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오늘날 국내외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예술과 기술 융합 현상에 주목하여 그 역사적 전개의 양상을 고찰하고 새로운 관점의 융합을 위한 이론적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서구의 경우 예술과 기술이 융합하는 것에는 지난 세기 아방가르드 예술의 사회 참여적 흐름과 학제 간 융합 연구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 시민 참여를 중심으로 한 실험적 관점의 융합 프로젝트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에는 아직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문화콘텐츠 결과물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문화산업진흥 차원에서의 융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국내의 실정을 넘어서 예술과 기술 융합의 근본적 이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예술을 기술과 분리된 대상으로 여기던 지난 시대의 예술론에서 융합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동시대 예술의 성격을 역사적이며 이론적 수준에서 재고찰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논문은 기술 환경의 변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전개된 동시대 예술론과 아방가르드 논쟁의 이론적 배경을 되살펴봄과 함께 그 실제적이며 구체적 흐름에서의 예술과 기술이 융합되어온 흐름을 짚어보고, 오늘날 예술과 기술 융합의 다양한 실천 배경에 놓인 이론적 가능성들을 성찰함으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으로 확장되어 가는 오늘날 융합의 양상을 논구하였다.
융합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동시대의 예술은 주로 기술적 영향력의 확대로 인해 기존 예술의 의미와 성격마저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예술의 종언과 예술사의 종언을 논한 아서 단토와 한스 벨팅의 경우 동시대 예술이 더 이상 예술 자체의 고유한 특성만으로는 이해되거나 해석될 수 없을 정도로 다원화되고 다변화되었다는 인식을 공유했으며, 특히 한스 벨팅의 경우에는 기술 매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의 확장이라는 목표를 가졌던 아방가르드 예술에 초점을 맞춘 이전의 아방가르드 위기 논쟁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율성을 가진 것으로 고착화된 제도예술의 한계를 넘어서려했던 아방가르드 현대 예술을 역사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진단했던 페터 뷔르거와 달리, 핼 포스터는 아방가르드적 예술이 더욱 다양하게 심화되어 이어져 왔다고 주장하고 나아가 예술과 관련된 이데올로기적 총체성으로서의 기술담론까지를 논함으로써 이에 대한 오늘날의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동시대 예술의 성격 변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 논문은 지난 세기의 예술과 기술이 융합해온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측면을 다시 고찰하였다. 이로써 바우하우스와 플럭서스 운동, E.A.T. 등에는 오늘날 대표적 융합기관으로 알려진 ZKM과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맹아적 흐름이 보다 적극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밝혔다. '디지털 바우하우스'라고 불리우는 독일의 ZKM과 바우하우스의 직접적 연관성,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운영 방식과 가치 지향에 있어 E.A.T.와의 유사성, 특히 플럭서스의 백남준이 펼쳐보인 전방위의 기술 융합적 예술 등은 오늘날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단지 기술융합을 통한 예술적 실험만이 아닌 기술을 통해 변화해 가는 세계 이해에 대한 포괄적 문제의식을 함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기술을 단지 인간문명 발달의 도구적 수단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관점 역시 변화하여 인간 사회와의 보다 심층적인 관계성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특히 기술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과 기술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의 기술론은 이와 관련한 대표적 이론들이며 이들의 이론은 모두 기술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사물들의 비위계적이며 공생적 관계를 주장함으로써 오늘날 예술과 기술 융합을 새로운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이는 오늘날의 융합 기관이 행하는 연구와 전시가 단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예술을 전시하는 것만이 아닌, 생명공학 등 지금까지 발달해온 과학기술이 가진 윤리적 문제까지를 시민들과 함께 경험하고 성찰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확대되는 것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오늘날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시민과 함께 하는 공공적 차원을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전문화된 경계를 넘어 보다 실험적이며 열린 과정의 융합 연구로 확장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이 논문은 이러한 확장된 관점에서의 융합 연구가 가진 이론적 가능성과 함께 그것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예시하고 분석함으로써 융합 연구의 현재적 흐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