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문학인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개작(adaptation)' 혹은 '패러디(parody)'한 근대와 현대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그 양상을 분석하고 개작의 사회적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떤 고전문학보다 판소리가 많이 개작되었는데, 이는 흔히 적층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판소리 문학의 '열린 구조(open structure)' 때문이다. 여러 고전문학 중에서 판소리를 택해 그 개작을 살펴보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대에 들어와 판소리를 활용하여 개작한 시도한 중에 두드러진 작가는 1910년대 李海朝와 1930년대 蔡萬植, 그리고 1960,70년대의 崔仁勳일 것이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작가로 작품량도 엄청나며 작품에 담고 있는 문제의식 또한 뛰어나다. 이들 李海朝, 蔡萬植, 崔仁勳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대표적인 고전인 판소리를 활용했는지 그 양상과 방식을 밝히고, 그것이 당대 어떤 사회적 의미망을 형성할 수 있었던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문학 작품은 흔히 고정되고 굳어진 텍스트가 아니라 작가와 독자들에 의해 무수히 바뀌고 변개되는 '열린 텍스트'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작업이 고전과 현대, 작품과 당대 사회의 구조를 넘어 어떻게 서로 교류하고 상호 침투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제2장에서는 근대문학 태동기에 『每日申報』에서 '조선 제일 소설가 칭호'를 받은 이해조가 刪正한 『每日申報』의 〈獄中花〉, 〈江上蓮〉, 〈燕의脚〉, 〈兎의肝〉 등 총 4편의 판소리 작품들을 우선 연구의 대상이 삼았다. 이 작품들은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한 이후 개작된 작품들이다. 그러기에 여러모로 이해조의 문학적 작업 및 그 사회사적 의미를 살펴보기에 적합하며 이 시기에 판소리를 생산적으로 수용하여 문학적 전통을 계승한 작업으로 평가될 수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 이해조는 모든 판소리에서 음란한 사설을 제거하여 도덕적인 텍스트로 개작하였음을 확인하였다. 〈獄中花〉를 통해서는 남녀 간 새로운 애정윤리를 정립하고 풍속을 개량하려 하였고, 〈江上蓮〉에서는 효를 통한 도덕교과서를 만들어 보려 했음을 알 수 있었으며, 〈燕의 脚〉은 빈부갈등에서 형제우애 회복으로 개작하였고, 〈兎의肝〉은 기지담을 통한 근대의식을 담아내고 있음을 보았다.
제3장에서는 일제 강점기 일제의 탄압이 최고조에 달하던 1930년대 전통 판소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작가 채만식의 개작 양상을 살펴보았다. 채만식이 개작한 〈赤壁歌〉를 모티프로 한 〈曹操〉, 〈沈淸傳〉을 모티프로 한 희곡 〈沈봉사〉, 흥부전을 원전으로 개작한 〈興甫氏〉, 〈배비장타령〉을 변개한 〈裵裨將〉은 전통 판소리를 바탕으로 개작하여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정서를 대변하는 작가 의식을 발휘하였다.
그 결과 〈曹操〉는 전쟁에 대한 혐오와 일제의 만행에 대한 저항의지를 드러내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자각을 인식하게 하였다. 희곡 〈沈봉사〉는 희망이 없는 암담한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절망이 결국 눈을 찌르는 행위로 표현했던 것이다. 〈興甫氏〉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제시하지 못하고 동화적 세계로 도피한 조선 민중의 모습을 포착했으며, 〈裵裨將〉은 순박한 주인공을 통해 웃음과 풍자가 사라진 수난을 드러내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4장에서는 한국 문단에서 '戰後 최대의 작가'라는 칭호를 얻은 최인훈을 대상으로 한다. 그는 판소리를 수용하여 1960, 70년대의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과 사회의 양상을 반영하였다. 최인훈은 패러디란 원작의 명성과 토대를 활용하되 원적을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자기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문학적 장치임을 밝히고 있다. 일찍부터 최인훈은 다양한 형식 탐구와 관념적 경향으로 주목받아온 작가이다. 그 형식 탐구 중의 한 시도로 최인훈은 익숙한 고전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조해 왔다. 이 연구는 최인훈의 판소리 변개 작품 중 〈놀부뎐〉, 〈춘향뎐〉, 〈달아 달아 밝은 달아〉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최인훈의 판소리 개작과 사회적 의미를 추출하였다.
그 결과 〈놀부뎐〉은 국가권력에 의한 관료자본주의의 폐해를 통렬하게 비난하고 풍자하였음을, 〈춘향뎐〉은 군사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실현의지를 보여 주었다. 또한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를 통해서는 유신정권의 폭압적 상황을 절망으로 그렸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시대의 문학을 문학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당대의 정치와 노동 상황 같은 사회과학적 차원의 분석뿐 아니라, 당대 대중들의 욕망과 존재 양식, 그리고 사회 내부에 여러 징후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연구는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문학이 당대 사회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반영한 예술이라는 전제하에 문학을 통해 구성원이 함께 가야할 길을 탐색하여 가는 몸짓을 표현했다는 전제하에 사회적 의미를 탐구해 보았다.
이 연구의 의의는 우선 판소리계 소설이 근대적 양식과 현대적 양식으로 개작되는 양상과 사회적 의미를 수용과 생산이라는 상호텍스트성을 상호보완적 관계로 보고 그 의미화 과정을 분석했다는 점에 있다. 즉 하나의 텍스트는 전통이라는 수직적인 힘과 작가의 의도라는 수평적인 힘의 긴장 관계 속에서 해석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의는 191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를 셋으로 구분하여 통시적 변화 과정을 살피면서 각 시기별 공시적 양상을 함께 탐구하였다는 점도 중요한 의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