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연구자의 현장경험에 기반한 문제 제기를 통해 조건부수급체제에 있는 자활 참여자들과 2세대의 삶을 살펴보고자 이루어졌다. 한국의 빈곤정책은 분배 혹은 소득재분배 중심의 접근으로만 이루어져 왔으며 정체성에 대한 접근은 소홀하였다. 소득격차 및 빈곤의 세대 간 전수라는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빈곤정책의 관점은 소득분배 중심으로 일관되어왔다. 근로와 복지를 연계한 빈곤정책을 통하여 소득불평등이 완화되도록 하는 것이 복지정책의 목표이자 정책방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국가의 제도 안에서 내면화 된 자기 인식을 통해 자활참여자와 자녀세대와는 어떤 상호주관성을 형성하는지, 자활참여자 자녀세대는 부모를 통해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전망하는지에 대한 고찰은 전무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자활사업 참여자의 목소리를 통하여, 정체성 즉 인정에 기반하지 못한 채 이루어진 한국의 소득분배 중심의 조건부수급체제를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국가의 공식적인 체제와 상호주관성을 형성하는 자활참여자와 2세대의 정체성에 접근하기 위하여 Honneth의 인정이론을 활용하였다. 인정이론을 바탕으로 정체성의 상호주관성과 국가사회와 인정에 대해 고찰하였으며, 사회적 관계의 인정구조와 주체의 정체성을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 사회적 관계에서 인정구조의 개념과 의의를 정리하고 가족과 국가, 근로 영역에서 사랑인정과 권리인정, 연대인정에 대해 고찰하였다. 한국 사회의 빈곤현상을 살피기 위해 다중격차와 자활사업에 대한 기대를 정리하였으며 자활참여자 자녀의 미래전망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정체성 인정에 접근하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불의와 조건부 수급체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인정이론의 적용범위를 탐구하였다.
본 연구는 비판적 질적 연구방법으로 수행되었다. 본 연구에서 비판의 쟁점은 소득분배 중심의 접근에서 소득분배와 정체성 중심의 접근을 통합하지 못한 현재의 빈곤정책에 적용되는 관점과 현상들이다. 이러한 관점과 현상들을 밝히기 위해 공식적인 국가체제 속의 자활참여자와 2세대의 인터뷰 자료를 수집하였다. 구체적인 연구대상자는 빈곤정책의 중심에 있는 조건부수급체제 속의 자활참여자와 2세대로 제한하였다. 자활참여 2세대는 부모가 자활근로 경험이 1년 이상이면서 진로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시기에 있는 후기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였다. 자활참여자 8명과 2세대 11명을 심층 인터뷰 하였으며 2세대의 인터뷰 자료 분석이 끝난 뒤 부모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전통적 질적 분석방법에 따라 개념화 및 범주화, 구조화 과정을 거쳐 주제화에 이르렀다. 추출된 개념은 857개였으며 개념에서 추출된 하위범주는 186개, 하위범주를 통해 구조화된 범주는 48개, 이를 통한 주제는 11개가 추출되었다.
자료 분석을 통해 연구문제인 조건부수급체제와 자활참여자의 상호주관성과 자활참여자와 2세대의 상호주관성이 도출되었고, 2세대의 미래전망이 드러났다. 첫째, 조건부수급체제와 자활참여자의 상호주관성은 '핍진했던 삶에서 조건부수급체제를 선택함', '무시경험', '사랑인정 재현', '탈수급'으로 나타났다. 자활참여자들은 자활근로 참여 전 핍진했던 삶에서 조건부수급체제에 진입하였으며 이들은 조건부수급체제 속에서 전반적인 불인정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들은 탈수급과 자활사업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적 존재가 되면서 탈수급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탈수급 후의 불안정한 삶보다는 무시를 견디면서 조건부수급체제에 머물러 있기를 소망하였다.
둘째, 자활참여자와 자녀와의 상호주관성은 '미분화', '분리', '분화'로 나타났다. '미분화'는 불인정의 상호주관성속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정서적·경제적 원조를 요구하고 있었고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을 부과하는 방법을 통해 자녀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는 부모를 위해 청소년기부터 경제적 원조를 하고 있었으며 부모에 대한 보상의 책무를 갖고 있었다. '분리'는 불인정의 상호주관성 속에서 부모와의 불화가 원인이 되어 나타났다. 부모의 역할 부재 및 책임이 과도하게 요구되는 조건에서 종교 및 이성의 지지체계를 접촉함으로서 부모와 분리되었다. '분화'는 조건부수급체제 진입 후 기본적 생활을 보장받음으로써 서로의 욕구를 존중하는 정서적 배려의 교환이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자활참여자 자녀의 미래전망은 '낮은 것을 열망하기', '자신이 중심이 되는 미래전망', '불안정하고 어두운 미래', '국가의 기대-탈수급'으로 나타났다. 부모와 조건부수급체제와의 상호주관성은 자녀와의 상호주관성으로 이어져 미래전망에 영향을 미쳤다. 자활참여자의 자녀들은 국가로부터 탈수급이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미래에 탈수급을 해야 하는 존재로만 자신을 규정하고 있었다. '낮은 것을 열망하기'는 자활참여자인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나타났으며 부모가 자녀에게 제시한 직업은 준전문가 등의 낮은 것이었고 자녀도 낮은 것을 열망하였다. 이는 부모의 제한된 사적 자원의 영향과 미분화된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중심이 되는 미래전망'은 부모와 분리되거나 분화된 자녀가 지지체계를 가지고 있는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체계에서 자신의 욕구를 인정받으며 자기주도적으로 미래를 준비함으로써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높였다. 이는 가족 내 사랑인정을 경험하지 못한 아동들을 위한 지역사회의 공적 지지체계 중요성을 시사한다. '불안정하고 어두운 미래'는 현재의 불안정은 미래를 전망할 수 없게 하며, 가족의 문제는 부정적인 미래로 연결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채 당장의 오늘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국가의 기대-탈수급'은 국가와 자활참여자 2세대의 상호주관성이다. 자활참여자 2세대는 자신의 미래전망을 자아실현이나 자유의 실현이 아니라 탈수급에 두었으며, 조건부 수급체제에 의존하지 않는 삶 정도를 목표로 하였다. 이는 국가의 최고 형식성이 자활참여자와 2세대를 도구화하여 국가의 재정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 규정한 것을 내면화한 결과이다. 이를 통해 자활참여자 2세대들은 국가의 불인정을 내재화 하여 자기불인정으로 연결시켜 결국, 낮은 것을 열망하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본 연구의 제한점과 향후 제언은 다음과 같다.
본 연구의 철학적 근거가 되는 인정이론이 정체성을 밝히는 부분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인정의 확장성 및 통시성에 대해서는 부족하므로 세대 간 전수로 이어지는 정체성 메커니즘까지 확장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안을 내어 놓지 않는 비판이론의 한계와 관련하여, 분배와 정체성을 담지하여 추구하는 근로연계복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함을 제언하였다.