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陽明學이 득세하지 못한 이유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다음의 두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한쪽은 조선은 동아시아의 학술 지형과 무관한 자체의 철학을 개발하고 자신의 문제에 치중하느라 양명학이 틈입할 여지가 없었다는 견해이다. 다른 쪽은 주자학이 가진 한계를 지적한 양명학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주자학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듯이 오인되는 부분을 16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주자학의 핵심과 궁극적 관심을 짚어내고, 또 한편으로 보완하여 주자학을 심화시킨 결과로 보는 견해이다.
이 문제는 율곡학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율곡학은 한편으로 주자학에 대한 양명학의 도전에 대응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 당대의 다른 사상과 대결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시대적 산물임을 밝히려 했다. 이렇게 형성된 정체성을 바탕으로 율곡학은 주자학이 가진 다면체적 특징 중 그 정수를 꼬집어(拈出) 조선에서 성리학 해석의 한 방향을 제시한다.
2장은 양명학의 도전에 대응하면서 형성된 율곡학의 특색을 다루었다. 주희의 격물 우선주의를 양명학에서 비판한 것에 대해 율곡은 주자학의 수렴(收斂)의 의미를 드러내고 보강하여 대응한다. 율곡은 미발공부를 소학에서 담당하고 이발에는 함양과 성찰의 공부가 모두 있는 것으로 본다. 또한 양명학에서 '심은 리이다(心卽理)'를 말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심의 리적인 측면보다 기적인 측면에 주목함으로써 '心是氣'는 '心卽理'에 대한 응전적 성격을 갖게 된다는 점을 보였다.
3장은 주자학의 리기론 해석에 방향을 결정한 율곡 리기관의 특색을 다루었다. 율곡은 '리를 기로 인식한다(認氣爲理)'는 혐의를 일각에서 받고 있으나, 기실 '理氣不相離, 不相雜'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 주희와 율곡의 호연지기장 해석에서 차이나는 점이 있는지 살폈다. 율곡은 '理氣一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리와 기는 시간적으로 선(先)과 후(後)를 말할 수 없고, 공간적으로 떨어지거나 합하는 것이 없다는 측면에서 리기(理氣)를 분리해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리가 하는 역할은 기가 유행할 때 반드시 근거(根據)가 된다는 리기론 해석의 방향을 제시한다.
4장은 율곡의 심성정론의 특색을 다루었다. 율곡은 주자학의 리기론에 대한 면밀한 이해와 해석을 통해 이것을 심성론에 적용하여 심성정의일로설(心性情意一路說)을 확립한다. 또한 율곡은 시대적 담론을 사단칠정론에서 인심도심론으로 전환시킨다. 이를 통해 율곡이 마음의 구조를 해명하는 데에서 실천적 수행의 문제로 전환한 의의를 살펴보았다. 아울러 율곡은 심의 능력에 주목하여 지각과 주재의 중요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인간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강조한 점을 보았다.
5장은 율곡의 人心道心觀을 살펴보았다. 율곡은 그 이전 확정적이지 않았던 주자학의 인심도 심설 해석에 방향을 확정한다. 율곡에게 리기론 심성론 인심도심론은 일관된다. 리기론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심도심설을 해석한 것이 율곡의 '人心聽命於道心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