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는 불교의 명부를 관장하는 열 명의 시왕 가운데 하나로 다른 시왕들보다 기원이 길고 특징적인 도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조선후기에 제작된 시왕상과 시왕도의 염라는 이전 시기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징들이 나타난다. 이 글은 지금까지 잘 밝혀지지 않았던 염라의 기원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조선후기 염라도상의 특징과 등장 배경, 염라도상 본연의 의미를 분석하였다.
염라는 인도 야마(Yama)에서 기원하여 4세기 무렵 중국 경전에서 염라, 염마등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10세기 무렵 『시왕경』이 편찬되며 명부의 왕은 열 명으로 늘어난다. 이 무렵부터 염라는 다른 왕들과 달리 특징적인 도상을 가지게 되는데 그 도상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관모로 다른 왕들과 달리 면류관이나 작변을 착용한다. 두 번째는 업경으로 『시왕경』에 근거하여 망자의 죄를 비추어보는 도구로 사용한다. 세 번째는 위치로 시왕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중이나 위상이 드러나지 않는 다섯 번째에 위치한다. 이러한 세 가지의 도상은 고려와 조선전기를 거쳐 조선후기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특히 조선후기 17-18세기는 명부 신앙이 유행하며 많은 수의 시왕상·시왕도가 조성되었고 여기에서도 염라는 세 가지의 특징적인 도상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조선후기만의 새로운 특징이 생겨난다.
그 새로운 특징과 등장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염라의 면류관 상면에 일월문양이 그려지거나 면류관이 『금강경』 형태로 조성되었다. 일월문양의 경우 전세조대왕진영 등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당시 왕의 관모에 일월문양이 그려진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강경』의 경우 1686년 『사경지험기』가 편찬되었는데 여기에서 『금강경』과 명부 신앙의 밀접한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시왕의 관모와 달리 염라의 관모는 직사각형으로 경전형태를 표현하기 수월하여 『금강경』이라는 글자가 적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조선후기 업경은 이전 시대 작품들의 업경이 소, 양을 비롯한 여러동물을 그린 것에 비해 공통적으로 소를 그리고 있다. 그 이유는 조선후기 오랜기간 유행한 우역과 우금령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조선후기 시왕도의 특징으로 업경을 받치는 업경대가 사자형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조선후기 목조로 제작된 업경대에서도 이러한 사자받침을 볼 수 있어 목조 업경대의 사자받침이 자연스럽게 회화로도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왕도 하단 부분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분류를 하자면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두 개의 유형은 각기 같은 모본을 두고 그렸거나 기존의 작품을 참고하여 그린 것임에도 염라의 관모형태는 제각각이라 시왕도라는 같은 장르에서 같은 모본을 두고 그렸더라도 화사 개개인마다 도상의 해석과 선택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염라도상의 의미와 등장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았으며 시왕 가운데 다섯 번째에 배치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우선 첫 번째로 염라가 면류관을 착용한 이유를 살펴보았다. 면류관은 본래 황제가 쓰는 관인데 중국 번노자조상의 명문과 『명보기』의 기록을 보아 염라가 다른 시왕들보다 더 높은 존재라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한 장치로 면류관을 착용한 도상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면류관의 류와 충이는 밝게 알지만 보지 못한 척 하고, 밝게 듣지만 듣지 않은 척하여 아랫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덕을 갖추게 하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 염라에게 덕을 요구하는 마음의 발로였다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업경의 등장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사람의 죄를 비추어 본다는 거울은 염라의 도상이 성립되기 이전에 편찬된 『대당서역기』 등의 경전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죄를 비추어본다는 관념은 망자의 죄를 심판하는 염라의 성격과 유사한 점이 있으며 이러한 유사성으로 인해 염라가 사용하는 도구로 자리잡았다.
마지막은 염라의 위치에 관한 것이다. 시왕 신앙의 근간인 『예수시왕경』에서 염라는 다른 왕들보다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번째에 배치되어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재일 신앙의 영향으로 판단하였다. 『지장보살십재일』에서 오도대장군, 염라왕, 태산부군이란 명칭이 등장하여 시왕 신앙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명보기』에서도 오도신, 염라왕, 태산부군이란 명칭을 찾을 수 있다. 세 가지 문헌에 표현된 왕들의 명칭을 비교 검토한 결과 『명보기』-『지장보살십재일』-『예수시왕경』 순으로 편찬된 것으로 생각되며 『예수시왕경』 내 염라의 위치는 『지장보살십재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염라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명부의 재판관이자 사후세계의 관리자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염라는 특정한 도상을 지니고 있으며 도상의 시대별 변화과정을 통해 당시 시대 상황과 민중들이 가지고 있던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염라도상에 대한 의미와 분석은 당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을 이해할 수 있고, 시대 상황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