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마다 의료비의 빠른 증가에 대응하여 진료비 지불제도에 대한 고민과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큰 틀에서 행위별수가제(FFS)에 기반하고 있어서 의료비 급증, 왜곡된 비급여서비스의 팽창 등으로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이 위협을 받는다는 평가가 많다. 이에 정부는 7개 질병군을 대상으로 포괄수가제(DRG)를 도입하는 등 지불제도의 변화를 시도하였으나, 건당 지불을 하다 보니 복잡한 내과 질환이나 중증도가 높은 진료비 변이가 큰 질병군 적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두 지불제도를 혼합한 방식인 신포괄수가제가 새롭게 고안되어 2009년 4월 시범사업을 시작하였다,
의료보장체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하여 의료서비스 이용행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꾀하는 것은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제도 모형에 대한 평가와 시범사업 영향평가를 시행하고 제도 개선을 해왔지만, 대체로 단기적이고 모형 중심의 평가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즉, 그동안의 대다수 분석은 제한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제도 도입 전·후 비교나 단기간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본 연구는 신포괄수가제 도입으로 예상되었던 의료기관의 진료행태 및 의료 질 변화 여부를 장기간에 걸쳐 실증 분석하였다. 분석의 일관성을 기하고자 동일한 기간 동안 제도에 참여한 종합병원급 공공병원 27개기관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하였고, 전체 질병군 553개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2012년 7월 기준으로 신포괄수가제 도입 전 2년(2010년~2012년)과 도입 후 7년(2012년~2019년)으로 구분하여 전체 분석 기간은 총 9년에 해당한다.
연구는 두 단계로 진행하였다. 첫 번째로 단절적 시계열분석(Interrupted time-series analysis)을 활용하여 건당 진료비, 환자구성(환자 수 및 중증도), 재원일수, 의약품 사용, 외래전이(입원 전·후 방문횟수), CT 및 MRI 검사 전이를 중심으로 진료행태 변화를 살펴보았고, 재입원율, 항생제사용을 중심으로 의료 질 변화를 살펴보았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들 변수를 대상으로 의료기관과 환자의 특성을 통제한 후 지불제도의 순수효과를 살펴보았다. 이를 위하여 기관 단위로 패널을 구축하고 일반화추정방정식(Generalized Estimate Equation)을 적용하여 단절적 회귀분석을 하였다. 단, 의료 질 변화를 살펴보기 위한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사용평가 결과'는 자료 특성상 안정적인 패널 구축이 어려워 자료를 풀링(pooling)하여 신포괄수가제 적용여부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누어 T-test를 실시하였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신포괄수가제 도입 이후 진료행태와 의료 질 변화를 살펴본 결과, 진료행태는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변화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고, 의료 질은 유의미한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 주요 분석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진료행태와 관련해서 건당 진료비(행위 진료비는 환산지수 변화분 제외)는 제도 도입에 따라 전체 의료기관의 진료비 증가 추이를 높였으나 의료기관과 환자의 특성을 통제하면 유의성이 사라졌다. 이러한 가운데 환자수, 중증 환자의 구성비, 평균 재원일수는 제도 도입 직후부터 유의하게 감소하였으나, 의료기관과 환자의 특성을 통제하면 유의성이 사라졌다.
의약품 사용 측면에서 건당 약품목수는 변화가 없었다. 한편, 약제비 비중은 시계열분석뿐만 아니라, 의료기관과 환자의 특성을 통제한 분석에서도 유의한 감소를 보였다..
진료의 전이 여부를 보여주는 여러 지표 가운데, 외래방문횟수(14일 이내, 30일 이내)는 제도 도입 직후 유의하게 늘어났다. 특히, 30일 이내 외래방문은 의료기관과 환자의 특성을 통제한 상황에서도 유의하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가 검사인 CT 및 MRI 촬영 비율(각 14일 이내, 30일 이내)은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둘째, 의료의 질과 관련해서 30일 이내 재입원, 항생제 건당 투약일수는 유의한 변화가 없었다. 항생제 처방건율은 제도 도입 직후 유의하게 늘었지만, 의료기관과 환자의 특성을 통제하면 유의성이 사라졌다. 한편, 수술의 예방적 항생제 사용평가 결과는 유의한 수준에서 상향되었다.
본 연구에서 확인한 진료행태와 의료의 질 변화는 신포괄수가제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과 부정적인 해석을 모두 가능하게 한다. 의료기관은 제도 도입 이후, 병원 수익 증대를 위해 입원환자 수를 늘리거나, 고가 영상검사(CT 및 MRI)를 입원 전·후로 전이하여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입원 전·퇴원 후(30일 이내) 외래방문 증가는 외래전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료 효율성 측면에서 약제비 사용 비중이 감소한 것은 의약품이 대부분 포괄에 해당하여 처방을 줄이려는 행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건당 진료비는 전체적으로 증가했지만 의료기관 및 환자의 특성을 통제할 경우 유의성이 사라진 것은 분석대상이 공공병원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포괄(행위별수가) 비중이 높고 비급여가 많지 않으며 정책가산 부여에도 불구, 수익에 민감하지 않아 이와 무관하게 진료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재원일수가 줄어들지 않은 것은 재정중립 측면에서 행위별 수가 수준을 유지해주기 위해 도입한 조정계수의 영향으로 보인다. 또한 입원환자 구성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는 공공병원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결과로 판단된다.
한편, 신포괄수가제 도입 이후 부적절한 퇴원, 의료서비스 제공량 감소 등으로 인한 의료 질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입원비율이 증가하거나 필수 항생제 사용을 줄이는 등 부적정한 변화도 관찰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로 제도가 의료공급자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행위별수가제와 유사하게 설계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향후 원가에 기반을 둔 수가모형이 마련되어 수가 적정성을 이루고, 진료 효율성을 향상할 수 있는 성공적인 지불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해석에 앞서 본 연구는 일부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공공병원(대부분 지방의료원)만을 분석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의료기관의 구조적 특수성과 이용 환자의 특성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리고 정상군(신포괄수가제 운영 기간의 경우)에 속하는 환자만을 실증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의료기관의 전체 모습을 조명하지 못하였을 수 있다. 향후 민간병원을 포괄하고, 열외군 환자를 포함한 분석이 이루어져 신포괄수가제도의 성과를 보다 심도 있게 살펴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