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아동문학가 권정생(權正生: 1937-2007) 동화의 생태학적 세계와 동심의 관계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권정생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권정생이 극빈한 삶 속에서 불치의 병을 앓으면서 실천했던 그의 고귀한 삶과 함께 그의 작품이 윤리적 종교적 이상향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한편 권정생의 삶과 작품을 지나치게 동일시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상실시킨다. 권정생 동화에 대한 기왕의 생태학적 연구도 윤리적, 교훈적 측면에 머무르고 권정생 동화의 문학적 특질이 사상되었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할 수 있다. 본고는 권정생 동화의 생태학적 세계와 동심의 관계성을 고찰하면서 권정생 동화에 대한 생태학적 연구를 아동문학에 대한 미학적 연구로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또한, 권정생의 작품이 담지한 윤리적 교훈의 근저에 흐르는 인식론적 사실을 해명하고자 한다.
권정생 동화의 생태학적 세계 인식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권정생의 생태학적 세계는 커뮤니케이션적 세계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커뮤니케이션적 세계란 '마음'의 작동이 사건을 결정하는 세계다. 권정생 동화의 생태학적 세계는 물리적 세계의 바탕 위에 커뮤니케이션적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적 세계의 질서를 기본으로 이룩한 세계다. 권정생의 서사에는 세계를 커뮤니케이션적 세계로 바라보는 시각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권정생 동화의 생태학적 세계의 두 번째 특징은 순환적 생태계라는 것이다. 순환적 생태계란 생태계를 구성하는 유기체와 환경은 순환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특성 때문에 순환적 생태계는 연결성과 복잡성이라는 성질을 갖게 된다. 권정생이 동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한 똥은 순환적 생태계 안에서 자연의 정화 및 순환과정을 거치면 더없이 고귀한 것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해 권정생의 동화에 등장하는 똥은 이 세상 가장 낮은 곳과 더러운 곳을 상징함과 동시에 가장 고귀한 것으로 화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를 상징하기도 한다.
권정생은 순환적 생태계와 대비되는 모습으로 인간의 목적적 사고가 지배하는 직선적 세계를 보여준다. 권정생은 인간의 목적적 사고가 지배하는 직선적 세계로 과학 발전이 극대화되어, 모든 유기체와 환경이 인간의 의도에 맞게 재단된 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목적적 의식이 극대화된 병리적 현상인 전쟁의 폐해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권정생은 직선적 세계의 폐해를 동화에 담아냄으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순환적 생태계를 추구해야 할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권정생이 재현한 동심은 유머, 놀이, 놀이적 공격성의 특징을 갖는다. 권정생이 재현한 동심은 외부의 상황에 일차적으로 저항하는데, 동심의 주관적 삶이 외부의 변화 혹은 충격에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저항에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내재해 있다.
권정생의 동심은 서사의 흐름 속에 번번이 유희성을 드러낸다. 그러한 유희성의 도구로 자주 사용되는 소재가 똥, 오줌, 방귀 등의 배설 행위이다. 배설 행위는 보편성과 탈맥락적 성격 때문에 유머의 소재로 자주 사용된다.
권정생이 재현한 동심이 행하는 놀이는 '이것은 놀이다'라는 커뮤니케이션적 틀 안에서 행해진다. 놀이는 맥락에 대한 인식과 끊임없는 재맥락화의 능력이 요구된다. 권정생의 작품에서 놀이와 함께 놀이적 공격성은 총체적이고 복합적으로 재현된다. 권정생의 동심이 보여주는 놀이와 놀이적 공격성은 생태학과 교육학에서도 어느 정도 규명된 아동의 특성이며, 이는 권정생이 동심을 생태학적으로 진실에 가까운 상태로 재현해냈다는 것을 설명한다. 권정생이 재현한 동심은 생태학적으로 날카롭게 포착한 모습이면서도 아동 독자에게 재미와 긴장을 가지고 오는 서사적 효과도 발휘한다.
권정생의 동심은 외부의 상황과 만남에 일차적으로 저항하지만 이해의 과정을 겪은 끝에 극복되며, 끝에는 상호주관성을 획득하게 된다. 상호주관성은 주체가 주관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주관적이고 사적인 생각과 이해를 초월하여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행동이다. 이때 상호주관성의 획득을 위해 필수적으로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과정을 거쳐, 순수한 주관으로 환원의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권정생의 생태학적 세계와 동심의 관계성은 다음과 같다. 커뮤니케이션적 세계의 복잡성은 맥락을 읽어내고 이해하는 능력과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인 융통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만든다. 권정생의 동심이 맥락의 자유로운 변화를 바탕으로 하는 유머와 놀이, 놀이적 공격성을 자주 보인다는 사실은 맥락을 이해하고 맥락의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인 융통성의 징후임을 증명한다.
권정생의 동화에 죽음이라는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순환적 생태계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의 가능성을 연다. 커뮤니케이션적 세계에서 물리적 죽음은 한편 살아 있음으로 기억될 수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생태학적 인식 속에 개체의 죽음은 꼭 슬픈 일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권정생의 동심은 개체의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곳 개체 중심에서 생태 중심으로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죽음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에 있어서, 권정생이 보여준 생태학적 세계와 동심은 개체 중심에서 생태 중심으로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이때 개체적 삶에서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은 개체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권정생의 동심이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상호주관성을 획득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생태 중심의 삶에서도 개체는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직시하고 긍정하는 게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