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높고 높으신 자리를 버리고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았다.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은 철저한 겸손과 사랑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다. 복음서의 그리스도를 프란치스코는 온몸과 마음, 전 존재로 만나고 따랐다. 프란치스코의 영성은 가난,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난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비호감에 이른 한국교회가 프란치스코처럼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가난의 영성을 바라보고 실천할 때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과 신비의 샘물이 흐를 수 있을 것이다.
12세기 유럽의 고정된 정치, 사회, 문화 환경에서 인구증가와 농업의 발전은 잉여농산물을 거래하며 상업의 발전을 야기했다. 경제 형태는 급격하게 변화되었고, 상업을 기반 하여 화폐가 거래되는 도시가 발달하게 되었다. 새로운 계급으로 대두된 도시의 구성원들은 새로운 시대에 개인의 정체성을 찾기를 원했다. 교회는 봉건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시대의 변화와 사람들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변화와 혼란의 틈에서 상인의 아들 프란치스코는 복음서의 그리스도를 가난으로 이해했다. 특히 나환우와의 만남과 그들과의 동거를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난을 자기화(自己化)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성육신(成肉身)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절망의 구석까지 오신 것이다. 그것은 예수가 오신 곳에 더 이상 절망과 차별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모든 것이 선하시기에 존재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그렇기에 모두 연합할 수 있다. 사랑의 파노라마는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더 역동적이 된다.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따를 때, 그가 누구든 사회적 계급과 차별의 장막을 넘어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형제가 된다.
프란치스코를 통해 그가 누구든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따를 때, 높은 교회와 수도원의 벽을 넘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누구든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인간됨의 존재감을 누리는 것이요, 인격적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시대 종교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던 도시의 구성원들은 프란치스코의 실천적 영성에 강력하게 응답했다. 뿐만 아니라 나환우와 같은 사회 약자들 역시 차별의 대상이 아닌 인간이며 형제가 될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의 영성은 11세기에 어느덧 계급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부유해져 신비를 잃어가던 교회에 자극을 주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를 거치며 국가 주도하에 물질만능주의, 경제제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휩싸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경제발전을 위한 사회 정신적 구조로 과거 유교에서 '가족주의'를 선택적으로 부활시킨다. 가족주의는 가부장적 가족형태로서 개인의 정체성보다는 가족집단의 유대의식을 강조한다. 이러한 가족주의 형태는 단순히 가족의 개념을 넘어 학교, 회사, 공동체,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유사가족주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가족주의는 하나의 이념과 목표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다. 산업화시기를 거치며 한국교회 역시 성공과 부를 그대로 받아드리며 이데올로기의 조력자가 되었다. 교회에서도 가족주의는 그대로 스며들었다. 교회 역시 과도한 이기주의, 배타성, 경쟁의식을 통해 성장을 꾀했다. 이때, 개인과 약자의 정체성과 목소리는 묵인되기도 한다. 오늘날 사회 구성원들로 '비호감'이라는 부정적 인식의 한국교회 정체성의 뿌리가 바로 산업화시기의 물질만능주의, 가족주의에 있다.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통해 다시 복음서의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한국교회의 새로운 길이 모색될 것이다. 성공에 반하는 물질과 명예의 무소유(無所有)의 불편함이 죄나 벌이 아닌 그리스도가 가신 길임을 기억하고 실천해야겠다. 무너지고, 불편한 한 개인을 통해 그리스도를 본 프란치스코처럼 과거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리고, 신음하는 미세한 가난한 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겠다. 신음하는 그 한명이 하나님이요, 형제, 자매임을 프란치스코가 말하고 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실천을 통해 한국교회의 소망이 깃들고, 신비가 다시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