운데 분단 이후 남과 북에서 제각각 고착화된 민족 개념과는 다른 담론이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조선문학가동맹의 민족문학론은 민족 이데올로기에 곧잘 따라붙곤 하는 공동체의 역사적 연속성과 동일성 대신에 불연속성과 분열을 근거로 민족을 사유한다. 그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민족체가 스스로를 민족으로 인식하고 내세우게 되는 계기로서의 역사적 변곡점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이 주목하는 민족은 타자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며 단일한 정체성을 확보하는 특수한 공동체가 아니라, 그러한 공동체가 근대의 충격에 의해 겪게 되는 보편적인 역사적 경험을 대표하는 기표로서의 민족이었다. 그것은 타자와의 구분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의 내적 분할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통합하는 집단으로서의 민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