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은 지리학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는 주제로, 지명 유래, 지명 변천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성과가 축적되었다. 지명은 한 지역을 대표함과 동시에 지역의 지역성, 특성을 보여주는 만큼, 지역 지자체를 비롯하여 여러 기관과 국토지리정보원을 비롯한 국가 기관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런만큼 대부분 전국 혹은 도(道) 단위와 같은 광범위한 지역 단위으로 연구되었다. 하지만 지명 연구는 광범위한 지역 단위보다 각 도시, 촌락 단위로 연구가 이루어질 때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내용과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리지와 지도 속에 담긴 내용을 한국 전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며, 특정 지역에서 나타나는 자연환경 및 인문사회적 환경요인을 고려하여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평군은 조선시대에 중앙집권적 정치제도 하에 농업 중심 사회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철도·댐 등 근대 산업시설 건설로 인해 자연환경 및 인문사회 환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남면 폐지, 설악면 편입과 같은 행정구역이 변화되고, 호명굴과 청평호 같은 새로운 지명이 만들어졌다. 현대에 이르러 국가 행정에 지방 분권화와 주민의 참여 확대에 따라 지역주민의 의견과 지역의 대표성이 반영된 지명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것을 고려하여 본 연구에서는 현존하는 사료를 중심으로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2021년까지 가평군 사료를 조사하여 경기도 가평군의 지명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대별 행정구역과 지명 변화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가평군의 행정구역과 지명 변화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조선 시대 가평군 지명에는 당대 사람들의 자연관과 함께 지리 인식 체계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읍치를 중심으로 방위에 따라 면리의 지명이 결정되었다.
18세기 후반에는 인구증가에 따른 촌락의 분화로 면리제가 정비되어 조종면이 조종상면과 조종하면, 서면이 내서면과 외서면으로, 북면이 하북면과 상북면으로 분리되었다.
19세기 후반 제2차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행정구역 개편은 가평군의 존폐가 결정되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과 1915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평군의 많은 면과 동·리가 통합되었다.
1939년에 개통된 경춘선과 1943년에 완공된 청평댐은 가평군의 행정구역과 지명 변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42년 10월 1일에 남면은 가평면과 외서면에 나누어 편입되고 폐지되었고, 양평군 설악면은 가평군에 편입되었다.
1991년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됨에 따라 중앙정부에 의해 획일적으로 진행되었던 행정구역과 지명 개편에 지역주민의 의견이 반영되어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여러 지역에서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지역의 대표성을 반영한 지명으로 변경하거나, 일본식 지명을 고유의 지명으로 바꾸고 있다.
이러한 가평군의 지역적 특성을 바탕으로 지리정보시스템(GIS)를 활용하여 가평군의 행정구역 변천 과정을 지도화하였다.
또한, 지명 연구에서 기초자료로 사용되는 지역지와 지리지에 나타난 가평군 지명 오류를 수정하였다. 우리나라 지명연구는 전국 단위 혹은 도(道) 단위로 진행되어 시대별로 대표되는 고지도와 지리지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 자료를 연구에 반영하기 어려웠다. 이로 인해 선행 연구의 오류가 후속 연구에도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가평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내용과 변화에 대한 지명 연구가 이루어져 지역의 특징이 반영된 지명 연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가평군 지명의 시기별 지명 변화를 데이터베이스화한 기초자료이다. 향후 가평군의 지명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고유 지명 유래 등 연구 범위를 다양한 주제와 연계하여 확장한다면 가평군 지명연구의 양적, 질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