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지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기업가정신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가정신은 기존기업이 생산했으나 사업화하지 않은 지식을 활용하여 기업의 설립을 통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소개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근래에 기술·지식기반의 기회추구형 기업가에 대한 학계와 정책적 관심이 증가하면서 지역 내 지식의 외부효과와의 관계에 관한 연구도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Glaeser et al.(1992)가 제안한 집적의 동적 외부효과의 맥락에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집적기업 간 국지적 경쟁을 강조하는 Porter의 외부효과에 관한 연구는 제한적이며, 더욱 중요하게는 대다수 선행연구가 지역 내 경쟁이 단독으로 기업가에 유의한 지식의 외부효과를 유발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한계를 가진다. 하지만 그간의 실증연구결과는 여전히 국지적 경쟁이 지역 내 지식의 생산과 파급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렇게 분분한 상관관계를 유발하는 기저 조건(underlying condition)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였으며, 이는 핵심적으로는 기업가가 외부지식을 학습하는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한다고 추론하였다. 그 이유는 집적기업 간 상호학습은 지역만 아니라 산업의 맥락에서도 발생하므로, 같은 지역의 기업가도 속한 산업에 따라 외부지식의 유래와 학습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에 집적의 외부효과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의 주요 아이디어는 원래는 산업의 학습환경을 설명하는 기술체제(technological regime)의 개념을 고려하여, 지역산업의 기술체제에 따라서 국지적 경쟁이 기업가에게 미치는 효과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각 산업은 기술적 기회와 혁신의 전유도 등 주요한 기술적 특성이 어떻게 구성된 기술체제를 가지는지에 따라 산업 내 지식생산의 주체, 지식생산의 방법, 지식파급의 경로와 수준 등이 달라진다. 이를 지역에 적용해보면 지역의 산업들은 각 기술체제에 따라서 핵심적인 지식의 생산 주체와 파급경로가 다르고, 이는 곧 한 지역에서도 세부산업별로 기업 간 지식 네트워크가 다르게 발달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역 및 산업별로 다를 수 있는 지식학습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경쟁이 모든 경우에 유의한 지식의 외부효과를 유발할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큰 한계를 가진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 연구의 목적은 지역산업 내 경쟁을 산업집중도와 대기업의 비중으로 평가하여 이들이 기업가의 출현에 유의한 지식의 외부효과를 유발하는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특히 이 메커니즘의 경계조건(boundary condition)으로 기술체제의 조절 효과(moderating effect)를 분석하는 것이다.
국내의 2009-18년까지의 신규 회사법인을 대상으로 시계열간 의존성을 통제한 DKSE 패널모형을 활용하여 16개 광역시도의 23개 중분류 제조업의 단위에서 국지적 경쟁과 기업 신생률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지역산업을 대상으로 산업집중도가 단독으로 신생기업의 출현에 미치는 유의한 주효과는 확인할 수 없었다. 둘째, 그러나 높은 기술적 기회와 낮은 혁신의 전유도로 구성되는 기술체제를 가지는(창조적 파괴의 혁신패턴) 지역산업에서는 산업집중도가 부정적 효과를 가진다. 즉, 지역에서 소규모, 신생기업이 혁신을 주도하고 기존기업과 기술격차가 크지 않을 때는 기업가가 소규모, 신생기업이 생산하는 지식과 그들이 수평적으로 조직하는 지식 네트워크에서 창업의 기회를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반대로 낮은 기술적 기회와 높은 혁신의 전유도로 구성되는 기술체제를 가지는(창조적 축적의 혁신패턴) 지역산업에서는 산업집중도가 긍정적 효과를 가진다. 이는 곧 지역에서 핵심 연구개발기능이 선도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주요한 혁신 활동이 공동의 생산과정 중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작업일 경우에는 기업가는 소규모, 신생기업 간 지식 네트워크에서 유용한 정보를 기대하기 힘들고, 오히려 선도기업 중심의 거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지식 네트워크에서 창업기회를 얻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넷째, 대기업의 비중은 기술체제와 상관없이 기업 신생률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기존기업의 큰 규모가 의미하는 진입장벽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기업가는 지역 내 동종 산업의 대기업에서 유래하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중요하게 인지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국내 지역산업의 대기업 중심 구조와 제조업 특성상 대기업이 제공하는 시장기회의 중요성을 반영한다.
본 연구는 지역의 기업가정신과 집적의 외부효과와의 관계를 연구함에 그간 논의가 부족했던 국지적 경쟁의 효과를 중심으로 실증하였으며, 무엇보다 그 영향력이 단독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가 직면하는 지식학습환경의 특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발견했다는 점이 기존 연구에 대한 가장 큰 차별성이자 기여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산업의 지식학습환경을 설명할 때 산업혁신시스템(SIS)의 개념 중 하나인 기술체제를 이용하여, 기존의 지리적 맥락을 강조하는 지역혁신시스템(RIS)이론을 보완함으로써 더욱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