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작곡가인 머레이 셰이퍼가 '소리(sound)'와 '경관(scape)'을 합하여 처음 제창한 '소리풍경(soundscape)'은 주변의 모든 소리가 음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모든 소리를 하나의 풍경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화성능행도병》 속의 소리풍경을 찾아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고, 의례, 군사, 백성들의 소리로 구분해 소리풍경을 해석함으로써 기록화로써 정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 시대에 담긴 소리 문화를 연구하였다.
〈봉수당진찬도〉에서는 봉수당진찬연의 의례분석을 통해 정재, 반주, 창 속에 정조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송축의 의미, 나라의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의미, 올바른 음악을 추구하는 의미, 어머니를 향한 자식의 효라는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가운데 가장 무게가 실린 의미는 마지막 부분인 효의 의미였다. 또한 그림 속 인물들의 배치를 보아 소리의 전달 방향도 볼 수 있었는데, 정조가 정재와 음악 소리를 통해 대신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고, 이는 소리가 정치적 메시지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또한 〈봉수당진찬도〉는 의례 중심으로 그려져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군사들의 자유로운 소리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봉수당진찬도〉는 의례의 많은 소리를 화폭에 담아 재현하여 정조의 정치적 의도를 반영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소리(음악)가 시대의 지표이며 동시에 사회적 · 정치적 사건을 아는 수단이라고 했던 셰이퍼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장대야조도〉는 야조식의 절목을 통해 나팔, 신포, 응포, 징, 북, 대취타, 천아성, 함성, 꽹과리, 방으로 9개의 소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악기와 포, 함성을 훈련 중 신호음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림 속에는 악기나 포와 같은 소리보다 더욱 중요한 장용외영 군사들의 모습과 백성들의 집 그리고 밝혀져 있는 횃불이 그려져 있었다. 〈서장대야조도〉의 소리에는 훈련의 신호음 이외의 다른 의미도 담겨있었는데,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자신 또한 위협하는 노론 세력에게 맞설 방안으로 훈련을 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정조는 왕권 강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정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백성을 선택하고 군권을 장악하기 위해 장용영을 만들었다. 서장대에서의 훈련은 백성과 군사들의 합심이 필요한 부분도 넣어 반대 세력을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기도 하였다. 〈서장대야조도〉에서는 침묵, 신호음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휴식 소리도 볼 수 있었는데, 음식을 먹거나 꽃 내음을 맡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은 훈련 소리와 대비되며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잘 표현되었다.
《화성능행도병》 속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그 당시 백성들의 소리, 삶 등 그들의 전반적인 문화가 보인다. 작품 속 백성의 소리는 자유로움과 활기참이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시험에 낙방하여 우는 소리, 달콤한 엿이나 술을 파는 장사꾼들의 소리, 담배 냄새, 봄이 온 듯 향기로운 꽃냄새, 행사와 상관없이 싸움이 일어난 소리, 임금이 행차하는 순간에도 편히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 등 소리·냄새·맛과 백성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도록 잘 표현되었다.
본 연구에서《화성능행도병》 에 담긴 소리를 통해 정조의 정치적 의도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게 되었으며, 정조 시대의 사회적 상황과 사람들의 생활 모습, 시대적 감성, 오감 등을 통해 정조시대의 소리문화를 부분적으로 밝힐 수 있었다. 셰이퍼는 음악이 그 시대의 지표이며 사회적 사건, 정치적 사건까지 알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화성능행도병》 에서는 서양 근대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의례, 군사 그리고 백성들의 소리로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우리의 전통 기록화를 통해서도 다양한 의미가 담긴 소리를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이 갖는 의미들이 우리 역사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