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지난 세기 동안 압축적 근대화 과정을 통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물질적 안정을 선물 받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동체의 붕괴와 더불어 개인의 고립과 소외, 배타성 등이 만들어낸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양산시켜 온 것도 사실이다. 이에 공동체성과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협동과 연대의 관계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대안적 움직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주목을 받았던 것이 '마을'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마을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이 각 지역에서 본격화되었다. '마을활동가'는 바로 이 활동의 중심에 서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다변화되고 있는 현실세계는 마을활동가에게 다양한 역할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사회에서 마을활동가는 지자체 공모사업을 추진하는 주체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마을활동가들의 양적 성장이 가속화되고 있음에도 그들의 정확한 역할에 대한 논의조차 부재한 상황이며, 이에 따라 마을활동가들 또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본 연구는 마을공동체 공모사업 차원에서 규정되는 마을 활동의 범위를 넘어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마을활동가의 역할을 정립하고, 마을활동가가 다양한 분야에서 요청되는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해내는데 필요한 지원체계를 제안하였다. 이를 위해 광주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마을공동체 정책과 공모사업, 마을 인력 정책과 교육에 대해 현황 분석과 마을활동가의 인식조사 결과를 토대로 마을공동체 문화를 위한 마을활동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 마을활동가는 마을의 변화를 주도하는 마을 혁신가의 역할이 주어진다. 사회를 바라보는 깊은 안목과 폭넓은 인식을 토대로 사회 전반에 걸친 혁신 주제를 발굴하고 실행하며 공론화시켜 마을공동체를 형성시키는 사람이다. 둘째, 마을활동가는 마을공동체의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을기획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창의적이고 문화적인 마을공동체를 만들어내는데 마을활동가의 기획적 역량은 아주 중요한 요소로 인지되고 있다. 셋째, 마을활동가는 마을교육가로서 마을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며, 상호작용을 위한 매개자가 된다. 마을공동체의 기초지식을 습득하고 마을학습을 주도하여 컨설팅과 상담, 향후 문제해결을 위한 논의와 결론까지도 도출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같은 핵심적인 세 가지 역할을 마을활동가가 제대로 수행해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지원체계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자치력 강화와 자립구조를 위한 정책 도입이다. 행정과 효율성을 따지는 사업 중심의 시스템이 아니라 마을활동가의 자발성을 담보한 자립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 마을생태계의 본질은 자연생태계가 순환하듯 마을공동체 내에서 자발성을 토대로 주민 주체들이 실행 활동을 함께 해나가는 데 있다. 마을공동체 정책은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재정립되고 계획되어 마을자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은 마을활동가를 위한 마을교육 시스템 구축이다. 초보 활동가에서 전문활동가로의 성장은 마을공동체, 중간지원조직, 광역센터의 특성과 역할에 맞는 교육과정을 계획하고 유기적인 결합과 네트워크를 통할 때 가능하다. 따라서 단계별 교육과정을 설계해 점차 전문성을 강화시켜야 한다. 마을활동가의 성장 욕구를 채워주고, 마을전문가로 성장하여 다시 마을로 순환되어 새로운 마을활동가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선순환 구조 만이 마을공동체의 유기적인 마을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간지원조직의 독립성이다.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은 마을공동체와 마을활동가를 지원하는 데 있으며, 이 고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독자성을 담보한 운영체계를 갖춰야 한다. 현재와 같이 행정의 하부구조로 역할을 제한당하는 한에서는,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가 어렵다.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개념 정립을 위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고, 마을공동체와 호흡을 맞추며, 마을공동체의 입장을 대변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로 변화되어야만 진정한 중간지원조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마을활동가의 역할과 지원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을활동가그룹의 자체적인 활동력이 있어야 한다. 마을활동가 개개인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채널로서, 행정과 힘의 균형을 이루고 파트너로서의 위치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공동체 형성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영역으로서 마을활동가 그룹이 재결합하고 재정립되어야만 한다. 광주시 마을공동체 문화는 마을활동가들의 명확한 역할과 지원으로 형성되며, 마을활동가 그룹의 능동적이며 자발적인 움직임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광주광역시의 현황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마을활동가의 의견을 취합하는데 전수조사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는 갖고 있으나, 적어도 여기서 도출된 결론들은 광주광역시는 물론 국내 다른 지역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것이며 동시에 유의미한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를 통해 마을활동가들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좀더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마을공동체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지원체계와 마을활동가들이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는 동력이 생기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