梅谷 吳潤煥은 해주 오씨 집안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속초시 도문동에서 1872년에 태어나 해방 직후인 1946년에 사망했다. 오윤환의 손자며느리·증손자가 기증한 『梅谷日記』는 총 3권이며, 속초시립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오윤환은 1891년 2월부터 사망하기 바로 전날인 1946년 7월 11일까지 56년간을 기록한 일기를 남겼는데, 그 속에는 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속초 유림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일기에는 기본적 사항으로 날짜와 날씨가 빠짐없이 기록되었고, 그날그날 벌어진 일들이 담겨 있다. 농사일과 사람들의 왕래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이 서술되었고, 그 외 製紙, 집안 행사, 외부 유람, 인근 지역의 소식, 일제강점기의 지역 지배 세력의 동향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삶의 현장에서 현실을 조망한 당대의 기록으로 자신과 지역에 대한 통찰을 담아 미시적(微視的) 접근을 통하여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기록 유산이다.
당대의 기록으로 영동 북부 지역의 생활상을 오롯이 담고 있는 오윤환의 『매곡일기』의 가치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1890년대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속초를 비롯한 영동 북부 지역의 일들을 매일 기록한 1차 사료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음력으로 기재된 일기 상의 날짜를 신문 기사 등과 대조할 때 날짜가 일치하고 있으며, 속초 인근에서 벌어진 의병들의 전투 기록이나 해방 이후 미·소 양군의 행태에 대한 기록은 기존에 찾아보기 힘든 귀한 자료에 해당한다. 둘째, 일기에 보이는 농사와 제지업, 교육, 장시(場市) 변화 등에 관련된 기록은 당시 지역 주민의 다양한 생활상과 활동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민속이나 풍습과 관련하여 귀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셋째, 일기의 내용 자체가 지역사 복원과 재구성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계열에 따라 맥락적으로 잘 정리된 56년간의 기록인 만큼 개인적 삶의 궤적을 토대로 지역문화의 복원 작업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매곡일기』의 형태를 보면 그날그날 벌어진 일을 중심으로 간단히 정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이것만으로는 저자인 오윤환의 인식이나 사상 전반을 직접적으로 확인하기에는 다소 힘든 측면이 있다. 다만 글 속에서 드러나는 제반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그의 인식과 대응을 주로 일기 상단에 가끔 주석처럼 달았던 간단한 부연설명 등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확인한 매곡 오윤환의 인물됨은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위정척사사상 계열과 가까운 유림이었다. 오윤환이 유학을 배우고 난 뒤에 주로 교류하던 유림들은 松窩 裴縉煥, 丹雲 閔丙承, 廣菴 李奎顯, 毅軒 金聖基, 勉窩 沈東鎭, 東隱 李鍾英 등이 있다. 이들은 조선말기 위정척사사상가인 華西 李恒老, 重菴 金平默의 계보를 잇는 柳重敎, 柳麟錫, 李根元의 문인이거나 가까운 사이였다. 위정척사사상의 계보를 잇는 화서학파의 일원과 친하게 지냈다는 것은 오윤환도 이들과 학문적으로 같은 궤를 걷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하겠다. 둘째, 직접적 참여자보다는 관찰자적 성향을 보인 유학자였다. 주변에서 일어난 숱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는 『매곡일기』이지만 오윤환은 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옆에서 조망하는 사람으로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것은 삼엄한 감시의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안위를 우선한 때문이라 여겨진다. 셋째,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생계형 유학자였다. 유학을 배운 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을 익히고 후학을 가르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울러 생계유지를 위한 농사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저항보다는 공존 속에서 나름의 활로를 찾고 있었다. 넷째, 변화에 적응하는 유학자였다. 전통적 가치관에만 매몰되지 않고 일찍부터 속초의 문호인 대포항을 통하여 들어오는 근대 문물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적극 활용하였다. 다섯째, 굳은 의지를 지닌 유학자였다. 단적으로 양력 사용이 법제화되었지만 일기의 날짜는 죽기 바로 전날까지도 음력을 사용한 데서 드러나듯이 자신이 설정한 신조를 굳게 실천해나가고자 하였다. 또 3·1 운동 당시 양양에서 시위가 일어났을 때 주동자들과 친분이 있고 이장을 지낸 경력 탓에 구금되어 고문도 당했지만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과 주변 사람을 지켜낸 것도 적극적 투쟁에 참가하지 않으면서도 대의에 입각하여 나름대로 올바르다고 정한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속초라는 지역 사회의 눈으로 격변하던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장면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담아낸 『매곡일기』는 소중한 기록 문화유산이다. 아울러 저자인 매곡 오윤환은 격변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유학자로서의 자기 위치를 굳게 지키며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당대 기록을 남긴 영동 북부의 마지막 유림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